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칠순 祝詩를 매제 축하모임에
여추
2019. 7. 7. 18:30
어머니가 39살때 태어난 막내 여동생은 누님보다 17살 아래로 어릴적에 무척 몸이 약하고 먹는 것도 시원찮았다.
우리 형제간들은 쌀밥은 일년에 명절, 제사때 등 몇번 구경도 못하고 보리밥으로 언제나 배고프게 지냈는데 여동생은 입이 짧아 그 귀한 쌀밥도 잘 먹지 않았다. 보리밥 위에 쌀을 조금 얹어 여동생 우선 퍼준 후 아버지 밥그릇에 쌀밥이 조금 들어가고 우리는 언제나 보리밥이었다. 여동생은 그렇게 맛있는 밥도 잘 먹지 않았고 여기저기 많이 아파 울기도 많이했다. 어떤날은 계란 껍질에 쌀을 넣어 밥을 해서 먹이려 했는데 그런 것도 잘 안먹었다. 나도 아프면 저런 밥을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여동생이 내가 서울로 고교유학와서 육사까지 다니는 사이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와서 나보다 더 어려운 여건에서 학교를 다녔다. 참 대견한 일이었다. 육사생도로 외출나온 나에게 용돈을 챙겨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코오롱회사에 직장으로 들어갔고 거기 직장에서 신랑을 만나 결혼까지 하는 인연으로 연결되었다. 내가 미국에 유학간 사이에 결혼식을 올려 나는 혼례식에 참석도 못했다.
매제는 자형처럼 처가댁 모임이나 행사에 언제나 적극적이라 어느 누구네 형제간들보다 우리 형제자매는 평생 가까이 함께하면서 이렇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우리세대는 남자가 집안일 하기를 무척 기피했고 서툰 실정이었는데 매제는 특이하게 음식솜씨가 좋아 우리 형제간을 수시로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하는 기회를 가졌다. 여동생보다 매제의 음식솜씨가 좋기도 하고 쉽게 처리한다. 콘도에 함께 놀러가면 시장에서 이것저것 사와서 금방 여러 조리를 해낸다. 예술이다.
여동생 건강이 언제나 걱정이었는데 정성스런 여러 외조 덕분에 나이가 들어갈수록 오히려 좋아져 부부간 산행 마니아가 되었고 전국의 유명산을 거의 종주했다. 타고난 건강이 약해도 끊임없는 단련과 긍정적 마인드로 얼마든지 개선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기도 한다.
매제의 칠순을 축하하는 축시를 아침에 정리하여 점심모임때 낭독했다. 짧은 시를 낭독하는 사이에 여동생은 눈물이 글썽해졌고 세 딸들도 눈물을 흘렸단다. 전문성 있는 시는 아닐지라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맞춤형 詩이다.
여동생의 인연으로 우리와 형제간으로 평생 함께하게 되어서 고맙고 더구나 대견한 것은 우리세대에서는 '미개인'이라고 놀림의 대상이었음에도 슬하에 3녀1남을 두었고 그래서 식구가 모두 14명의 대가족을 이루었다는 사실이다.
건강, 화목한 가운데 아름다운 나날이 이어지기를 축원한다.
매제의 칠순을 축하하며
언제 왔다 어디로 갔느냐
그 세월 무척 빠르기도 하구나
소년이 청년되고 이제는 할배가 되었으니 말일세
물은 지나가도 콩나물은 자라나듯
그 세월 지나는 사이에 알게 모르게
대가족 이루었구나 행복도 자라났구나
이재* 전*숙 인연 하늘이 맺어주더니
슬하에 주렁주렁 행복이 많이도 열렸구나
연주 주현이 혜민이 동민이
그리고 든든한 사위들 손주들까지
가지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지만
즐거움 고달픔 어느 하나 버릴 것없이
소중한 시간이었고 행복이었구려
집안의 어른이고 사회의 어른으로
어제도 오늘도 그렇게 살아왔듯이
언제나 사랑이 솟아나고 건강이 넘치는
아름다운 나날이 이어지리라
사랑하는 것이 사랑받기보다 행복하다 했으니
오늘도 내일도 한결같이
끝없이 베푸는 사랑의 힘으로
가정은 화목하고 건강 행복이 함께하소서
-둘째 처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