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역 토요일은 항상 붐빈다. 특히 저녁시간은 더하다. 태극기를 들고 지하로 내려오는 분들이 대부분인걸 보면 집회가 끝나고 귀가하는 분들인 것 같다. 영하10도가 더되는 추위에 방한복으로 무장을 했어도 연세드신 분들의 얼굴이 얼어있어 보인다. 그래도 끼리끼리의 대화와 행동에서 열정이 느껴진다. 막상 지하철에 들어서니 기존의 타고있던 승객들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표정들이다. 전쟁터에서 생사의 고비를 무수히 넘기고 살아 고향에 돌아온 군인이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의 별일없는 일상을 보는 느낌이 이런 기분일까 싶다.






우리 고교 친구 10여명은 오후1시 대학로에 모여 간단하게 점심식사 후 2시간 정도 본행사 하고는 종로5가 청계천 을지로 지나고 퇴계로따라 충무로 MBN 지나며 구호제창하고 남대문 시청앞까지 3시간 정도 걸어 오후 6시반경에 도착했다. 발이 얼어 감각이 없고 손가락이 곧아 폰사진 찍기도 어려울 이런 지경이 언제 있었나 싶다. 찬바람까지 불어 들고가는 깃대를 가누기가 버겁다.

호연지기 키우는 기회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와 내가족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왔던 일상적 의식수준으로부터 근래 한달여 동안 태극기를 들고 집회에 참여하는 사이에 갑자기 '나라'를 걱정하는 차원으로 의식의 크기가 늘어나고 있다. 이전에 그럴 일이 거의 없었던 현상이다. 누가 시키거나 강요해서가 아닌 자발적 참여가 대다수로 보인다. 어느 연사가 말한다. 1919년 3.1운동 이후 100년만에 태극기 물결이 전국으로 점차 퍼져나가고 있다고.

다만 그 뜻이 ego의 욕심, 내것을 지키려는 사사로운 마음이 아닌 '국태민안'을 도모하는 마음으로부터 나온 경우라면 이런 기회야말로 내 몸뚱이 피부경계선 안에 있는 부분을 나로 삼아 나와 나 아닌 것과의 분별 위주로 살아온 상대세계에서 크게한번 벗어나 내 의식의 차원을 넓히고 높혀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자녀세대들이 주로 가려고 하는 촛불집회에서나 어른들 위주의 태극기집회에서나 그 구호나 말에 떨어지지 않고 나와 우리와 세상이 좋아지게 한다는 마음이라면 다 그런 기회가 된다.

다만 ego가 세운 '이데아'의 자리에 어떤 가치관을 올려놓고 이를 달성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는 '투사, 혁명가'의 인식수준에 빠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우리 사는 세대에 한번 올까말까 하는 이런 역사의 현장에서 내 삶과 의식수준을 점검해보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체험을 꼭 해보기를 권유하고 싶다. 








'백장과 여우' 이야기 - '말'의 과보

학인이 노스승께 여쭈었다.
"깨달은 분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因果不落"(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잘못 대답한 과보로 500生 여우의 몸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후에 백장선사의 법문을 듣고 선사에게 같은 질문을 했고 선사의 "因果不昧"라는 대답에 깨우침을 얻어 여우의 몸을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말 한마디의 과보가 이처럼 큰 것인데 우리는 일상적으로 무심코 막말을 조심하지 않는다. 특히 다수의 집회에 참가하면 군중심리에 의해 말이 과장되고 거칠어지는 경우가 많다. 설사 말은 그리 하더라도 상대가 좋아지게 되게 하는 따뜻한 마음을 내어야지 '증오'의 마음을 내지 않게 살필 일이다.

성경의 말씀 - '생각'의 과보

성경에 이런 내용이 있다.
'간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죄가 되고 훔치고 싶다는 생각을 일으킨 것만으로도 죄가 된다'
 
명심보감에 이런 말이 있다.
'天網恢恢하나 疎而不漏니라'
(하늘의 그물이 넓고 넓어 무척 성글어 보이지만 절대 새나가는 법이 없느니라.)
'暗中欺心이라도 天聽은 若雷니라'
(누가 보거나 듣지 않는 깜깜한 곳에서 일으키는 어떤 마음이라도 하늘은 번개같이 다 알게 되느니라.)
책에 쓰인 말이라고 외워서 써먹는 그런 지식적인 말들이 아니다. 마음의 속성과 생각을 일으키는 원리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남이 보거나 듣거나 하지 않아도 내가 일으킨 생각은 내 마음에 새겨져 무의식 속에 남게 되니 나중에 거울에 비쳐보면 속일 수 없이 그대로 다 나타난다. 내 마음이 곧 우주마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어떤 상황에서 부득이 함께 어떤 말을 할지라도 그 마음을 '집착함'없이 낸다면 허공을 나는 새가 흔적을 남기지 않듯 그렇게 되지 않겠는가? 치우친 마음끼리 부딪쳐 혼란스러운 이런 때일수록 극단으로 끄달려 가려는 내 마음을 잘 다스릴 때이다.


- 如樞(돌쩌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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