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젊은 의사조카와의 데이트 - 삶과 의사의 사명 역할 선문답

여추 2021. 1. 31. 19:08

젊은 의사조카와의 데이트

대구처제 딸이 10여년 전, 한동안 서울 우리집에서 대학교를 다녔다. 내가 출근하는 길이 같은 방향이라 아침에 H大 교실앞까지 태워주기도 했다. 이후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이제 의사가 되어 있다. 수요일 점심때쯤 카톡이 왔다.

''이모부, 어떻게 지내세요?
서울로 가끔 나오세요?''

마침 충무로, 세종로 부근에 일보고 있던 참이었는데 경복궁 근처에 있다고 한다. 세종문화회관 뒷편 커피가 맛있는 '나무사이로' 카페로 갔다. 에티오피아 2110m 고지대에서 Kasahun Jebo농부가 재배한 커피열매 껍질을 약간 벗기고 숙성시켜 걸러낸 특이한 커피가 별미란다. 은은한 장미향의 커피를 마셨다. '喫茶去'를 떠올리며. 3박자 커피를 달달하다고 훌쩍 마시는 '꼰대세대'가 이런 젊은이들의 문화를 어찌 이해하고 소통이 될까 싶다.

''ㅇㅇ과로 가고 싶었는데
ㅇㅇ과로 가게 되었어요.''
''홍체검사를 해봤는데
과거, 현재를 잘 맞추고
적성에 맞는 방향도 언급했어요.''

현상으로 묻고 본질로 답하다

''인과응보가 있는거예요?''

20대 초반이었던 10여년 전인가 간화선 집중수행으로 목에 밤송이가 걸린 듯 답답한 面壁의 상태를 뚫고 直心을 체험한 이후로 나의 어떤 이야기도 다 소통되는 경지가 되어 참 편안하다. 어떤 말도 통한다. 그 경지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고 남녀노소 차이도 없기 때문이다. 텅비어 있으면서도 온갖 것이 다 나오는 창고이기도 하다.

살아보니,
친구들 거의가 퇴직하고 보니,
자기 적성에 맞는 전공을 하고 적성에 맞는 직장에서 만족스럽게 근무했다는 친구들은 많지 않아. 형편되는대로 맞춰 살았어. 대다수 그렇게 적응하고 살고 있지. 어떤 분야에서나 깊이 몰입하면 전문성이 생기고 그렇게 가정을 꾸리고 살아왔어. 아쉬움이 많기도 하지만 다 그런가보다 싶어.

인과응보? 원래는 '인연과보'라고 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을거야. 본질에서는 없고 생멸세계에서는 한치도 틀림없이 있으니까.

본질에서 보면 오직 현재 이 순간밖에 없어. 과거나 미래가 붙을 자리가 없지. 현재까지도 곧 지나가버리는 자리이니까 거기에 業이 붙어 있을 자리가 없어.

그런데 사람은 肉身이 있으니까 시시각각 변하는 생멸세계에 속하지. 그래서 '因緣果報'의 과정을 거쳐. 동물들은 본능으로 살기 때문에 자기 삶을 upgrade 할 기회가 없이 그냥 天壽를 누리고 살지만 사람은 자기가 노력하기에 따라 천국과 지옥으로 나눠지는 기회가 있어.
본질쪽의 깨달음으로 나아갈 것이냐?
상대적인 이분법세계에 계속 머무를 것이냐?

어떤 일을 맡거나
'전력투구 완전연소'
찌꺼기가 남지 않게

''찌꺼기? 그게 무슨 말이예요?''

나의 ego가 일을 하면 몸을 사리게 되고 하는 일이 맞을 수도,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면의 自性(성령, 자성불)이 일을 하면 바르게 하게 될 뿐만 아니라 힘들지가 않아. 또 일이 순리에 맞게 저절로 잘 풀려. 그렇게 하면 항상 최상의 결과가 나오지. 곧 전력투구한 것과 같아져. 그리고 끝나고 그날의 일에 대한 후회가 없으니 아쉬움이나 찌꺼기, 흔적이 남지 않아. 옛 선인들께서 비유하기를 새가 종일 날아다녔어도 허공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과 같다고 했어.

의사는...
사람의 마음치료가 먼저

삶에서 일어나는 생노병사의 大事 중에 삶에서의 즐거움이나 고통문제는 개인적 안목과 노력에 따라 처리될 문제이고 '老病死'가 모두 의사의 역할과 연계되어 있어. '육체는 마음의 그림자'라고 하여 마음의 상태가 육체에 나타난 것이라고 해. 의사는 육체의 病을 고치기 전에 먼저 환자의 마음부터 고치는게 우선이야.
1)의사가 환자로부터 믿음얻기
2)환자의 마음에서 病의 관념 제거하기
3)환자에게 낫는다는 확신, 또 확신 심어주기
4)약과 치료는 보조수단이고 자생력으로 이겨내려는 의지와 자신감 부여

지금시대에는 의료사고로 인한 환자측의 이의제기가 많아 의사가 책임질 말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어 이는 결국 환자들의 병을 잘 낫지 않게 하는 불이익으로 되돌아오는 결과가 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하겠다.
'믿는 만큼 된다'

삶의 정답은?

삶에 어디 정답이 있을까마는 확실한 정답은 답이 없는 곳으로 가는거야. 하는 것이 아닌 하지 않기를 열심히 하는 것이지. 힘을 주지 않고 힘을 빼고 하는 것, 다시 말해서 내가, 나의 ego가 하지 않고 내면의 '自性'이 깨어나 알아서 하게 하는 거야. 그런데 그게 어디 있을까? 바로 이 순간 눈앞(目前)의 여기에!

일산 고봉산 영천사에서 주지 초연스님과 점심식사 및 차담 후에 비내리는 임진각 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