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운명(運命), 어떻게 피하고 어떻게 개척할까?

여추 2021. 1. 11. 12:23



운명(運命)

이미 정해져 있어 피할 수 없는 괴물인가?
개척하여 바꿀 수 있는 것인가?

1)이미 형성되어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경우가 있고
2)아직 형성되지 않아 왠지 느낌이 오고 피하거나 이끌리거나 갈림길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근본자리, 본성에서는 운명이니 業이니 하는 것이 없이 오직 현재 이 순간만이 실체라고 하겠지만

존재로 실재하는 세계에서는 원인에 의해 일이 일어나고 결과가 따른다. 수레가 소를 따르듯이...
일반적으로 '운명'을 이야기하지만 두가지 전혀 다른 상황으로 전개된다.

먼저 첫번째로 알고도 피할 수 없는 경우로서 이미 현상으로 나타나오도록 마치 영화필름의 출연자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로서 이때 예지력으로 미리 안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일어나고 마는 경우이다.
두번째는 미래의 일이 아직은 구체화되어 영화필름으로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누가 그 상황에 끌려들어갈지 튕겨져 나올지 불확실한 경우이다. 오래전에 성수대교,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어 버스와 차량들이 한강에 떨어졌고 많은 백화점 직원과 고객들이 사망했다. 바로 앞 버스를 타고 지나간 사람, 만원버스를 놓쳐 못탄 사람, 신호등 하나 차이로 운명이 갈린 사람도 있다. 백화점에 있던 사람이 점심약속으로 나온 사람이 있고 모처럼 그 안에서 모임약속을 한 예비역선배도 있었다.

어떤 사건이 念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순서를 보면 먼저 다수의 마음이 因子가 되어 同類가 모이는 마음의 법칙에 따라 구름이 일어나듯이 모양이 갖추어지지 않은 채로 모인다. 그것이 점차 크게 모여 집단화됨에 따라 유사한 마음을 끌어당기는 引力도 증가된다.그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는 은근히 끌어당기는 힘이 느껴져서 그 사건을 구성하는 한 인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의 파장이 맞지 않는 사람은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 어쩐지 불쾌하고 불안한 기분을 느껴 그 범위 바깥으로 밀려나게 된다.

예전 전쟁영화에서 화살과 창칼에, 현대전에서는 포탄과 총탄에 무수한 군사들이 쓰러진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는 전쟁 이후까지 살아 남는다. 창칼이든 포탄, 총알이든 밖에서 우리들에게 쳐들어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그것을 끌어당기는 자석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외부에서 창칼이든 총포탄, 재난, 실업, 부상, 病, 코로나이든 다 내부에서 끌어당기는 자석이 있는 것이다. 이 도리를 알게 되면 어떤 재난이나 병에 걸리든 밖에 대해서 원망할 일이 없어진다. '내탓이요'가 저절로 되는 것이다.

내 마음속 좋지않은 자석 제거

나에게 원하지 않는 사건이 일어나오지 않게 하려면 내 마음속에서 그 좋지 않은 성질들을 제거해 내면 된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주위, 환경, 육체의 건강상태 등이 자기의 개선된 마음을 반영해서 개선되어 오는 것이다.

'類類相從'
'類가 아닌 것은 반발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 惡運은 피해가고 행복을 끌어들이는 법칙이고 心的 자석이 된다.
惡運을 끌어당기는 자석역할:
어둡고 날카로운 마음가짐, 생각과 말로 사람을 찌르는 성질, 옹색, 공포심, 걱정, 시기, 질투, 미워하는 마음 등을 버려야 한다.
행복을 끌어당기는 자석역할:
명랑한, 밝은, 사랑깊은, 용서, 포용하는, 관대한, 평화로운, 침착한, 모가 없는, 원만한, 자신감이 있는, child of God으로서 God과 일체라고 믿는 마음의 양성.

이런 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이런 마음의 수양이 되어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는 하다. 어떻게 위의 여러 번잡스러운(?) 수양을 다 실천할 수 있겠느냐고 할런지 모르겠다. 그런데 근본적 원리로 보면 단 한가지라 할 수 있다.

단 하나의 근본원리

'자기가 신의 자식으로서 자기의 생명은 신의 靈이다'라는 사실에 눈뜨는 것이다. '神我一體'라는 진리를 마음바닥 깊은데서 부터 우러나오게 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걷고 움직이는 이 '육신'을 끌고 다니는 주인공을 확실하게 인식하는 것이라 하겠다.

(추후게재; 병은 없다. 實想觀 英文 기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