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1(월) 11시, 6공병여단 본부

1994년말부터 1996년말까지 2년간 지휘관으로 재직했던 6공병여단

1971년에 창설되었던 6공병여단이 국방개혁(군구조개편)의 일환으로 11.30부로 해체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됨에 따라 부대해체 전에 옛 근무자들의 추억의 방문을 받고 있다.

역대 지휘관을 했던 여단장에게 전파하고 공병전우회를 통해 전체 공우회원들에게도 전파되었다.

10.31(월) 아침에 가족과 함께 옛부대 방문길에 나섰다. 간부들이 거의 전출가고 소수인원만 있다 하여 격려품도 빵, 과일 등으로 조금만 챙겼다. 25년여 세월이 지나는 사이에 수도권 도로망이 대폭 개선되어 고속도로로 계속 이어져 가다가 부대 가까이의 톨게이트를 나가니 곧바로 부대 앞이다.

2003년 1월27일, 36년 군생활을 마감하고 전역식을 했던 부대이다. 눈이 펄펄 내리는 날 연병장에서 전역식을 하기 위해 군생활이 처음 시작된 태릉 육사를 출발하여 36년의 군생활을 회고하며 36km 눈길을 달리는 마라톤전역식을 했던 곳이다. 당시에 5개 TV방송에서 7시간동안 동행취재하여 뉴스로 보도했고 전국 10대 일간지에서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덕분에 일약 '마라톤장군'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그런 인연이 이어져 그해 3월말부터 7월까지 100일동안 대한적십자사 주관, 전국 해안선일주 '한민족도보행진단' 단장으로 3,000km를 매일 30km씩 걸으면서 북한 어린이돕기 모금활동으로 적십자사를 통해 옷가지, 학용품, 의약품을 전달하는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세상에 고정된 것은 어떤 것도 없이 다 변해가는 것이 진리이기는 하지만 나의 추억과 관련된 것들은 조금 더 오래 존속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데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시간이, 세월이 모든 것을 다 변화시킨다. 그러니 미련이나 집착으로 부터도 벗어나야 한다. 그 길이 삶의 무게를 홀가분하게 하는 일이 된다. 다만 국가안보와 군의 전투력 유지에 문제가 없겠는가 하는 문제는 예비역의 입장에서 언제나 걱정스러운 일이기는 하다. 왜냐하면 북한은 이제까지 조금도 군사력을 감축함이 없이 계속 질적으로, 양적으로 증강시켜 오고 있는데 우리는 무기체계 향상으로 병력감축을 대채하고 있는데다가 북한핵에 대해서는 거의 대비책이 없는 상태나 마찬가지이니 어찌 걱정스럽지 않겠는가? 게다가 자유민주 수호의지나 대공 정신전력까지 약화된다면 더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파괴가 건설을 이루는 과정이니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방문일자에 마침 정주교공우회장과 이인희사무총장도 예전에 근무인연이 있어 함께 방문했다. 정주교회장은 40년전 초임지로 예하126대대 1중대 소대장과 대대 공사장교직을 수행했던 추억이 깃든 부대라 한다. 또 이인희 공우회 사무총장은 여단장 전속부관직을 수행했기에 남다른 감회를 느낀 시간이라 생각된다.

이 주둔지에는 다행히도 다른 부대가 들어온다. 보병6사단인가의 예하 1개 여단본부가 주둔한다고 하니 영내의 아름드리 소나무 등 멋진 경관을 비롯하여 외형이 존속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부대소개와 환담 등에 시간을 내준 여단장과 참모들의 건승을 기원하며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새로운 임지에서 공병과 국가안보에 계속적인 큰 역할을 기대하는 바이다.

정문입구 삼거리에 공병모토 탑
'創造 開拓 建設'
-creating
-pioneering
-building

본청입구에서

우아한 소나무숲 진입도로

올해와 앞으로의 건승을 축원

공병기념탑 공원

옛 9사단 대대장 재직시에 서울대 조소과출신 병사가 조각한 지휘봉걸이가 여기까지 와 있네.

여단장 재직시인 1995년에 세운 자연석 공병모토 탑

단풍이 고운 관사지역도 돌아보고

기념타올

2003년 1월27일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날
육사에서 출발하여 36km 마라톤으로 달려와서 하얀 연병장에서 전역식을 했다.

TV뉴스 보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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