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번 코로나칩거가 '生死자유'를 회복할 좋은 기회

여추 2020. 3. 5. 01:34
우리 아파트 베란다에 열린 커피열매

물질공간과 의식공간
생멸세계와 진여세계

지난 편에서는 물질공간 위주로 언급했는데 여기서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이 接해 있는 의식공간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원래는 '生死자유'인데 '에덴의 동쪽'으로 쫒겨나면서 그 자유를 잃어버렸다. 분별없는 세계에서 분별세계로 나왔다. 아름답고 좋은 것을 즐긴다. 상대적으로 싫은 것이 생긴다. 好, 不好로 나눠지고 有, 不利로 구분한다. 좋은 것을 많이 가지려 하고 그 욕심은 끝이 없어 언제나 만족이 없다. 걱정과 고통도 늘어난다.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변해가는 시간과 공간의 물질세계, 생멸세계의 구조가 그렇다. 그 속에 존재하는 만물 중의 人間도 그 時間, 空間의 제약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에 길이 있다. 生死의 분별이 없는 길, 즉 '에덴'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수천년 전 전설 속의 아담과 이브 시절로 굳이 되돌아 가지 않아도 된다. 지금 가면 된다. 왜냐하면 과거나 현재나 미래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지금 내 눈앞, 目前의 의싁 스크린에 나타나기 때문에 내 마음을 그렇게 돌리기만 하면 된다. 인간의 본질이 몸인가, 마음인가? 몸을 나로 삼고 살면 생멸세계이고 마음을 나의 본질로 삼아 살면 진여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生死자유 회복'의 길로.

 

코로나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2주일여 지나다 보니 날짜가 어떻게 지나가고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조차 별로 관심이 없어지고 있다. 몇째주 무슨 요일마다 있던 정기모임들이 다 없어졌으니 더 그렇다. 그런데도 세상은 이전과 다름없이 잘 굴러가고 있네.

그런데 무엇이 문제였던가? 지금 일어난 코로나사태의 핵심은 무엇인가? '生老病死' 중에서 病과 죽음의 문제이다. 사람들은 나와 나 아닌 것과의 상대적인 안목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아무리 심각한 문제라도 나와 직접 관련이 없으면 관심이 없는 편인데 이번의 사태는 나와 직접 연관된다고 하니 미리부터 걱정스러운 것이다.

구제역, 돼지열병, AI 등으로 소나 돼지, 닭 등을 대량 살처분하는 상황에서도 저건 나와 별 상관없는 일로 내 아픔으로 느껴지지 않더니 이제 보통의 독감정도 毒力밖에 안된다는 코로나전염병이 돈다고 하여 언제 내 주변으로 닥쳐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인해 온 세상 사람들이 난리를 치고 있다. 사람들마다 살아오는 동안 여러 생사의 고비들을 겪은 일들이 있을테고 또 앞으로도 이런 역병이 주기적으로 창궐하가도 할 것인데 그때마다 이런 불안을 어떻게 이겨내려는가? '病과 죽음'에 대한 불안이 과제이다. 거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세상에 무서울게 없지 않겠는가?

 

죽을 상황에서 살아난 사람의 경우에는 대부분 지금의 삶을 덤으로 얻었다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에 비하면 그런 상황에 이르지 않고 사는 사람은 지금의 삶에 더 감사하며 살아야 할텐데 오히려 불만이 더 많다. 어떤 경우이거나 궁국적으로 '生死一如'가 되지 않고서는 우리네 삶에서 불안과 걱정이 떠나지 않고 벗어날 수가 없으며 따라서 완전한 행복에 이를 수가 없다.

생활인으로서 꼭 道人이 되지 않더라도 누구나 자기 마음을 잘 다스려 나가면 마음이 겉마음이 아닌 本마음(本性)에 이르게 된다. 마음에는 두개의 문이 있다. 둘다 내 마음이기는 한데 어느쪽 마음을 쓰느냐에 따라 천지현격으로 달라진다. 천당과 지옥도 거기서 나눠진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쓰고 있는 마음은 시시각각 일어나는 생각들로서 일어났다가는 곧 사라진다. 화나고 서운하고 걱정하는 마음들도 심각한것 같지만 곧 사라지는 마음, 즉 生滅心이다. 바다의 파도와 같다.

그 일어나는 마음의 바탕이 되는 마음은 한결같아서 변함이 없다. 하늘이 파아란 줄 알고 뜨겁고 차가운 것을 안다. 옆사람이나 외국인이나 예전 조상도 그랬다. 어디 사람뿐만이겠는가? 사람에게는 사람의 field of consciousness, 의식의 場이 있고 강아지, 개구리, 벌, 나무, 풀, 꽃들은 각자 그들의 field of consciousness가 있다. 그 전체 세상의 바탕은 또 하나로 통한다.

 

바탕자리인 그 本性은 원래 태어난 적도 사라진 적도 없는 자리라서 당연히 生死의 경계까지도 넘어선 자리이다. 바로 내 눈앞에 지금 이 순간 펼쳐지고 있는 'here & now,' 즉 現今으로 나타나는데 여기에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 오직 이것만이 실상이라 할 것이다.

바로 이 자리를 찾고자 많은 분들이 온갖 수행과 苦行을 한다. 찾고 보니 이미 가장 가까이 있었던 자리이더라고 도인들께서 말씀하셨다. 이번의 코로나사태를 계기로 이 길을 찾아 '生死解脫'의 인연이 된다면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을까? 설령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외부적으로 바삐 사느라 허술해진 內功을 채우는 기회라도 된다면 그 정도로도 칩거의 값어치가 충분하지 않을까?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인상적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권장 도서:

-생명의 실상 1~40권 중 1,2,8권(다니구찌 마사하루)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에크하르트 톨레)
-깨어남에서 깨달음까지(아디야 샨티)
-춤추는 공(아디야 샨티)

-활쏘기의 선(오이겐 헤리겔)

아파트 베란다의 커피나무
작년에 하얀 꽃이 피어 열매가 열리더니 초록색에서 노랑으로 이제는 빨갛게 익어간다. 남미 콜롬비아 커피농장에서 얻어온 씨앗을 심어 5년정도만에 이만큼 자랐다. 작년에 첫 수확한 열매를 심어 새싹으로 자라나고 있기도 하다.

제라늄 빨간꽃은 1년내내 피고 꽃기린, 게발선인장, 사랑초, 칼란디바 등이 계속 꽃을 피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