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구하는 바 없는 삶을 살아가기

''전장군은 어떻게 인생을 살아나가?''
뜬금없이 옆친구가 점심식사하면서 묻는다. 남의 인생이 뭐 그리 궁금해서 물을까? 아마 자기의 근래 관심사항이 그런가 보다. 내가 자주 올리는 글에 걸리는게 있어서 나에게 던지는 말인가 싶다.

초임장교로 소대장을 함께 했던 학군출신 친구 3명과 지금도 주기적으로 모임을 가지고 있는데 그 친구는 서울대출신에다 나보다 훨씬 풍요롭고 좋은 사회적 여건에서 살아왔다. 이제 퇴직하고 보니 무척 화려하고 활동적이었던 지난 현직때의 생활이나 명예와 재산을 추구했던 일들이 다 지난밤의 꿈과 다르지 않게 잡히는 게 아무것도 없을게다. 오로지 있다면 지금 눈앞에 펼쳐진 현상, 그리고 내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고 하고 있느냐 하는 것들 뿐.

“나? 아무 추구하는 것 없이 사는 게 목표야. 무언가 추구할수록 욕심이 일어나 마음의 자유로움을 잃어버리게 되니까 말일세.”
 
두가지 차원의 안목을 열자
 
세상은 두가지 차원으로 돌아가고 있다. 카테고리가 전혀 다른 두가지 차원 가운데 우리는 그 중 한가지 안목만 가지고 산다. 

첫번째는 현상으로 일어난 결과의 세계 위주의 안목이다. 계속 일어나오고 또 사라지는 그런 일들이다. 그 나타나온 현상에 대하여 만족하며 기뻐하기도 하고 반대로 부족하고 성취하지 못한 일에 걱정하고 괴로워 하며 화가 나기도 하는 등 돈과 명예를 평생 쫓아다니며 살고 있다. 아무리 채워도 완전한 만족이나 행복은 없고 추구하는 것이 끝이 없다.

여기에 다른 한 카테고리가 있다. 앞에서 일어난 모든 현상들이 나오는 ‘바탕’이다. 보물창고처럼 없는 것 없이 다 거기서 나오기는 하는데 거기는 텅 비어 있다. 비어 있으니 무한하다. 그 바탕은 나를 포함하여 전체를 다 감싸고 있는 분리되지 않는 한덩어리이다. '본체'가 시시각각으로 온갖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내며 생명력을 키워낸다. 내가 잠자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움직여 내 심장이 뛰게 하고 오장육부가 활동하게 하며 낮 동안에 방전되었던 에너지를 밤에 잠자는 사이에 자동적으로 충전시켜 주어 아침이 되면 싱싱한 하루가 시작되게 해 준다. 그 사이에 지구와 해가 운행하여 밝은 아침해가 떠오르고 바다는 파도를 일으키며 창공은 푸르고 산천대지와 뭇 생명들이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한다. 크나큰 축복이다. 나뿐만 아니라 세상 만물이 다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자기 방식대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게 서로서로 조화를 이룬다. 이 차원에서 보면 원래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누구나 세상일에 사소한 문제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첫 번째 차원에서의 일이다. 그 문제들을 완전하게 해결하는 길은 그 첫번째 차원에는 없다. 어느 편에서 해결된 듯이 보이는게 다른 쪽에서는 더 큰 문제로 된다. 사람이 도모하는 어떤 일이나 사회적 제도가 다 그렇다. 상대적 세계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완전한 해결은 나의 안목이 달라져서 지금까지 문제로 보였던 일들이 문제로 보이지 않게 될 때 완전하게 해결된다. 두번째 카테고리의 안목으로 넖히는 것이다. 외부에서 구하는게 아니라 나한테 있는 것이라 터득하면 된다.
 
‘浩然之氣’를 키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려하기 전에 나를 바꾸자. 자녀와 가족, 가정과 부대, 사회와 국가를 바꾸기보다 나를 바꾸는게 더 쉽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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