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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0.29(목) 10:30, 안국역 3출구에서 소대장친구 용성회 5명이 만나 창덕궁 낙선재 창경궁 가을단풍속 역사문화 답사를 하고 종로5가역 부근 맛집에서 점심식사

창덕궁 후원을 인터넷으로 예약하려 했는데 6일전 아침 10시 예약시작 10여초만에 마감되어 버린다. 전산전문가 아들과 둘이서 시도해도 시간, 인원 누르는 사이에 매진이다. AI나 예약프로그램으로 하나 싶다. 당일 아침 일찍 현장 매표가 가능한데 선착순이라 새벽에 가서 줄서서 기다려야 되니 그것도 쉽지 않다. 부득이 일반관람코스로 전각, 낙선재, 창경궁을 돌아보기로 했다.

비가 내릴듯 말듯 으시시하게 쌀쌀한 아침이다. 내복과 바람막이를 껴입은 덕분에 그리 춥지는 않은데 손이 시려 흰장갑을 끼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데 추위에도 한복을 입고 거닐고 있다. 영국인 부부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그리스 관광객 할머니 두분이 유인물을 들고와서 kyungkung이 어디냐고 묻는다. AI에게 물어보아도 경궁이라고는 없다. 우리는 유럽여행가면 유명 명소 기념촬영 하고는 곧바로 다음장소로 이동해 가는데 이 할머니들은 전문가인지 사전연구를 하고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핀다. 고고학을 연구하는 분들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창덕궁의 주궁인 인정전을 돌아 낙선재에서 역사를 회고하고 창경궁으로 진입하여 춘당지, 식물원을 돌고 숲속 정자에서 커피를 나눈 후에 출구로 나와 종로5가역 부근 맛집 가정식양푼이 식당에서 뜨끈한 생대구탕과 갈치찜으로 점심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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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인정전을 지나 낙선재로

한복차림의 외국인들이 많다.

돌감이 조랑조랑 열렸다.

창덕궁에서 창경궁으로 진입

춘당지

춘당지에 비친 데칼코마니 풍경이 예쁘다.

기이한 형상의 팔각칠층석탑

식물원을 지나서

춘당지단풍

희귀한 백송 3그루의 자태가 품격이 있어 보인다.

창경궁의 주궁

서울대병원쪽 출구로 나와서 종로5가쪽으로 1.8km 이동하여 보령약국 골목의 가정식양푼이 식당에서 생대구탕과 갈치조림으로 점심식사. 쌀쌀한날 뜨끈한 국물이 일품이다.

창덕궁은:
1405년(태종 5년) 조선의 두 번째 궁궐(이궁)로 세워졌다.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재건되지 못했을 때 약 270년간 조선의 실질적인 메인 궁궐(법궁) 역할을 했다.

낙선재는:

1847년(헌종 13년) 조선 제24대 왕인 헌종이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순조)의 명을 받들어 후궁인 경빈 김씨를 위해 지은 석복헌, 어머니(효명세자의 비, 신정왕후(神貞王后, 조대비)와 할머니(순조의 비 순원왕후)를 모시기 위한 수강재, 그리고 자신의 서재 겸 사랑채인 낙선재로서 이 세 건물을 통틀어 흔히 '낙선재'라 부른다.

낙선재는 조선 왕조가 막을 내린 후에도 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 비운과 삶이 고스란히 머물렀던 공간으로 가슴 아픈 역사를 품고 있다.
영친왕과 덕혜옹주의 귀환: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강제 끌려갔던 고종의 황태자 영친왕과 일본인 아내 이방자 여사, 그리고 비운의 황녀 덕혜옹주가 해방 이후 오랜 외국 생활 끝에 돌아와 말년을 보낸 곳이 바로 낙선재이다.
순정효황후의 거처: 순종의 비인 순정효황후 윤씨 역시 6·25 전쟁 중에도 낙선재를 지키며 이곳에서 평생을 보냈다. 1989년 이방자 여사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낙선재는 조선 왕실의 혈통이 마지막까지 맥을 이어가며 숨 쉬던 쓸쓸하면서도 마지막 남은 보루였다.


창경궁은:

1483년(성종 14년) 성종이 세 분의 대비(정희왕후, 안순왕후, 공혜왕후)를 모시기 위해 세운 궁궐이다. 궁궐의 규모보다는 생활 공간으로서의 아늑함과 효심이 담겨 있다.
보통 궁궐은 남쪽을 바라보고 지어지지만, 창경궁의 으뜸 전각인 명정전(明政殿)은 지형적 특성과 대비전의 위치를 고려해 동쪽을 바라보도록 지어졌다.

일제시대의 수난:
일제는 창경궁의 건물을 허물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어 '창경원(昌慶園)'으로 격하했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동물원을 과천으로 옮기고 궁궐의 이름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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