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과 종교활동

뉴톤 운동제1법칙 관성의 법칙 - 동쪽으로 기운 나무, 언젠가는 동쪽으로 쓰러진다

여추 2021. 1. 28. 15:10


동쪽으로 기운 나무는 언젠가 동쪽으로 쓰러진다.

김유신이 妓女 천관녀 집으로 습관적으로 간 그의 애마를 베었다는 '庾信斬馬'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또 황소를 팔러 간 장에서 암소를 팔러 온 사돈을 만나 서로 바꾸자고 하여 중개료대신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밤늦게 소를 타고 왔는데 소가 각자 자기 집으로 가는 바람에 사돈집에 가서 사달이 났다는 웃지못할 이야기도 있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몸도 마음도 어제처럼 습관대로 움직이는 관성이 있는 것이다.

무언가 바꾸고 싶지만 잘 안된다.
무의식에서부터 바뀌어야 한다.

지식으로는 일시적으로 신경써서 약간 달라지는 듯 하지만 어떻게 수많은 여러가지를 일일이 신경써서 다 바꾸겠는가? 의지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나뭇가지마다 다 챙길 것없이 뿌리로 바로 들어가 무의식에서부터 통째로 바꾸어야 한다. 무의식이 정화되면 거기서 나오는 모든 것은 다 본성에서 나오기 때문에 맞지않는 선택이 있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누구나 두가지 의식을 다 갖추고 있다. 본성에 대한 성스러운 의식, 그리고 탐진치를 추구하는 세속적인 의식이다.

어느쪽이 지배적인가? 51%가 넘는 쪽으로 조금이라도 기울어지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쪽으로 점점 더 기울어지게 될 것이다.

교회, 법당, 성당 안에서는 성스러운 의식으로 가득하다가 문밖으로 나오면서 세속의 일상으로 금방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운전대를 잡으면 그 증상이 더 심해지는 경향이 된다. 어느쪽의 의식이 나를 차지하고 있는 시간이 더 많은가에 따라 나의 삶이 달라지는 것이다.

1)성령의 체험, 自性의 自覺 기회를 통하여 그게 있다는데 대한 확신(극한적 어려움이나 죽음의 고비를 이겨내면서 체득되는 경우가 많다)

2)이것과 저것을 비교하는 분별의 二分法으로 사는 대부분 일반인의 인식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도 그 구성원의 인식이 어떤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일본인은 '一期一會 一生顯命'에 대한 정신이 국민성으로 자리잡아 지금 하고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만큼의 미래가 온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라 누가 보거나 말거나 자기 일을 꼼꼼하고 성실하게 잘하는 국민성이 있다. 작은 우동집도 대를 이어 계승하고 타일, 보도부럭 하나도 온 정성을 다하여 깔끔하게 부착한다.

우리는 근세에 들어 과거 수백년 동안 '士農工商'의 성리학 사회 서열에 한이 맺혔던 탓인지 부모들이 자기 자식들은 '士'로 진출시키겠다는 학구열로 물불가리지 않고 온갖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이상을 쫓아 뒷바라지하고 노력한 결과 세계최고의 인재들을 배출시킬 수 있었다. 그 인식이 이어져 경쟁이 심화되고 지지않기 위해 가만히 있으면 안되고 또다른 새로운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되고 있다. 그 덕분에 물질적 풍요와 세계 경제대국의 반열에 오르는 큰 외형적 발전을 이루기는 했어도 내면적으로는 안정적이지 못하고 언제나 5%부족하여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면서 들뜨있는 느낌이 든다.

나와 나 아닌 것으로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 나누어 비교하여 우월하거나 열등하다고 느끼면서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계속 추구하는 삶에서는 언제까지 노력해도 결코 완전한 행복을 이루기는 어렵다. 채우는 것으로는 결코 욕망을 다 채울 수가 없는 것이다.

길을 바꾸어야 한다.
안목을 바꾸어야 한다.

문제의 해결을 통해서는 결코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는다. 어떻게 할까? 내가 성숙하여, 나의 안목이 바뀜으로써 기존의 문제가 문제가 되지 않을때 문제는 저절로 없어진다. 세상은 그대로이고 단지 나의 안목이 달라졌을 뿐인데 그렇게 된다. 자식들끼리 티격태격 하는데 부모의 안목이 되어버리면 별 문제가 안되는 것과 같다. 이것과 저것이 나눠져 있으니 사사건건 시비가 일어나는데 세상은 상호 연계, 의존되어 있어 따로 떼어낼 수 없이 한덩어리(一團)라 세상부모의 입장이 되어서 보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두가지의 의식 중에 어느쪽이 우세할 것인가? 그게 인류의 삶의 수준이 되고 나아가 인류의 미래가 될 것이다. 인류의 계속적이고 영원한 과제이다.
1)本性을 자각하고 완전원만한 우주법계에 대한 확신으로 나 자신이 大生命이고 'child of God'이라는 信心을 확고하게 견지한 깨달음이 있는 사람들이 많은 상류사회가 될 것인가?

2)인간의 육체를 물질의 작용으로 보고 세상의 모든 현상도 그 일어난 결과위주로 인식하는 안목으로 사는 사람들로 가득한 약육강식, 경쟁위주의 사회가 될 것인가?

나는 어떤 인식으로 살아갈까?

내가 행복해지는 길은 두가지 갈림길 중에 어느길인지 선택이 가능하다.
분별 비교하는 '검은소'의 길인지?
본성을 알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흰소'의 길인지?

매번 선택의 길목마다 망설이다가 지나고 나면 ''에고, 그 길이 아니었는데...''하는 후회를 반복할 것인가? 언제 어디서라도 항상 '깨어있는 마음'으로 내면의 성령, 불보살이 일으키는 그 본마음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함으로써 언제라도 지혜로운 선택이 되게 할 것인가?

가장 큰 죄는 어리석음이다. 내가 사회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지라도 나 자신의 관리를 할 책임은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있다. 나부터 깨어있는 마음으로 '바른길'을 살아가는게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