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산자연휴양림 낙엽쌓인 오솔길 산책 중에 날이 저문다. 보름날이 가까워지는 동쪽하늘 나뭇가지 사이에 둥그스름한 달이 걸려있다. 주변으로 일찍 뜨는 별도 몇개 나뭇가지 끝에 달렸다. 해가 진 서쪽 하늘은 아직 불그스레한데 어디선가 서늘한 바람 한줄기가 볼을 스쳐간다.

무어라 표현하지는 못해도 풍경 그대로가 그림이고 詩이며 발표되지 않은 수필이다. 말을 꺼내면 곧 군더더기가 될 듯하다.

숲해설가 양승길선생이 이 분위기에 딱 맞는 詩로 운을 띄운다. 긴 시를 외워서 낭송해 준다. 젊은 윤동주시인이 어찌 7,80년 이후 우리가 이 순간, 여기에 올 것을 알고 이 詩를 써서 낭송하나 싶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거외다.

 침묵이 흐르다가 박수를 쳤다.

청년 윤동주는 우리나이 29살에 요절했다. 허난설헌은 27살, 이효석은 36살, 신사임당은 49살, 나이에 상관없이 명작을 남겼다.

창바깥으로 멀리 산등성이가 내다보이는 널찍한 창문집 맛집에서 식사를 하고 커피까지 한잔 하면서 초저녁의 윤동주 詩에 대한 화답을 했다.

이제 곧 겨울이 올 것같은 분위기에서 문득 떠오르는 백석시인의 詩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윤동주(1917~ 1945)

백석(백기행 1912~ 1996)
윤동주가 가장 흠모했던 5살 위의 천재서정시인.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학 영어사범과 졸업 후 조선일보와 함흥의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독일어,영어,러시아어에도 능통했다고 한다

백석시인에게 빼놓을 수 없는 여인 자야(子夜, 김영한,吉祥華)
1916년 서울 태생/ 1931년 첫 남편 만나 얼마 후 자살/ 권번 기생수업/ 1936년경 함흥에서 백석을 만남/ 서울에서 3년간 동거/ 1939년 백석이 만주 신경으로 가면서 헤어짐/1953년 중앙대학교 영문과를 만학으로 졸업/ 1987년 미국 체류시 법정스님께 대원각 시주 의사(싯가 1,000억원)
/1997년 길상사로 개원법회/ 1999년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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