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누구나 피해가지 못하는 생사의 길 - 형님과 재계의 별

여추 2020. 10. 26. 19:39



평생을 함께 뒹굴며 이끌고 밀어주고 해온 5남매 중에 연로한 큰누님보다 먼저 형님이 10월24일 76세 나이로 별세하셨다.

바로 하루 다음날은 재계의 큰별 삼성 이건희회장께서 78세의 나이로 별세하셨다. 어떤 재력으로도 살 수 없고 최고의 의술로도 건질 수 없는게 생명이구나 새삼 절감하게 된다.

먼 시골의 작은 마을 고향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 5남매 중에 시집간 누님이 1963년인가 자형과 서울로 자리잡아 상경하신 덕분에 이듬해에 내가 고등학교를 서울로 유학오게 되었고 이어서 동생들과 형님이 모두 서울로 오게 되었다. 모두 무일푼으로 상경하여 여러 일들을 하면서 공부를 하고 생계를 이어나갔다. 자형은 교직에, 형님은 서라벌예대, 중앙대 근무 퇴직 후 방배동에 자리잡아 사업으로 자수성가 하셨다.

작년말까지 건강하게 활동하시다가 12월에 수술 후 면역치료가 잘 되고 있었고 제주도에서 파인애플 농장을 하는 작은아들과 합류하여 좋은 환경에서 형수와 함께 요양하며 지냈다. 멀리서 오갈수는 없지만 며칠 전까지도 전화로 통화하고 했더니 하루 이틀 사이에 쉽게 떠나신다. '고종명'을 큰 복이라고 했는데 100세는 아닐지라도 건강하게 활동하다가 너무 오래 고생하지 않고 맑은 정신으로 대화할 수 있는 상태에서 임종할 수 있는 것도 큰 복이 아닌가 싶다.

전날 고향 선산 가족묘원에 포크렌과 잔디를 준비해 가서 장지를 미리 준비해 두었다. 당일 아침 제주도에서 항공편으로 부산공항 이동, 상조회 리무진으로 두어시간 걸려 합천 고향집, 우리가 태어나서 살았고 형님의 신혼이기도 했던 고향집으로 가서 낳고 키워주신 동네와 고향에 대한 감사의 인사와 함께 떠날때의 빈손처럼 다시 빈손으로 되돌아왔음을 고했다.

20여분 걸리는 산 입구에 친지들과 형님의 초등친구들이 기다리고 계신다. 전날 포크렌으로 넓혀진 비탈 산길을 10여분 올라 선산 묘원에 도착한다. 목사이신 형수님의 교회단체 노회에서 하관예배를 집전해 주신다. 매장과 미리 준비한 표지석까지 설치한 후 제물을 차리고 상주 차례대로 예를 올리고 형수님은 기도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형제간을 대표하여 고별사를 올렸다.

마무리 하산 후에 마을이장에게 금일봉을 전하며 감사를 전했다. 삼거리 간이식당에서 참례자 모두 늦점심을 하면서 친지간이라도 수십년만에 만나기도 하는 인사를 나누고 각각 제주로, 서울, 부산, 대구 등 제자리 일상으로 향했다.

인연되신 많은 분들의 각별하신 조의와 위로에 감사드리면서 형님의 명복을 빕니다.

고향집에 돌아와서...


<고향집에 돌아와서>

사랑하는 인팔이 형님!

형님이 태어나서 자란 그 고향집으로 왔습니다. 오랜 세월 객지에서 많은 것을 이루고 이제 홀가분하게 고향으로 오셨습니다.

''점팔아, 용구야, 용도야!''
이른아침에 국시기를 끓여놓고 들에 일하러 가라고 깨우시던 어머니 목소리가 들리고 흰 바지저고리에 지게지고 리어카도 끌고 하시던 아버지도 보입니다. 고등학교 교복입고 오셨던 자형이 마루에 앉은 추억, 명문대학 출신 막내사위와 마루에서  마주앉아 탁주를 따르시던 아버지도 보입니다. 아랫채에 신혼방을 차린 형님내외 새신랑과 신부, 손주를 보고 기뻐하셨던 어른들의 여러 추억들이 떠오릅니다.

같은 골목을 드나들던 옆집 상회 점회 준회형님네와는 사돈이 되기도 했습니다. 골목길을 오르내리던 어른들의 소리, 애들의 재잘거림도 들리는듯 합니다.

도라새미가 멀어 어머니 힘들다고 마당에 혼자서 우물을 판 용기와 효성은 어떤 말로도 다할 수 없습니다. 많은 이웃에게 여러 도움이 되었습니다. 

여기 고향집과 고향마을의 기운으로 서울에서 자수성가하여 여유로운 삶을 누리시고 이제는 이것저것 모든 세상의 것들 다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당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되돌아온 남다른 복락까지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이 있게 해주신 고향마을과 이웃어른들, 선후배 친구들과 낳고 길러주신 조상님과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자녀 손주들이 세상을 더 아름다운 곳으로 가꾸어 나가는 역할을 이어갈 것입니다. 

영원한 안식처인 고향에서 평안하소서.

2020.10.26 고향집에 되돌아 오신 인팔형님께 올립니다.

전날의 장지 준비

 산 입구 사양마을회관 앞에 도착하여 산길로 이동

예배


<하관 작별인사>

사랑하는 인팔이 형님,

먼 세상을 돌아 이제 당신의 편안한 안식처가 될 여기 조상님과 부모님 곁으로 왔습니다.

본래자리에서 나와 다시 본래자리에 드십니다. 

그리 길지 않은 76년 세월 사이에 많은 성취와 실망, 온갖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만 이제는 어느것 하나 잡히는게 없는 번개같고 물거품같고 지난밤의 꿈과 같은 지나간 추억의 한토막이 되고 있습니다.

남다른 재능과 열정을 가지고 살아오신 형님의 삶은 숱한 사연들이 많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마저도 다 흘러가는 역사의 과정이었습니다. 

함께 인연이 되었던 수많은 분들이 애도의 인사를 보내왔습니다. 지난 3년동안 토요일마다 태극기들고 광화문에 나가 나라를 위해 더운 여름, 추운 겨울도 함께했던 구국동지들이 더 좋은 나라를 누리지 못하고 떠나시는 아쉬움들을 전해왔고 여러 친목회행사때마다 동참하고 뒷바라지까지 세심하게 챙겨주시던 정을 그리워하며 종친회에서, 향우회에서, 여러 동창회, 동문회, 동기회 등에서도 애도의 인사를 보내왔습니다. 또한 형님과 평생동안 마음을 나누고 지냈던 친구분들도 여기에 참례하고 계십니다.

그간 삶에서 인연되었던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어 오늘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형님의 큰 복이십니다. 또 이곳 조상님과 부모님이 계신 소학산줄기 명지 작은 안식처에 자리잡게 되는 것도 큰 복덕입니다.

원래 생사가 없는 것이 이치이기는 하오나 세상일로는 형님과 가족들과 잠시 이별하는 시간입니다. 이세상에서의 어려웠던 짐들 다 내려놓으시고 감사하면서 홀가분하게 평안의 자리에 드소서.

2020년 10월 26일
인팔형님의 고향 본자리 하관에 인구 동생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