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형 누님이 생면부지의 서울땅에 맨손으로 상경한 1963년 3월

신당동 부근의 산비탈 달동네 유락동 판잣집 셋방으로 서울생활을 시작한지 60년이 된다.

그 덕분에 나는 다음해에 그 동네 부근의 성동고로 시골에서 유학을 오게 되었고 그 다음 육사로 이어지면서 지금의 내 삶이 되었다. 이어서 여동생도, 형님도, 마지막으로 남동생까지 서울로 오게 된 인연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어릴적부터 자형은 우리집 맏사위로서 부모님을 대신해서 우리들의 인생멘토 역할을 하셨다. 그 길이 언제나 바른 길이었고 앞날을 내다보는 안목에서 코치역할을 해 주셨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그때로부터 66년동안 우리들의 인연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으니 우리 형제자매들은 서로 궁합이 잘 맞나 보다. 지역적으로 자주 만날 수 있는 여건에 살고 있는데다가 맏이가 든든하게 자리를 잡고 아래에서 잘 동참하니 화합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없다.

교직근무 보직으로 진주지역에서 조금 지냈던 몇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기간을 전농동과 장안평지역에서 사셨다. 그 터전이 좋아서인지 그 동안 4남매 자녀들 키우고 손주들이 덩실덩실 자라나 열댓명의 대가족으로 늘어났다.

89세의 고령이시지만 형제자매간 가까운 지역 휴양림 여행이나 맛집 점심식사 모임도 자주 가진다. 여동생네 집에서 매제가 조리한 맛깔스런 식사를 하고 치매예방에 좋다고 100원짜리 고스톱도 뒷풀이로 한다. 농담처럼 장수비결을 제안한다. 이런 식사자리 자주 가지고 고스톱 계속할 수 있으면 건강하고 치매 안걸린다고... 따는 돈은 누님 용돈으로 드리면 '금상첨화'

오래 살아온 지역이라 이웃도 많아 지내기 좋기는 하지만 연세많은 분들의 응급상황 발생시 멀리 사는 자녀들에게는 큰 걱정이 된다. 아들들이 사는 용인수지 가까운 곳으로 가서 살아야 자녀들도 마음이 놓이고 왕래도 쉽게 될 것이니 이제는 부모가 자녀들의 여건에 맞춰 사는게 좋겠다고 자형이 결심을 하시고 드디어 이사날을 앞두고 있다. 공간의 이동이 생활의 새로운 활력이 되기도 할 것이니 새 터전에서 큰 生氣를 받아 건강, 행복하시기를 축원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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