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방식의 기제사 모시는 집안이 드문 것 같다 - 부친제사에 한글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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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16(수) 1990년 음력 7월 초하룻날 85세로 별세하신 부친의 33주기 기제사를 저녁 8시에 우리집에서 여러 가족들이 함께 모인 가운데 모시다.
전통방식의 유지
우리처럼 예전의 전통방식으로 기제사를 제날자에 지내고 설, 추석 명절차례도 대가족이 모여서 모시는 집안이 도시에서는 많지 않아 보인다. 종교로 인해 제사보다는 추도예배 방식으로 하는 경우가 반 이상은 될 것이고 또 명절에 한꺼번에 몰아서 하거나 두분 중 한분의 기일에 통합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또 막상 모시는 경우라도 형제간 가족들이 멀리 떨어져 있고 외국에 나가 있기도 하여 모이기가 쉽지 않다. 또 젊은 며느리들이 이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이어가려는 의지가 약하기도 할 것이다.
어떤 일이거나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하려고 하면 해야할 이유가 있고 문제는 해소해 나가면 될 일인데 반대로 하지 않으려면 안할 핑계들은 얼마든지 있게 마련이다. 그런 방식들이 모여 삶의 습관이 되고 그게 자기의 인생이 된다. 팔자는 그렇게 정해지고 고쳐지게도 되는 것이다.
어릴적부터의 마음습관이 중요
자식들은 가장 먼저 부모로부터 배우고 습관화된다. 생긱하고 마음쓰고 말하는 방식으로부터 식습관, 생활습관 등이 생활속에서 자연스럽게 익혀진다. 학교교육은 그 다음이다.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책임을 학교 선생님들에게 다 떠넘길 수는 없을 것이다.
가장 먼저이고 중요한 요소들이
1)세상을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안목이고
2)그 다음이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런 훈련이 부모들을 보면서 습관적으로 익혀져 평생의 버릇으로 된다.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다.
어느 선진국 초등학교에서는 구구단을 모른다고 한다. 그 대신에 친구들과 잘 노는법, 질서지키기 등을 몸에 익게 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는 것이다. 구구단은 나중에 외워도 생활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제사는 가족만남과 화합의 기회
이런 기회가 아니고서는 이모 고모 사촌 고종 이종 외사촌 등의 2세대, 3세대간 만남의 기회가 별도로 있을 수가 거의 없다. 이런 기회로 인해 연간 서너번은 서로 만나 정보교류와 자연스럽게 서로 경쟁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신경써서 준비하는 한글축문 또한 색다른 반성과 다짐의 기회가 더게 하고 있다. 조상님께 고해 올리는 형식을 취하면서 실제로는 우리들의 생활을 반성하고 정리하며 새로운 도약과 변화를 다짐하도록 한다. 일년에 몇차례씩은 우리네 삶을 되돌아보고 정리하는 기회가 되게 한다.
누군가 실천하고 있어야 전통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시대가 되고 있다. 우리의 전통을 끊어지지 않게 이어가는 것도 우리세대의 역할 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누군가가 실천하고 있어야 전통이 된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는 다음세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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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세이신 자형과 누님께서 매번 참례해주시니 예전처럼 전통적 예법이 수십년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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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일찍 떠나 서울에 자리잡은 자형누님 덕분에 내가 서울로 고등학교를 올 수 있었고 이어서 여동생도 왔다.
고향에서 부모님과 가장 오래 함께 지냈던 남동생이 여러 추억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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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제가 장인에게
서울 광화문지역에 근무하던 코오롱의 신사가 멀리 시골 처가댁으로 울퉁불퉁 비포장길을 달려가서 장인어른이 따라주는 막걸리를 대작했던 신혼시절 젊은날의 추억이 인상깊게 남아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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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 기제사 한글 축문>
維
歲次 癸卯 7月 丙午朔 初하루 丙午 孝子 ㅇㅇ와 자녀, 손주들이 아버님의 33주기 忌日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절기로 입추가 지났어도 삼복더위가 올해는 유난히도 일찍 와서 오래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이전의 긴 장마에서는 집중호우가 쏟아지기도 했고 큰 태풍이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또 그 이전에는 코로나로 인해 많은 이들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마치 삶에서 여러 고비들을 만나고 이겨내면서 성장하듯이 자연은 순조롭지만은 않게 사람을 단련시키고 또 겸손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가족들은 여러 환난가운데에서도 무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모두 다 부모님으로부터 이어받은 지혜와 음덕 덕분으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자녀 손주 외손주들이 모두 우애가 좋고 잘 화합하여 살아가는 모습이 무엇보다 아름답다고 옛 성현들이 말씀하셨듯이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그 근본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른들이 모범을 보이고 자녀 손주들이 저절로 생활에서 습성화되어 집안의 전통 내력으로 이어나갈 수 있게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어제 광복절에는 누님의 외손녀가 결혼을 하는 경사가 있어 형제간이 다 참석하여 축하하고 오랜만에 사형댁 여러 가족들도 만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증손들이 어느새 장성하여 혼사를 하고, 대학을 다니고, 유학을 가고, 집집마다 이제는 세계화로 사는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일들입니다.
수년동안 나라에 여러 어려움으로 많은 국민들이 불편해 오고 있었습니다.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은 국가의 책무라 하더라도 각자의 역할은 자기가 개척해 나가야 하고 그것이 인간의 소명입니다. 우리 가족 젊은이들은 남달리 그 소명을 잘 해내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버님의 기일에 자형 누님을 비롯하여 여러 가족들이 참례했습니다. 이 자리에 사정상 함께하지 못한 자녀 손주들까지 잊지 말고 챙기시어 부모님께서 큰 사랑을 베푸소서.
癸卯年 음력 7월 초하루에 자녀 손주 일동이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