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부친 기제사에 완성된 족보와 한글축문을 고하고 가족들의 나눔자리

여추 2020. 8. 22. 21:17

8.19(수) 저녁, 음력 7월초하루 저녁에

30년전인 1990년 여름에 85세로 별세하신 부친의 기제삿날이다.

예전 고향에서서는 시계가 없었던 시절이라 밤에 정확하게 시각을 잴 수는 없었지만 하늘의 별을 보기도 하고 어림짐작으로 丑時(새벽1시~3시) 사이에 기제사를 모셨던 것같다. 새벽닭이 울기 전에 끝내야 하는데 혹시라도 너무 늦으면 안된다. 저녁잠이 많았던 우리들은 한잠 자다가 눈을 부비며 일어나기도 했다. 밤에 제사를 모시지만 날짜로 보면 다음날의 시작시간이 된다. 아직 하루의 일로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시간에 맑은 정신으로 정성을 들이는 의미가 있었을 듯싶다.

그러다가 서울에서 생활하면서는 형제간, 조카들 모이고 끝난 후 돌아가는 시간을 감안하여 별세하신 전날 밤, 시간을 조금 당겨 子時(11시~ 새벽1시)에 기제사를 모셔왔는데 그래도 끝나고 정리 후 밤늦게 헤어지기에 바빴다. 그래서 2015년부터 조금 더 현대식으로 바꿔 젊은이들의 다음날 직장 출근을 고려하여 저녁 8시에 모시는 것으로 조정하니 날짜를 하루 뒤로 늦춰 별세하신 당일로 변경, 시행하고 있다. 그래서 음력 6월 그믐날에서 7월 초하룻날로 바뀌었다. 전날밤 12시 이후나 당일 저녁 8시나 결국은 같은 날인 셈이다. 성균관으로부터도 조언을 받았다.

연간 설, 추석 명절과 부모님 기제사 등 4회는 꼭꼭 우리집에 형제자매와 손주들이 함께 모이는 기회가 되고 있다. 우리 형제간 세대에서 시행하고 있는 이런 전통이 자녀세대에서는 어떻게 시행될런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매번 함께 하고 있는 이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이어나가지 않겠나 싶기도 하다. 누가 강요할 일은 아닐지라도 우리나라의 독특한 문화전통이기도 하고 인류의 문화유산이 되기도 할 것이다. 절차가 번거롭다거나 준비하는 입장에서 힘든다고도 하겠지만 자손들이 올바른 가정교육을 통해 바르고 건전하게 성장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 정도의 수고는 충분히 감당할 값어치가 있지 않겠나 싶다.

누님 말씀에 오래전 고향에서 호열자(콜레라)가 유행하여 온동네를 휩쓴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아버지가 가족 단속관리를 잘하신 덕분에 우리 식구 중에는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신다. 또 그 이후 6.25때 인민군이 우리집에서 밥해먹고 낙동강전투에 투입되었고 우리는 할머니만 집을 지키시고 강건너 범구지동네로 피난생활을 하면서도 전후에까지 탄약, 포탄 등의 피해를 입지 않게 지혜롭게 관리하셨다. 지금의 코로나사태보다 훨씬 열악한 여건에서도 잘 이겨내신 전통이 있다.

최근에 완성된 전씨옥산파족보책을 젯상에 올려 모든 조상님들께도 참배를 올렸다. 특히 조부님 행적 중에 일제시대 독립운동 관련 활동을 하시다가 日警에 체포되어 진주교도소 수감 중 등창 발생으로 부친께서 지게로 집으로 모시고 나와 별세하신 사실을 이번 족보에 입력시킨 내용을 고해 올렸다.

축문은 전통식과 현대식을 혼합하여 지난 1년간의 세계정세와 나라, 그리고 가족사이에 일어난 변화들을 요약하여 보고드리는 형식으로 젊은 세대가 이해할 수 있게 정리했다. 조상에 대한 근본을 알고 내 삶의 방향을 다짐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歲次 庚子 7月 甲午朔 初하루 甲午 孝子 ㅇㅇ와 자녀들, 그리고 손주들이 아버님의 기일에 함께 모였습니다.

세월이 바뀔 때마다 세상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요즈음은 일찍이 우리 삶에서 처음 보는 수많은 상황을 겪고 있어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작년말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코로나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뒤집이 놓을 듯이 큰 문화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물난리가 이웃나라를 덮치더니 우리나라도 그 피해를 입고 조용하던 고향합천에도 댐관리 문제로 피해가 크다는 소식이 전해져 옵니다.
 
이런 여러 난리들을 겪으며 예전에 아버님께서 6.25 전쟁의 고비에서나 호열자 대유행이 온 동네를 휩쓸고 지났던 위기를 이겨내시고 거의 해마다 겪었던 수해와 가뭄, 흉년에도 가족들을 안전하게 챙기셨던 지혜로우신 전통을 이어 아직은 온 가족이 안정적으로 각자의 소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조상의 음덕으로 여기며 감사드리고 우리의 자녀와 후손들에게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작년도 이맘때 이후 한해 사이에 가족들의 여러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누님 자형 내외분은 고맙게도 여전히 집안의 어른으로 자리잡고 계십니다. 형님은 작년말 수술이후 제주도에서 요양 중입니다.
동생 내외는 새로운 일자리를 잡아 봉사하고 있고
여동생은 100대명산을 등정하는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러 자손들과 손자 손녀, 외손자, 외손녀들 모두 직장과 사업에 최선을 다하면서 사회와 국가에 기여하며 다복하게 살고 있습니다만 생활에 가끔은 어려운 처지를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고난을 통해 성장하는 길이 열릴 것이라는 확신으로 모두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가정을 이루는 근본은 화목과 사랑입니다. 온 가족이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서로 아끼고 도우면서 부모님께서 이어주신 전통을 잘 실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오늘 기일을 맞아 이 자리에 참석했거나 사정상 함께하지 못한 자녀 손주들까지 잊지말고 챙기시어 큰 사랑을 베푸소서.
 
저희들에게 이어주신 정성과 사랑은 앞으로도 내리사랑으로 집안의 좋은 전통이 되게 해나갈 것입니다.
 
조촐하지만 정갈한 음식을 정성으로 올리오니 흠향하시오소서.
 
庚子년 陰 7월 초하루, 자녀 손주 일동이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 올립니다.

 1세대, 2세대

밤11시 이전에 음식 한보따리씩 나눠들고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