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졸업 임관 50주년에 우리는 어떤 모습이며 육사는 무엇인가?- 육사의 역사/육사27기 역사

여추 2021. 5. 8. 12:36


임관50주년에

1967년 초에 고교졸업 후 육사에 입교하여 4년간의 교육훈련과정을 수료하고 1971년 3월28일에 졸업/임관식을 한지 50년이 지났다.

5월14로 계획되었던 임관50주년 기념 모교 homecoming 행사가 코로나로 인해 불가능해짐에 따라 가을에나 가능할까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동기회 월례회는 함께 식사를 할 수 없으니 갖지 못하고 그래도 가장 많은 인원이 모이는 기회가 월례 골프모임이다.

마침 5월의 골프모임 계획을 태릉지역으로 주선하여 54년전의 힘든 기초군사훈련으로부터 4년간의 과정을 함께 했던 동기생들과 청춘의 생도시절을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펄떡이던 청년들은 다 어디로 가고 이제는 다들 노인네가 되어 있기는 하지만 동기생이 서로 바라보는 그 상대방은 틀림없는 기초군사훈련 당시의 그 이미지로 남아 있다. 시간 공간이 그 사이에 펄쩍 건너 뛰었을 뿐이다. 모교가 아직 그 자리에 있고 후배들이 이어서 전통을 유지하고 있어 고맙고 또 든든하다.

육사 개교75주년 - 5월1일

며칠 전 5월1일이 육사 개교 75주년 기념일이다. 1946년 5월1일에 조선경비대사관학교로 태릉에서 개교하여 1기생 80명을 입교시켰다. 1948년 건국 후 9월5일에 사관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당시 해방 후 국가사회적 혼란기에 육사 1~9기는 광복군, 일본군, 만주군 출신들이 지원하여 단기 40일, 장기 6개월간의 속성교육으로 배출되었다. 반면에 북조선에서는 이미 46년 2월 ‘평양학원’이라는 군간부양성소가 생겨서 일거에 800여명씩 입소시켜 배출하여 북한군 창설을 하는 중이었다. 

육사10기(생도1기)부터 정규 2년과정을 시작했으나 2기 333명은 입교한지 한달이 채 안되어 6.25가 발발됨에 따라 생도들이 전투에 투입되었고 그 중 43%인 98명이 전사, 실종하는 큰 희생을 치렀다. 이후 1996년에 전원 명예졸업장이 수여된 바 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0월에 진해에서 육사의 재개교를 추진하였고 입학식에서 이승만대통령은 혼잣말로 ''이제야 되었구만''하고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뭐가 되었다는 의미였을까? 미국에서 오래 독립운동을 해오면서 정예장교가 국가간성이라는 것을 Westpoint 에서 알았기에 유사시 나라를 구할 인재로 정예장교를 말한 것이었다.

육사란 어떤존재인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육사 장교들의 희생과 헌신을 배제하고 애국집단을 논하는 것은 불가하다. 이러한 자부심을 가진 육사인들은 전쟁 후에도 ‘조국근대화(祖國近代化)’의 현장에서 탁월한 애국심으로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았던 것도 이론(異論)이 없다. 그래서 육사인들은 군을 내집같이 여기고 대한민국과 육사를 동일시하는 강렬한 주인의식 또는 적장자(嫡長子)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국가를 위해 죽는 것을 가장 명예롭게 생각하고, 그 가족들까지도 자부심을 갖는 강한 연대감(連帶感)이 종교적 순교(殉敎)수준이다.(장순휘박사 칼럼)

육사27기는?

1966년 10월중순에 전국에서 1차 필기시험을 통과한 679명이 12월 중순에 체력검정, 신체검사, 인물고사를 거쳐 최종 260명이 합격.(경쟁율 11:1, 전국 114개 고교 출신) 1967년 1월25일에 육사 기초군사훈련과정에 가입교하여 과정을 통과한 257명이 3월2일 정식 입교. 4년간의 교육훈련과정을 거치고 최종 188명이 1971년 3월 28일, 대통령내외분으로부터 축하를 받으며 졸업.

98명이 대령으로, 그 중에서 41명이 장군으로 진급했고 대장 2명과 국방부장관, 보훈처장도 배출되었다. 1978년에 육사출신장교를 정부기관에 활용하는 정부방침에 따라 37명의 동기생들이 사무관시험을 거쳐 특채되어 정부 각 부처에 근무하게 되었다.

군 전역 이후에도 전문성과 연계성이 있는 삼성, 현대, LG그룹 등에 임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결론으로 요약해 보면>

-평범한 어느 고교생이 육사에 입교하여 사관생도신조와 도덕율을 아침저녁으로 복창하고 실천하면서 화랑정신, 상무정신, 선비정신의 역사적 전통을 이어받아 군과 국가의 간성으로 양성되어 간다.

-임관 후 어수선했던 당시 군부대의 체계를 바로잡는 FM, 원칙장교, 군기장교로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고 계급별, 직책별 체계적 교육훈련과정을 거치면서 군과 국가안보의 주축으로 중심역할을 함으로써 국가의 안정적 발전을 뒷받침했으며 일부 졸업생은 공직 및 주요 국가기관에 진출하여 나라의 기틀을 바로잡고 군사 외교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주역으로 활동

-전역/퇴직 이후에도 국방 및 정부의 중요 요직에서, 일반기업의 경제산업 현장에서, 사회 각분야 봉사단체 활동과 개인적 소양 개발을 위한 dynamic한 활동은 물론 자유민주주의 수호 역군으로서의 역할을 계속 수행하고 있다.

2003년 1월27일,
군생활 36년을 마감하는 이벤트로 진행한 '마라톤전역식'

1971~2021 임관50주년
태릉으로 homecoming

태릉의 기상을 살려주는 북한산과 소나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