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3.9(일) 10시, 잠수교 남단에서 고교 바이콜릭스 6명이 만나 라이딩 시작
19년째 472차 라이딩
고교 바이콜릭스가 회갑이전인 2007년 9월에 출범하여 19년째로 접어든다. 올해의 첫번째 라이딩으로 통산 472회째가 된다. 3.1절 기념라이딩으로 첫 시작을 하는데 올해는 늦추위로 1주 늦게 시작되었다. 탑골공원과 태화관 등 3.1절 유적지를 돌아보는 코스이다.
대원들이 처음에는 5명으로 시작하여 20명 이상까지 늘어났다가 이제는 6명으로 줄어들었다. 자전거는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그대로인데 사람의 여건은 하루가 다르게 빨리 변해가고 있다. 초기에는 하루에 80~ 100km 정도 돌았는데 지금은 절반 정도로 거리가 줄어들었고 속도도 무척 느리다. 오르막코스가 곳곳에 많아 이제는 작은 밧데리 모터를 다 부착했다. 그 덕분에 어떤 코스든지 갈 수 있게 되어서 좋고 크게 힘든 부담감이 없어서 마음이 편안하다.
한강 청계천변 명품 자전거길
용인수지 집에서 전철로 1시간여 걸려 고속터미널역에 도착하여 한강공원으로 이동했다. 자전거타는 사람, 달리기, 걷는 사람 등으로 한강공원은 모처럼 따스한 주말을 맞아 사람들로 북적인다. 잠수교 남단에서 6명이 10시에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잠수교를 건너 북단으로 이동, 한강상류를 향해 라이딩을 시작했다. 작년 10월말의 라이딩 이후 4개월 넘어 첫 라이딩이라 자전거와 한몸이 되는데 한참이나 걸린다.
살곶이공원, 중랑천과 청계천이 합류되는 지점에서 첫 휴식, 간식을 했다. 이제부터는 청계천과 서울시내 구간의 길거리 라이딩이다. 도로옆에 자전거길이 있기는 하지만 교차로마다 신호등에 멈추고 건너기를 반복한다.
60여넌전인 1960년대 중반, 고교시절부터 예전의 한강과 중랑천, 청계천을 보고 그 변화되어온 모습을 지켜봤던 터라 지금의 산뜻하게 정리된 풍경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여름에 수영을 했고 겨울에는 스케이트를 탔던 한강, 여름장마와 홍수로 제방이 넘치고 물난리가 났던 한강이었다. 중랑천에는 장화를 신지 않고는 물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의 오염된 물이 흘렀다. 청계천변으로는 판잣집이 즐비했고 쓰레기는 청계천에 다 버렸다.
전두환대통령시절에 대대적인 한강정비사업이 시작되고 상류에 소양댐이 건설되면서 홍수조절이 가능하게 되었고 이후 고수부지는 아름다운 공원으로 변모했다.
중랑천, 청계천도 여러 차례의 변화를 거듭하여 오늘과 같은 세계 최고의 명품 개천과 관광상품으로 바뀌었다. 놀라운 변화라 아니할 수 없다.
1919년 3.1운동 유적지 순회
1919년 3.1운동이 시작된 탑골공원으로 갔다. 태화관에서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고 3월1일 정오에는 많은 국민들이 탑골공원에 모여 웅성이는 가운데 한 학생대표가 주머니에 숨겨온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이를 기점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운동이 전국에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당시 참여자는 전국적으로 205만명, 희생자는 7700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태화관터를 돌아보고 안국동을 지나면서 윤대통령 탄핵반대집회와 단식농성, 1인시위가 진행되고 있는 헌법재판소 앞으로 갔다. 우리 지역구인 용인 병 당협위원장 고석후배가 릴레이 1인시위를 하고 있어 격려했다.
독립선언서가 인쇄되었던 보성사터로 갔다. 조계사 바로 뒷편이다. 천도교 교주 의암 손병희의 특명으로 육당 최남선이 초안을 집필하고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독립선언서를 보성사 이종일사장이 넘겨받아 1919년 2월27일 밤에 3만5천장을 인쇄하여 족보로 위장, 전국에 배포했다고 한다. 日警은 이후에 보성사를 폐쇄하고 불태웠다.
이 자리는 이후에 숙명여학교의 자리가 되었다가 도곡동으로 이전해 갔다.
전쟁기념관 기념탑에서 마감
청계천 소라탑, 시청을 지나 남대문 건너편 대한상공회의소 앞 공터에서 잠시 쉬면서 남대문과 한양도성의 역사를 회고했다. 서울역, 숙대앞을 지나 오늘의 최종목적지 전쟁기념관 기념탑 앞에 이르러 탑과 남산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오늘의 라이딩을 마무리했다.
현재 집중이 쉽기도 어렵기도
기다리는 봄은 더디게 오지만 반드시 온다. 겨울 지내기가 별것 아니었는데 지난 겨울은 무섭도록 추웠다. 그래도 거의 하루도 쉼없는 일정들을 빠지지 않고 소화해내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되돌아 보면 언제나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왜냐하면 fact는 오직 지금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게 쉬울 것 같으면서 가장 쉽지 않다. 그게 되지 않아 천국과 지옥이 벌어지고 生老病死를 비롯한 4苦8苦가 일어나며 이것과 저것이 다른 것이 되면서 세상이 양극화로 나눠지게 된다. 나로부터 돌쩌귀의 축이 되면 아무리 문이 여닫혀도 중심을 잃지 않게 될 것이다.
올해도 바이콜릭스의 바퀴는 힘차게 굴러 8순을 향하는 친구들의 심신이 더욱 강건해지면 좋겠다.
브라보 바이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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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딩 코스: 잠수교남단~ 북단으로 건너 상류로 한강자전거길~ 살곶이체육공원~ 청계천 상류로~ 삼일교~ 삼일대로~ 평화시장~ 황학시장~ 종로2가 교차로~ 탑골공원~ 헌법재판소~ 태화관터~ 보성사터~ 시청~ 남대문~ 서울역~ 전쟁기념관~ 삼각지역(30km)
<코스 이동로>

잠수교남단에서 10시에 만나 잠수교를 건너 상류로 이동시작



동영상
중랑천과 청계천이 합류하는 곳에서 잠시 휴식


청계천에서 삼일로로 올라와

청계천 북측 자전거길을 따라

교차로 신호등마다 멈췄다가

출발


황학동 황학시장에는 사람들로 가득, 1만원으로 여러가지를 살 수 있는 명물 시장이다.



왼쪽 건너편에 평화시장


탑골공원을 향해

무료급식소 대기자들이 여기저기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

어느 단체 댄스팀의 길거리공연


삼일문을 지나 탑골공원 안으로

여기저기 공사가 많다.

1919년 3월1일, 정오에 독립선언서가 발표되었던 팔각정

동쪽 후문으로 나서니 여기에도 무료급식소마다 길게 줄을 서있다.



안국동방향 경운궁 맞은편 대청마루 식당에서 돌솥굴밥으로 점심식사


안국동 헌법재판소 앞을 지나며


우리지역 용인 병 고석 당협위원장의 1인시위 격려

조계사 앞을 지나먼서 기도

3.1운동시 민족대표 33인이 모여 회의를 했던 태화관터

당시의 역사자료들이 그림과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다.


민족대표 33인의 태화관 회의

1920년경,
미국의 이런 젊은 선교사들이 한국의 교육과 의료 등 여러 분야에서 개화의 역할을 했다.




이렇게 공부를 했다.

독립선언서가 인쇄되었던 인쇄소 보성사터(조계사 바로 뒷쪽)

당시 보성사 이종일사장의 동상

고려말 충신 목은 이색선생 영정이 모셔진 사당이 바로 옆에 있다.


같은 자리에 숙명여학교 옛터 표지석

시청과 국보1호 남대문을 지나고

남대문 앞 상공회의소 공터에서 남대문 역사회고

오늘의 목적지 전쟁기념관 기념탑

16시경 삼각지역에서 마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