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과 종교활동

이분법이 아닌 세상 - 법상스님 입춘기도 법문

여추 2018. 2. 4. 13:45

立春은 24절기 중 첫번째이고 6개의 봄절기 중의 첫번째인 명절이다.

이날 300여명의 불자들이 국방부 원광사 입춘기도에 동참했고 불단에 올려 기도한 立春帖 1,000여장을 참례자들에게 배포했다.

기도 동참인연으로 모두 成佛하시고 각 가정의 화목과 건강, 그리고 부처님 안목에서 모든 일들이 다 亨通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국방부 원광사 주지 법상 김대현법사 법문>

입춘기도 하는 분들은 '三災' 문제에 관심이 많다.

세상 모든 일들은 정해진 실체가 없다. '無有定法'이다. 만약 정해져 있다면 이는 佛法이 아니다. 정해진 바가 없이 인연따라 일어날 뿐인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고 아픈 사람이 건강해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세지다.

어느 대통령은 '三災'인데 대통령 당선되었다고도 했다.
삼재 중에도 '福삼재, 平삼재, 惡삼재'가 있다. 삼재이지만 좋을 수도 있고 그저 그럴 수도, 또 나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런데 너무 매달릴 일이 아니다.

아침에 절에 기도왔다가 오후에 점보러 가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점보러 가서 올해 운세가 좋다고 하면 기분이 좋지만 만약 안좋다고 하면 그렇게 믿는 마음이 생기니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는다.

'아함경'에 점보지 말라는 말씀이 명시되어 있다. '佛法'의 입장에서 보면 과거, 현재, 미래가 없고 언제나 '지금'밖에 없는데 삼재란 놈이 붙어있을데가 어디 있겠나?

지금 우리가 있는 여기 이 공간 아닌 다른 공간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침에 나선 우리집, 또 고향도 있고 대전, 부산, 대구, 광주도 있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다 생각속에 있는 관념이지 실체는 아니다. 있는 실체는 내 눈앞에 펼쳐진 이 공간과 지금의 이 시간밖에 없다.

부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대대로 이어온 전통이라 해서 무조건 믿지말라''
''유명한 분 말씀이라고 무조건 믿지 말라''고 하셨다. 심지어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까지도 다 상대방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설해진 방편의 말씀이라 할 것이다. 즉 불교의 가르침 자체가 다 방편이다. 달을 가리키면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아야 한다. 말에 매달리지 말고 그 말이 가리키는 '當處, 落處'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말머리(화두)를 잡지 못하고 나는 말꼬리에 휘둘리며 살지 않는가 살펴보아야겠다.

三祖 승찬스님의 '신심명'에 이런 말씀이 있다.
지도무난(至道無難)
유혐간택(唯嫌揀擇)
단막증애(但莫憎愛)
통연명백(洞然明白)

분별하는데서 부터 여러 고통이 시작된다.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보라는 말씀이다.

혜능스님을 쫓아온 군인출신 혜명스님께 혜능스님이 말씀하셨다. ''善도 惡도 생각하기 전 너의 본래면목은 무엇인가?''
이 대목에서 혜명스님은 깨닫고 이렇게 물었다. ''사람이 물을 마셔 차고 더운 것을 아는거네요?'' 혜능스님이 ''그렇다''고 답하셨다. 혜명은 스승의 법명을 피하여 '도명'이라 바꾸고 젊은 스승의 제자가 되었다.

이것과 저것을 확실하게 식별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구분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사람을 볼때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 만나고 싶지 않은 싫은 사람으로 구분하여 본다. 좋아하는 사람은 만나고 싶은데 그쪽에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싫어하는 사람은 피하고 싶은 마음으로 또 불편함이 일어난다.
또 ''이건 이런 것이다''라는 자기대로의 범주를 정해 놓으면 반드시 생각과 고통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인간의 뇌구조는 이것과 이것 아닌 것을 서로 구분해야 어떤 것을 알게 되어 있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분별하고 비교한다. 그리하여 좋은 것에 탐심을 내어 애착이 생기고 싫고 미운 것은 피하려 하면서 화가 나고 증오심이 일어나는 그런 구조속에서 산다.

'단막증애'

좋고 싫은 마음을 내려놓으면 깨달음의 세계가 드러난다.
지금 이대로의 삶에는 원래 아무런 문제가 없다. 분별하기 이전 있는 그대로, 일어난 일 그대로가 첫번째 자리, 즉 '一句'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두번째 자리, 세번째 자리를 계속 만들어가면서 스스로 두번째, 세번째 화살을 맞고 있다. 분별하기 이전, 있는 그대로의 자리에서는 원래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지금 있는 이대로는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즉 '중도'이다. 분별하기 이전의 자리에서 비교하는 마음을 버리기만 하면 된다.

내가 하는 판단은 옪을 수도, 옳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이것 아니면 안돼'' 라는 집착이 맞을 수도 안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울 외곽에 사는 이들은 중심지에 사는 사람을 부러워 한다. 비교하는 마음으로 인해 자기 스스로 상대적으로 비교하면서 자기처지를 한탄한다.

깨달음 얻는다고 갑자기 부자가 되거나 세상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단지 내 스스로 구속하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지금 이대로가 완벽한 삶이다.
경제적으로 10억 있으면 행복할까? 또 다른 목표로 탐욕이 끊이지 않는다. 삶의 조건을 바꾸려는 노력으로 우리는 계속 살아왔다. 그렇게 되면 행복해질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끝이 없다. 해결책이 안된다.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는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몸과 마음이 아픈 단점을 없애려고 계속 싸우며 살고
아픈 몸 나으려 온갖 노력을 하고 있다. 과도하게 몸이 좋아지게 노력하는 것은 두려운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잘못되면 어쩌지 하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걱정하며 산다.

'불면증'의 경우에도 이를 적으로 규정하고 싸워 이기려해서는 안된다.
'단막증애'하면 된다.
좋은 것 싫은 것 두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어떤 상태가 해탈, 열반인가?
'진리'는 만드는 것도 아니고 갈고 닦는 것도 아니다.
모든 사람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인도 '수행자병' 걸린적이 있다.
'나는 여여한 모습이어야 하고 힘든 모습 보여도 안돼'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적이 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는 두가지 차원이 있다. 하나는 '생멸문'이고 다른 하나는 '진여문'으로서 이 중에 어떤 마음을 쓰느냐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진다. 이를 '호리유차 천지현격'이라고 옛 선사들께서 말씀하셨다.

취사, 간택, 분별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분별하고 있지 않은가?

버리기 위해 기도도 하는 것인데 백일기도 중에 하루 빠지면 그것으로 또 괴로워한다.

'열반'을 주면 거기에 또 집착하려 한다. 열반의 길을 제시해 주고 거기에 집착하지 않게 다시 뺏어주는 선지식을 만나야 한다. 어떤 쥐고 있는 것도 없어야 하는 것이다.

불교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거기에 과도하게 얽매이지도 않아야 한다.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기도 수행 중에 무분별의 마음이 사라지면 그게 공부다.
내가 너무 과도하게 애쓰고 있나? 뭔가 얻으려고 집착하고 있나 살펴야 한다.

발심기도하는 건 좋은데 될 수도, 안될 수도 있음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정성으로 열심히 기도하는데 왜 안이루어지지 하는 마음이 아니라 감내하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기도가 부족해서 되지 않았다는 마음을 내려놔야 한다. 지금의 이 결과가 최상일 수가 있는 것이다. 자녀의 시험합격을 위해 기도하지만 합격이 아닌 재수가 필요한 상황일 수도 있다.

두려운 마음을 버리고 도전해 보는 것도 좋다. 되거나 안되거나 다 좋다.
더 좋은 조건을 향해 기도하지만 그런 경험의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다.
살면서 온갖 일 다 겪는 그 자체가 곧 수행이다.
이대로 허용하며 살 때 아무런 문제가 없어진다.
지금 이대로가 있는 그대로 완전하다 해도 이대로를 받아들여야지 하고 또 집착하지 않는가?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가만 있으면 된다.
지금 이것이 그것이다.
생각 자체에 끌려가지 않으면 된다.
'왔구나' 받아들이고 때되면 가겠지 하고 두면 된다.

끝끝내 이대로여서는 안되겠다고 우리는 애쓰고 살고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때, 그 같은 모든 집착을 버릴때 자유가 오고 오히려 일이 잘 이루어 진다. 허용할 때 문제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오랜 지병이 있는 경우나 불면증의 경우에도 잠이 안오는 자체를 허용해 주면 되는데 허용하려 애쓰는 병이 또 생긴다.

'당뇨'도 그대로 두면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의사가 있다. 그냥 두면 안된다는 새로운 스트레스가 또 생기게 한다. 그냥 함께 살면 되는 것이다.

학생 때 비염이 무척 심한 적이 있다. 그 완치를 위해 백일기도를 했었다. 그냥 같이 안고 가지 하면서 편히 생각하니 오히려 나아지더라. 근심걱정하는 마음이 병이 된다.

이것 저것 분별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는 삶이 곧 수행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