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COVID-19는 惡이고 인간은 善인가?

여추 2020. 3. 26. 00:37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며 산다. 삶의 목적이라고도 할 만하다. 그 수단으로 돈도 벌고 명예를 얻으려 한다. 이를 위해 누구나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개인이나 가정, 문중은 가문을 빛내기 위해, 기업은 이윤추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만족스럽거나 않거나 그 결과물이 지금의 세상이다.

다들 열심히 애쓰고 있지만 성취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한다(謀事在人 成事在天). 그 과정에서 보면 내편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이 상대에게도 이익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손해를 끼치는 상황도 생긴다.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어느쪽이 이익을 보면 다른 쪽은 기회상실의 경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내 자식이 시험에 합격하면 누군가 떨어질 것이고 내가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지는 상대가 생긴다. 올림픽경기 결승전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시청하면서 상대편선수가 실수하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런데 그보다는 우리 선수가 연습한대로 실력을 잘 발휘하도록 기도하는게 훨씬 복짓는 길이 된다. 시험장에서 내 자식이 실력발휘 잘하게 기도하는 건 남을 깎아내리지 않는 길이다.

쉽게 말해서 개체(individual)의 행복을 위해 남의 물건을 가져오는 경우는 자기의 욕망을 충족시키기는 하겠지만 남에게 손해를 끼친다. 모두가 개체인 자신의 욕심 채우는 것을 행복으로 삼는다면 전체적으로 엄청난 혼란이 초래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체의 범위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는 한다. 의식의 범위이다. 군에서 소대장은 우리소대가 이겨야 하고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 올라갈수록 그 범위는 점점 넓고 커진다. 개인적으로도 '호연지기'를 키우면 그 의식이 지구촌을 다 감싸고 우주를 다 덮고 남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전체라는 범주를 인간으로 한정할 것이냐 또는 다른 種(genus)까지 배려하느냐에 따라 또 달라질 것이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 다른 種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것 또한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길이 되지 못한다. 즉, 種간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 種의 이익 추구가 다른 種에게는 惡이 될 수 있을 것이니 전체적으로 완전한 善이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윤리적으로 말하는 善과 惡은 실상은 정확하다고 할 수 없다. 윤리적으로 善이라고 한 일이 다른 種이나 우주만물에 이익되는 일인가 살펴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잡초를 없애려고 제초제를 뿌리고 병충해를 없애기 위해 농약을 뿌리다 보니 메뚜기도 우렁이도 미꾸라지도 다 사라지고 있다. 자연생태계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우주만물의 조화와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이 善이 된다 할 것이지만 善이다 惡이다 나누는 것 자체가 자연입장에서는 맞는 일도 아니다. '天地不仁' 하늘은 누구 편드는 법이 없다. 그저 우주의 운행 원리에 맞게 진행되어 갈 뿐이라 하겠다. 그런데 호모사피엔스는 과학문명의 발달로 인간에 해로운 種에 대해서는 박멸하는 과정을 거치며 살아왔다. 이번의 COVID-19 사태에 대해서도 그러한 대처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에는 숙주인 인간과 공존하는 상태로 종결되어가지 않을까 전망되기도 한다.

현실생활에서 내가 생각을 일으키거나 마음을 쓰고 행한 모든 모든 일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어딘가에 기록되어 남는다. 그게 어디일까? 바로 자기 자신이다. 내 무의식, '초자아'에 다 저장된다. 그 저장된 결과에 따라 생멸세계에 우연인 것처럼 나타나온다. 언제? 오늘 내일 나타나올 수도 있고 시간적 차이를 두고라도 반드시 나타나온다.

내가 짓고 지은대로 사는 세상인 것이다. '種瓜得瓜 種豆得豆 天網恢恢 疎而不漏'(오이씨를 심으면 오이가 나고 콩을 심으면 콩이 나는 것이니 하늘의 그물이 넓고 넓어 성근듯 해도 새나가는 법이 없느니라) -명심보감 天命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