1967년 1월25일. 반세기가 훌쩍 지났다. 고교 졸업식을 하루 앞두고 대한 추위에 서울의 동북, 찬바람이 몰아치는 태릉 육사에 가입교했다. 공부에만 매달렸던 학생들이 머리를 짧게 깎고는 계급장도 없는 군복으로 갈아입고 한달여 기간동안 몸과 마음을 바꾸는 혹독한 과정의 기초군사훈련을 받았다.

멋진 사관생도 제복의 모습을 연상했던 학생들에게 전혀 예기치 않았던 뜻밖의 생활이 주어졌다. 이제까지 생각하고 행동했던 모든 습관들이 뒤집어지는 극단적인 훈련과정이었다. 하루에 단 1초도 딴 생각 할 여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직각보행에 직각식사, 식사와 샤워가 시작되면 ''샤워 끝 3분전!'' 구호. 늦으면 선착순 뺑뺑이를 돈다.

지도하는 상급생 지휘생도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 그들은 밥도 안먹고 잠도 안자고 우리들 앞에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원안' 그 자체로 비쳐졌다. 고된 하루의 일정을 끝내고 중앙복도쪽에 머리를 두고 침상에서 취침하려는 시간에 멀리 경춘선 기차소리가 들리면 그냥 눈물이 났다. 그때 분대장생도가 들어와서 낮은 음성으로 수고하는 우리들을 격려하는 그 멘트는 천상의 소리로 들렸고 따뜻한 손길로 이마를 쓸어줄 때 그 행복감은 어떤 것보다 컸다.

몇명의 동기생들이 이 고된 과정을 이기지 못하고 안타깝게 중도 탈락하기도 했다. 3월초에 1학년 마크를 달고 정식입교를 할 때는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으나 사실은 그때부터가 4년간의 또 다른 역정이 시작되는 싯점이었다. 새끼사자가 많은 시련을 겪으며 백수의 왕으로 성장하듯이 이런 과정을 수도없이 거치며 한사람의 육군소위가 탄생된다. 그리고 군과 국가의 간성으로 가꾸어져 간다.

52년이 지난 그날을 앞두고 동기회 자전거동호회에서 당시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라이딩을 했다. 청량리역에서 옛 한독약품을 거쳐 육사로 진입하는 2초소(지금은 간성문)를 거쳐 먼저 행군으로 야외훈련을 나갔던 여러곳, 혹한기훈련, 각개전투, 분소대전투 훈련을 받았던 태릉골, 갈매리, 사능, 구리, 퇴계원 일대까지 두루 돌아보았다. 옛 모습은 거의 찾을 수 없이 개발되어 있지만 여기가 거기로구나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6시간 정도 찬바람 속에 야외 이곳저곳을 돌고 마지막 코스로 육사 영내로 진입했다. 기초군사훈련 내무반과 영내 곳곳을 돌아 생도회관에 가서 예전에 즐겨먹던 삼립크림빵, 곰보빵, 크라운산도 등을 찾아보았는데 겨우 곰보빵 한개가 남아있어 커피, 핫쵸코와 함께 나눠 먹었다. 52년 후배인 79기 생도의 가입교를 환영한다는 LED전광판이 돌아가고 있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꿈같은 시간여행을 했다. 20세 청년에서 70넘은 장년에 이르기까지 겪어온 수많은 일들, 한계단도 건너뛰지 않고 다 밟아온 오늘이다. 그때로부터 260개의 시간/공간 여행 결과가 지금 동기생의 상태이고 각자 최선을 다해온 결과이다. 같은 출발을 했어도 각기 다른 꽃을 피워 아름다운 야상화들판을 이루고 있다. 하나하나 다 소중한 꽃들이 아닌가? 세상 모든 이들이 다 그렇듯이.

아침 9시 청량리역에서 만나 출발

50여km나 되는 꽤나 먼 코스이다.

사능과 부근의 작은 소나무 숲속에서 훈련했던 곳이다. 나무가 많이 자라있다.

육사 영내 기초군사훈련 내무반 부근의 태릉탕.

기훈 내무반, 샤워장, 식당 위치에는 현대식 병영시설이 들어서 있다.

화랑연병장과 주변지역 파노라마사진

육사 영내에서 화랑연병장, 강재구동상과 64m의 교훈탑을 지나

예전에 면회실로 불렀던 생도회관에서 당시에 먹었던 곰보빵 시식

학교를 뒤로 정문으로 나와 태릉역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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