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백마부대의 추억 되살린 一山고봉산 현달산 일대의 동기회 자전거 월례라이딩

여추 2020. 11. 17. 10:38

11.15(일) 09:30, 동기회 자전거동호회 4명이 경의중앙선 금릉역에서 만나 일산 고봉산 풍동 및 현달산 일대를 돌아 대곡역까지 43km 라이딩

이번의 코스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1983년부터 1988년초까지 백마부대에서 공병대대장과 사단군수참모로 꽤나 오랫동안 정이 푹 들었던 곳이다. 그 당시의 시골스럽고 한적했던 풍경에 비해 대부분의 지역이 개발되어 옛모습을 볼 수는 없을지라도 군부대는 그 자리에 있을 것같아 지나는 길에 꼭 방문하고 싶어 콘닥에게 몇군데 포인트를 부탁했다.

백마 공병대대와 고봉산 영천사

30대 중반의 젊은 대대장이 부임했고 대대장 사모님은 아들 둘을 둔 30초반이었으니 부대의 분위기가 싱싱하고 달라졌다. 간부들과도 거의 비슷한 세대로 잘 소통했고 나이든 하사관이나 그 가족들과도 무척 잘 어울리면서 격의없이 지냈다. 부대훈련 행군에서 복귀하는 길에는 가족들이 따끈한 차를 끓여 장병들을 환영했다. 가을의 김장은 부대의 축제같은 행사였다. 무 배추를 절여 부교 배에 담그고 다라이에 양념을 버무려 김치탱크에 저장한다. 일을 끝내고 가족들이 모여 짜장면 한그릇 나눠 먹으면 그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다.

부대 건너편 감내마을 동네와의 교류도 많았다. 밤따러 가기도 했고 부대 체육대회때는 마을에서 음식을 챙겨 위문을 왔다. 급하면 김치도 얻어다 먹었다. 겨울이면 부대 앞 큰 논에 물을 가두어 스케이트장을 만들어 일과후에나 전투체육의 날에는 스케이트를 타고 중대대항 대회도 열었다. 독립중대로 나가있는 2중대가 언제나 1등을 맡아놓고 했던 것같다. 고등학교때부터 스케이트를 탔던 나는 거의 선수급 수준이었다. 부대앞 도로는 비포장 길이라 비만 오면 지나가는 차의 바퀴가 구덩이에 빠져 부대 구난차가 자주 출동했다. 부대안 관사에서 일산에 있는 유치원까지 꽤나 먼 비포장 도로를 아들은 걸어서 다녔다. 구공탄 난방을 했던 관사의 4군데 아궁이에 하루 3번씩 총 12번 연탄을 갈아주어야 했고 단열이 잘 안된 부럭벽과 합판천정에서 겨울이면 찬바람이 일었다.

부대 바깥 풍경에서는 예전의 모습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논이나 밭이 다 집과 공장과 도로로 바뀌었으니 다 생소한 모습이다. 부대 정문으로 들어섰는데 부대도 다 바뀌어 눈에 익은 모습이 없다. 내가 2년 넘게 살았던 관사는 빈자리만 있고 딱 하나 테니스장 입구에 내가 쓴 붓글씨로 새긴 큰 돌비석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덩그러니 서있다. 검정 콜탈을 바른 둥그런 콘셋트였던 대대장실과 본부는 현대화시설로 바뀌었고 부대전체가 짜임새있게 현대화시설로 갖추어져 있다. 바뀐 편제로 개선된 공병장비들이 많이 보인다.

부대에서 일산가기 직전에 홀트아동복지회가 건너편 산밑에 있고 거기를 더 지나 산속에 백마사격장이 있었다. 백마사단 참모로 근무시에 사격선수를 뽑아 훈련을 시킬때 마인드컨트롤 전문가의 지도를 받으며 거기서 사격훈련을 시킨 결과 그해의 상급제대 6개 개인, 단체대회 중에 5개의 우승을 차지하는 명예를 얻으면서 심신수련의 중요성에 대하여 깊이 인식한 바 있다.

예전의 부대는 일산에서 뚝 떨어진 봉일천 가는 비포장도로 중간쯤에 있었다. 논밭 들판을 한참 지나야 다음 마을이 있었고 구불구불 길을 한참 돌아 봉일천으로 가고 현달산 쪽으로 갔다. 그 들판이 다 집과 창고 도로 등으로 빈틈없이 다 들어찼다. 어디가 어딘지 전혀 알 수가 없는 생소한 지역으로 변했다. 당시에 밭떼기 하나를 사두라는 권고도 있었지만 3년 재형저축 들어 300만원 목돈 받아 아무것도 살 형편이 되지 못했다.

사단 군수참모로 있을때는 고생되는 일이야 많았겠지만 항상 신나게 지냈던 시절이었다. 뭐든 할 수 있었고 안되는 일 없이 열정적으로 지냈던 기간이었다. 업무도 잘했고 축구, 테니스, 스케이트 운동도 엄청 잘했다. 최신가요 노래도 잘 불렀고 회식모임도 자주 했다. 송년모임 사회를 맡아 재미있게 진행했다.

35년여 이전의 이런저런 일들을 떠올려 보면서 라이딩 내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속에 공간이 지나갔다. 지나간 시절을 하나도 잡을 수 없듯이 현재의 시간 역시 잡는 순간 지나가 버리고 만다. 그리고 다 지난밤의 꿈과 다름없는 幻에 불과하다. 집착할 것도 없지만 집착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관스레 용만 쓰게 된다. 방법은 하나 - '현재를 타는 것'이다. 영원한 현재로서 '長今'이다. '늘'이다. 그게 바로 '오~늘'인 것이다. 이 얼마나 좋은 선물(present)이며 축복인가? 바퀴위 현재의 길에서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행복의 라이딩이었다.

라이딩 코스:
금릉역~ 공릉천~ 장진천~ 백마 신병교육대~ 백마 공병대대(부대방문)~ 고봉산 만경사,영천사~ 성안마을회관~ 서울, 문산고속도로밑~ 국제공원 묘원~ 공릉천~ 운봉사거리~ 견달산~ 견달산천~ 도촌천~ 갈매지하차도~ 대장천~ 생태공원~ 대곡역(43km)


아침안개가 들판에 자욱하다.

추수한 논마다 수백 수천마리로 보이는 철새떼가 갑자기 나타난 닞선 자전거에 놀라 날아오른다.

예전에 대재장관사가 있었던 자리는 텅 비어있고 비예산 노력동원으로 만든 2면의 테니스코트 자리에는 장비중대가 들어서 있다. 내가 쓴 붓글씨로 돌에 새긴 비석돌은 갈길을 못찾고 덩그러니 서있다.

부대방문으로 후배장병 격려금을 당직근무중인 본부중대장에게 전달

37년 전의 어느 시절

스케이트장, 대대정구장 개장

김장

고명승사단장 부대순시


저기 철탑 보이는 산이 一山의 209m 고봉산 정상이다.

너무 급경사길이라 겨우 끌고 올라간다.

209m 고봉산 영천사 진입 동영상

 음력 초하루날이라 기도오신 신도분들이 많다. 깔끔한 사찰음식으로 점심식사.
37년전 처음 불교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던 사찰이 여기 영천사인데 그때 계셨던 초연스님이 지금도 그 자리에 계신다. 계속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유일한 사찰이기도 하다.

 

경의중앙선 대곡역에서 43km 마감하고 용인수지까지 전철 지하철로 2시간 복귀

산길샘나들이app 코스추적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