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공탄' 사연

사람들마다 연탄에 대하여 가진 경험요소가 다르다. 육사총동창회 주관 연말봉사활동으로 해마다 가는 중계동 백사마을로 선후배 50여명이  연탄지원 봉사활동에 동참하던 중, 연탄과 연계된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하다 보니 가장 많은 의견이 '연탄가스 중독'에 대한 경험들이다.

나에게 언뜻 떠오른 기억은 연탄운반 아르바이트 시절이다. 백사마을 만큼이나 비탈지고 구불구불한 좁은 골목길로 신당동 연탄공장에서 산동네인 유락동, 도선동으로 지게나 빨래판, 새끼줄 등을 이용하여 연탄을 운반해 주는 아르바이트가 먼저 떠오른 것이다. 50여년전 고교시절의 일이었다. 물론 연탄가스 중독의 경험도 수차례 있었지만 '김치국물' 마시는 것으로 대부분 해소되었다.

'80년대 중반 대대장시절의 우리 관사도 연탄아궁이가 4개였던가 싶다. 하루 3번씩 12장을 갈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꺼지지 않게 제때 시간을 잘 맞추고 공기통 조절을 적절하게 해야 했다.

옛날이야기인 것 같지만 그 시절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거기에 가면 아직 있다. 3년전부터 갔던 중계동 백사마을이다. 세월이 흘러도 시간이 그대로 멈춘듯한 곳이다. 1년에 연말봉사로 한번 찾아가 생색내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지만 그렇다고 달리 대안도 없는 것 같다. 마을 전체가 재개발되거나 해야 하는데 집집마다 이해관계가 달라 추진할 방도가 없나보다. 이런 여건의 동네가 비단 여기뿐만 아니라 수도서울 곳곳에 비슷한 모습으로 산재해 있다.

백사마을 여러집 중에 20집에 각각 쌀 한포대와 연탄 200장씩을 창고에 쌓아주는 봉사이다. 차량이 진입하는 곳의 공터에 미리 사서 갖다놓은 연탄을 좁은 골목 이집 저집 비좁은 창고로 운반하여 차곡차곡 쌓아주는 일이다. 가까운 집은 골목으로 길게 줄을 서서 전달전달 하여 비교적 운반이 쉽지만 먼곳은 지게에 6장씩 져다 나르거나 2장씩 가슴에 안아서 날라 쌓는다.

줄을 서서 한장한장 세어가며 전달전달하는 방식으로는 같은 동작을 200번 반복하는 그리 쉽지 않은 노동이다. 추운 날씨인데도 온몸에 땀이 흐를 정도이다. 면장갑의 등으로 콧물을 닦느라 코밑도 얼굴도 시커멓게 되고 팔다리도 아프지만 모든 사람의 얼굴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나이가 80대에서 30대까지 4~50년 차이나는 선후배가 옆에 옆에 줄서서 함께 일하는 이런 일이 다른 활동에서는 보기 어렵다. 이 일을 하는 동안은 모두가 한뜻이 된다.

 친목과 화합을 이루는데 이만한 활동이 어디 또 있겠느냐고 어느 후배가 이야기한다. 골프나 테니스처럼 서로 이기려는 경쟁이 아닌 순수한 협동이다.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아도 호흡이 척척 맞아 들어간다. 어느 후배가 노선배의 일을 대신할 수도 없는 일이다. 다만 인원이 충분하지 않아 길게 줄을 서지 못하니 한사람이 몇발자욱씩 이동하여 전달하느라 더 땀을 흘리기도 한다. 그 대신 활동량은 많아지고 잡념이 들어설 틈이 없어진다. 힘들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어 집중은 더 잘된다. 노동을 하면서도 엔돌핀이 푹푹 솟아나는 분위기로 웃음꽃이 끊이지 않는다.

40기 후배기에서는 부부동반으로 2가족이 동참했고 62기 여자 후배도 작년도에 이어 참가했다. 시간여건이 되면 자녀들까지 함께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저절로 느끼게 하는 자녀교육이 되고 어떤 과외공부보다 인성을 풍부하게 해줄 테니까 말이다.

멀리 북한산 너머로 해가지고 찬기운이 일기 시작하는 어둑해질 즈음에 일을 마무리하고 주로 노인네들이 살고계신 그 마을에 이런 작은 봉사기회가 주어진 데에 감사함과 미안한 마음, 그나마 우리라도 이런 이웃돕기 이벤트를 했다는 조금은 뿌듯한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생도시절 훈육관이셨던 81세 박윤종선배님과

80대 노인과 30대 젊은이가 함께

이골목 저골목으로

먼길엔 지게로 운반

동기회 전후임 감사가 동참

화랑회관에서의 저녁식사에서 총동창회장 인사

20기에서 동기회장 등 선배 두분이 참석

40기 부부참석자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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