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7(일) 10:30, 국방부원광사에서 지효 손영주법사의 법문으로 일요법회 봉행
부처님법(佛法)이 여러 경전으로 전해져 와서 경전을 통해 불교를 접하고 공부를 하지만 부처님께서 궁국적으로 중생들에게 하신 말씀의 핵심은 삶에서 일어나는 근심, 걱정, 감정, 병 등의 여러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행복하게 사는 길'을 제시해 주신 것이다.
지위의 높고 낮음이나 지식수준에도 관계없고 남녀노소 누구나 똑같이 그렇게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경지는 부처님의 경지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佛法에서는 모두가 '평등'이라 하셨다.
그 길을 여러 비유를 들어 쉽게 이해하도록 설해 주셨다. 그 法이 2600년 넘게 역대조사와 스님들을 통해 오늘의 우리에게까지 이르고 있으니 어찌 고맙지 아니한가? 덕분에 우리는 부자가 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고 근심, 걱정, 온갖 감정들을 일으키고 살면서도 행복할 수 있게 된 것이니 이렇게 고마울데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런 佛法과 인연이 된 우리 불자들의 큰 행운이라 할 것이다.
사는 동안에 지금 그대로의 여건을 바꾸지 않고도 내 안목 하나 바꾸는 것으로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언제나 모자람이 없는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고
生死가 따로 없는 도리를 터득함으로써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老病死에 관해서도 자연스럽게 집착하지 않게 되어 삶이 훨씬 자유로워지게 되며 설사 육신이 죽는다 하더라도 그 가는 길을 알게 되니 불안할 일도 없어지게 되니 말이다.
매주 일요법회에서 법사님들이 등불을 들고 그 길을 쉽게 인도하고 계신다. 좋은 선지식 만나는게 인생성공을 좌우한다 했는데 국방부원광사 신도들은 매주 그런 인연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그 또한 행운이라 할 것이다. 다만 물가로 소를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는 건 각자의 몫이라 하겠다.
<지효 손영주법사 법문요지>
대품반야경 봉독 후 해설/법문
선지식
완전한 깨달음의 밝은 지혜로 나아가게 하는 이가 '선지식'이다.
*좋은 스승, '선지식' 만나는게 인생의 90%는 성공이라 할 것이다. 국방부원광사 법회에 참여하는 불자들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여건하에서 신행활동을 한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이다.
극단에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어떤 물질이나 현상도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을 뿐인데 이름을 붙이고 자기의 관점에 따라 好,不好로 나눠지고 善과 惡의 二分法으로 나눠진다.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아야 그 본래의 본질을 바로 볼 수가 있다.
아무리 좋은 것도 극단에 치우치면 좋은게 아니다.
음식의 경우, 꿀이 달고 좋다고 하여 계속 먹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혈당이 높아지거나 당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이나 다 너무 치우치면 반드시 부작용이 일어난다.
공(空), 다만 名과 相으로 가설
우리 눈앞에 세상이 뚜렷이 펼쳐져 있고 너와 나도 분명히 있는데 불교에서는 진리로 空을 이야기 한다. 텅비어 있다고 말한다. 왜 그런가?
마치 지효법사라 이름이 붙혀져 있지만 '지효'란 이름에 불과한 것과 같다 할 것이다. 이름(名)과 형상(相)은 다 실체라고 할 것이 없고 어느 기간 동안 임시로 구성되어 있다가 언젠가는 사라질 것들이다. 눈앞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기 때문에 실체인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결국에는 변하고 사라지고 만다. 너와 나도 다 마찬가지이다. 다만 이름과 형상으로 우리 눈앞에 보이는 현상이 되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다(다만 시설할 수 있다.)
실체가 텅 비어 空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포용한다. 텅 비어 있지만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이 다 나온다.(眞空妙有)
노인네들은 변화에 적응이 늦다
어린이들은 잘 놀고 한때는 엄마말도 잘 안듣는다.
젊은이들은 변화에 잘 적응하고 유행에 민감하다. 그런데 어른들의 특징은 잘 변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다. 여러 좋은 의견이나 관점들을 들으면서도 내심으로는 자기가 경험하고 살아온 것이 기준이 된다. 다 내려놓고 산다고 말로는 하면서도 그 사는 모습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경향이다.
앞에서 나에게 깨달음을 주는 이가 '선지식'이라고 했는데 잘 살펴보면 나에게 깨달음을 주는 것들이 수도없이 많다. 자연이 계절따라 변화해가는 과정이나 내 몸이 변해가는 것으로 부터 어느 것도 고정된 것이 없이 다 변해간다는 '제행무상'의 깨달음을 얻게 되니 이를 일깨워 주어 선지식이요,
또 나의 내면에 덥고 추운줄 알고 걱정, 화를 일으키기도 하는 변하지 않는 주인공, 본성의 마음바탕이 있음을 알게 해주는 선지식도 있으니 이 또한 고마운 일이 아닌가? 그래서 옛 선사들이 산천초목이 모두 '무정설법'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부모님이 살아가는 동안에, 또 별세하실 때 우리에게 일깨워 준 것은 모든 것은 변하여 늙고 죽는다는 사실이다.
장례식장에 영가 극락왕생 발원 기도가 끝난 후에 유가족에게 꼭 이 말씀을 드린다.
''부모님께서 유족들에게 제행무상의 큰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보시, 무주상보시
중생들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좋은 일 하고 나서 자랑하거나 칭찬받거나 뿌듯한 마음이 일어나거나 하는 것들이 모두 중생심이다. 뭘 했다 하는 마음까지도 없이 행할때 진정한 보살행이라 할 것이다.
대인관계에서 말로 표현하기보다 비언어적 멧세지가 97%정도 된다고 한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상대방이 이미 다 안다는 것이다. 젊은 남녀 미팅시에 여친의 제스처로 관심여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남친의 말에 의지뒤로 기대어 있으면 관심이 없다는 표시이고 앞쪽으로 몸을 기울이면 관심이 있다는 것이라 한다.
상대가 필요로 하는 보시
보시도 나의 입장이 아닌 상대방 입장에서 해야 한다. 상대방이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것을 보시하는게 가장 효과적이다.
-베푸는 사람
-받는 사람
-보시하는 물건
위 3가지가 아무 조건없이 청정해야(三淸淨) 진정한 보시인 무주상보시라 할 것이다.
*칭찬하고 박수치고 하는 것이 보시공덕을 까먹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베푸는 연습으로 '我相' 벗어나기
조건없이, 이해관계 없이, 거래가 아닌 보시를 하는게 진정한 보시이다.
왜 보시해야 할까?
'나'라는 생각, 집착, '아상'을 벗어나는 빠른 길이 된다. 사람들은 '나'라는 집착이 있어 '내것'이라는 소유에 대한 집착이 매우 크다. 내것과 내것 아닌 것으로 나눠지면서 하나라도 더 내것으로 만들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잠시 내가 관리하고 있을 것들이고 죽을때 다 두고 간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으면서도 재물에 집착한다. 베푸는 훈련을 하면 내것이라는 집착, 나아가 '나'라는 집착에서 벗어나는 좋은 길이 된다. 복덕이나 공덕은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것이라 할 것이다.
매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것
매일 쓰는 것에 어떤 것이 있을까?
안경, 벼개, 이부자리, 신발 등등
이러한 매일 사용하는 것은 제일 좋은 것으로 사는게 삶에 불편함이 덜하다고 한다.
내 몸과 마음
내 몸과 마음도 매일 매순간 쓰고 있다. 몸에 대해서는 온갖 꽃단장을 한다. 건강에 좋은 식품, 맛있는 음식 먹으며 정성을 기울인다. 그런데 마음을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고 있다.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않았고 배운 적도 없다.
마음이 괴로울때, 슬플때, 화날때, 우울할때, 섭섭할때 등등 수많은 감정상태가 요동치고 할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워본 적이 있는가? 가장 중요한 일인데 제대로 관리하는 법을 모르고 마음 일어나는 대로 이끌려 살아오지 않았나? 그렇게 습관화 되다보니 나중에는 그것이 잘못된 줄도 모르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살게 된다.
자기 마음이 존경할만하고 훌륭하다고 보는가?
아직도 완전하지 못한 자기 마음에 대한 부끄러운 마음이 있지 아니한가? 남은 몰라도 자기 스스로는 안다. 정직해야 한다.
겉마음에서가 아닌 속마음에서까지 부처님법과 일치하는가 성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前五識의 아래에 6, 7識, 무의식 등 빙산의 수면 아랫부분이 대부분인 것과 유사하다.
최근에 어느 스님의 책,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를 인상깊게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말과 생각은 그리 일치하지 않는게 현실이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말로는 할 수 있지만 실제 인정이 잘 안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남을 돕는다거나 사랑하는 등의 좋은 일을 하기는 힘들지 않고 편안하다. 쉽게 산다. 그런데 악한 일, 남을 괴롭히는 일을 하는 이는 늘 고민하고 삶이 고달픈 것을 본다. 계속 머리를 써야 하고 이리저리 도피하면서 어렵게 산다.
우리는 모두가 자기의 삶을 멋지게 잘 살려고 하지 않는가? 이를 위해 수행도 하는 것 아닌가?
아는 것과 되는 것은 다르다.
알기는 하지만 '나'라고 하는 마음이 있으면(我相) 전체로부터 내가 분리되고 만다.
*울타리가 없으면 '전체가 나'이고 내것인데 '나'라고 하는 울타리를 만들면 그 바깥이 내것이 아니게 되니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추구하게 되어 고통이 일어난다.
MZ세대의 성공사례를 들어보면 놀랍게도 '나'라는 집착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30대의 어느 남녀 연애 재결합 상담컨설팅 사례를 보면:
대다수 여성들의 생각이
''나는 잘하고 있는데 너가 잘못하고 있는게 문제야''라는 인식이다. 그래서 자기보다 좋은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내가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해야 상대방 입장이 이해되고 연애가 되는 것이다. 재결합이 된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나 어떤 현상의 극단에 치우치지 말고 '중도실상'의 입장에서 나의 현재 삶을 살아가자.
어느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중이다.'
노력하는 '중이다.'
사람되는 '중이다.'
부처되는 '중이다.'''
부지런히 갈고 닦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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