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비같은 제법 굵은 비가 종일토록 대지가 흠뻑 젖을 만큼이나 내린 날이었다. 오랫만에 스님들과 원우들을 만난다는 설렘으로 빗속에 먼길을 비행기로, 차로 달려와 모였다.

경북 칠곡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호젓한 곳에 '석정사' 새 터전을 마련하여 중생제도에 애쓰시는 명효, 견진스님께서 원우들을 초청하여 하루 일정을 준비해주셨다.

큰길에서 나즈막한 산길을 잠시 돌아서니 거기 시계가 탁트이는 절경 속에 작은 맞배지붕 법당과 삼성각, 그리고 요사채 건물을 갖춘 석정사가 앞으로는 강 건너로 三峯의 조복을 받고 뒤로는 참나무 대나무숲의 산자락을 배경으로 고요함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입구의 일주문 아치 부근에 백구 한마리의 움직임 외에는 적막하리 만큼 고요한 풍경이다.

내리는 빗방울이 나뭇잎을 때리며 흘러내리는 소리와 처마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퐁당 소리가 살아 있다. 같은 물인데도 바로 앞에 흐르는 큰물, 넓은 낙동강은 소리없이 넘실거리며 흘러 간다. 그 흐름의 내면에는 엄청난 힘이 잠재되어 있다. 마치 세월의 흐름이 모든 것을 안은채 쓸고 지나가는 것같다. 그 흐름에 나도 우리도 모두 하염없이 떠내려 가고 있다.
부처님 열반시에 제자들이 물었다.
''이제 부처님이 안계시면 저희는 어디에 의지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自燈明 法燈明하라!''
燈은 불을 밝히는 등이기도 하고,
또 강하구의 '삼각주'이기도 하다. 세월의 강물에 휩쓸려 바타로 내려 가다가 하구의 섬에 이르러 거기 멈춰보면 홍수에 떠내려가는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순간순간 계속 일어나는 일에 끌려다니지 않고 '지금-여기'에서 슬로비디오처럼 일어나고 지나가는 세상을 관조하는 안목이 된다.

바로 그 위치에 자리잡은 석정사는 많은 이들의 헐떡이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나아가 생멸세계의 안목에서 진여세계의 안목을 열어주기에 딱맞는 도량이 아닌가 싶다. 두 스님께서 이 자리에 이르게 하기 위해 그 숱한 고행과 같은 과정이 있었나 보다. 봄에 소쩍새가 울었고 여름 소나기와 천둥번개가 요란했었나 보다. 그래서 이제서야 아름다운 국화꽃을 피우게 되었나 보다. 

빗속 고속도로 왕복 9시간 운전하고 다녀왔어도 여럿이 함께하니 그리 힘든줄 모르겠다. 빗속 분위기가 들뜨지 않고 차분하게 해준다. '자등명 법등명'의 진리를 가시적으로 인상깊게 새겨주면서 오래 기억에 남을  사찰순례가 되었다.

석정사 입구, 출구

맞배지붕의 아담한 대웅전

삼성각

앞으로는 낙동강

선물로 주신 찻잔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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