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26(월) 11시, 9호선 봉은사역 1출구에서 고교 친구와 가족들 12명이 만나 봉은사일주문에서 해설사 설명 안내에 따라 경내설명 후 울타리 안쪽 오솔길을 산책하고 인근 맛집에서 점심식사
절기로 입춘, 우수가 지나 봄이 멀지 않은가 싶은데 이번 겨울에는 유난히 늦게까지 눈이 많이 내리고 있다. 가을은 쉽게 가고 봄은 더디게 오나보다.
고교친구와 가족들이 함께하는 역사문화답사 월례회 모임이다. 강남지역의 색다른 코스를 잡았다. 지금은 강남의 중심지이지만 예전 우리가 고등학교 다니던 60년대 중반 여름에 신당동에서 동대문가서 전동차타고 뚝섬으로 수영하러 갔단 그때는 강건너 산골에 절이 있다는 말을 들었고, 어느 친구는 엄마따라 배타고 강건너 산길을 걸어 절에 다녔다고 하는 그 절이 지금의 강남 한복판이 된 신라 고찰 봉은사이다.
시가지에서 보기에는 사찰 건물만 보이지만 뒤쪽 동산에 오솔길과 전망대, 쉼터가 있어 도심속에서 산속에 온듯한 특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봉은사에서 포교사가 특별설명도 해준다.
강남 봉은사는 794년,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 창건 당시에는 '봉은사'가 아닌 '성자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후 여러 차례의 화재와 재건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국교였고 왕실을 비롯한 일반인들의 생활방식 자체였으나 조선이 건국되면서 성리학을 근간으로 한 유교가 중심사상이 되고 '抑佛崇儒'정책이 시행되었다. 사대문 안으로 스님들출입이 제한되고 지금의 탑골공원에 있었던 원각사를 국악원으로 바꾸기도 한 정도였다.
불교가 억제되었던 조선시대에도 왕실에서는 비밀리에 불교를 신봉한 것으로 보인다. 봉은사와 연계된 보우대사와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에 관한 역사가 전해져 온다. 봉은사 일주문을 들어서서 사천왕문을 지나면 오른쪽 언덕위에 여러 부도탑이 서있다. 그 한가운데 허응당 보우대사의 부도탑이 있어 해설사가 한참 설명을 해준다.
문정왕후는 당의 측천무후, 청의 서태후와 비교될 정도로 억척같은 집념으로 아들을 왕(명종)으로 만든 여인으로 조선시대의 왕비로서는 최고의 권력을 행사했다.
문정왕후(文定王后1501-65)는 독실한 불교 신자로 억불숭유정책을 시행하던 조선에서 불교중흥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많은 비난을 받았다. 과거제에 승과(僧科)를 신설하여 승려를 양성하고 1551년 봉은사를 선종(禪宗)의 본사로 해 보우(普愚1509-65)를 주지로 삼았다. 지금의 COEX빌딩 앞에 당시의 승과를 시행했던 장소의 표지석이 있고 승과 1기에서 장원을 하신 분이 서산대사이고 2기의 장원이 사명대사였다고 하여 임진왜란시 의승장으로도 역할을 하신 큰스님들을 많이 배출했다. 또한 지금 강남의 선정릉으로 남편 중종(中宗)의 능을 옮기는 등 유교(儒敎)국가 조선을 불교(佛敎)국가로 바꾸는데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1565년에 죽음을 맞이하면서 아들 명종은 바로 선종을 폐지했다. 든든한 배경을 잃은 보우대사는 제주도로 유배를 갔고 4개월 후에 입적했다.
봉은사에는 많은 중요한 문화유산이 있다. 특히, 국보 제29호인 '봉은사 동종'과 보물 제170호인 '봉은사 금동관세음보살좌상' 등 다양한 문화재들이 보관되어 있다. 추사 김정희선생이 제주 유배에서 풀려나 과천에 돌아와 살면서 病中에 썼다는 '板殿' 현판이 유명하고 봄에 먼저 피는 影閣 옆의 홍매화가 일품이다.
예전에는 봉은사가 위치한 산 거의 전체가 봉은사땅으로 수십만평의 넓은 지역이었으나 강남지역이 개발되고 코엑스, 한전 등이 들어오면서 지금의 도심으로 변화되었다. 한전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해감에 따라 당시 수용되었던 원소유주에게 환매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법적 절차도 일부 진행되고 있는 것같다.
서울 강남의 도심에서 곧바로 접근하기 편리한 곳에 보석같은 옛 보물이 보존되어 있는 것이 현대화된 도심과 외형적으로 조화로운 모습이기도 하다.
또한 상대세계와 절대세계를 체험하게 하는 기회를 주는 여건이 되기도 한다. 누구나 외부세계를 눈귀코입몸 등 5개의 감각기관을 통해 인지하여 그 위주로 지금 일어나는 일에 매달려 허둥지둥 바삐 살아가는게 현대인들의 삶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변함없는 자기의 본성을 고요히 되돌아보게 하는 기회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대세계를 벗어나 잠시라도 절대세계를 느끼고 체험하는 기회가 된다면 삶이 훨씬 안정적이지 않겠는가? 시간과 공간의 이동이 이를 가능하게 하는데 효과적이다. 바깥세상에서 일단 안쪽 세상으로 진입하여 자기자신 내면의 삶을 살피는 것이다.
봉은사는 조선시대 禪宗사찰로 僧科를 통해 서산, 사명대사를 배출한 전통이 있다. 나와 나 아닌 것으로 구분하여 이분법적으로 인식하는 상대세계의 안목으로는 삶이 거추장스럽고 복잡하다. 모든 것은 상호 의존 상관관계 속에서 상부상조하며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세상 만물이 오케스트라처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내가 생존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새봄맞이 강남 봉은사 경내답사를 하면서 큰 깨달음을 주는 기회가 되고 있다. 친구와 가족들이 함께하는 여기가 바로 아름다운 야생화들판이고 멀리서 천국을 찾을 일도 없어 보인다.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지난다.
외부의 잡귀가 진리의 공간으로 들어오지 않게 동서남북을 지키는 신장이다.
허응당 보우대사 부도탑
선종사찰이었던 봉은사의 주역으로 큰 역할을 하신 스님이다.
대웅전앞의 연등
대웅전과 지장전을 지나 계단길 위로
대웅전 옆의 지장전은 보수공사 중이다. 지장전은 지장보살이 주불로 모셔져 있는데 지장보살은 지옥중생이 다 구제될 때까지 천상으로 가지 않겠다는 큰 願을 세우고 몸소 실천하고 계신 분이다.
지장보전(地藏寶殿)이라고도 불린다. 지장보살이 지옥(명부)의 중생들을 구제하고 있다 하여 명부전(冥府殿)이라고도 하며, 시왕도 이곳에서 함께 모시고 있으므로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으면 49일간 심판을 받아 어디로 갈 것인가 결정된다고 했다. 10왕(판관)을 거치게 되는데 그중 5번째가 염라대왕이라고 했다. 생전에 했던 생각과 말과 행동에 대한 기록을 심판받는다. 어디에 기록되어 있을까? 자기 마음에 다 기록되어 있어 業鏡臺에 비춰보면 다 나타난다. 10번의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이라도 구제할 일이 누락되었는지 심사한다. 세상일에서의 재판은 3심의 과정을 거치지만 여기서는 10번의 과정을 거치면서 구제를 위해 애를 쓰고 있다.
현판글씨의 디자인이 특이하다.
影閣 옆의 홍매화가 곧 꽃망울을 터트릴 듯하다.
며칠 후에 갔더니 드디어 피었다.
추사 김정희선생이 노후 병중에 쓴 현판 '板殿'
해설을 마치고 뒷산 오솔길 산책
여유롭게 차담을 나누고
요 아래로 보이는 건물 '북극보전'이 영험있는 기도터로 소문이 나있어 입시철, 고시철, 진급철에는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어떤 분은 나무의 기운을 받고 있다.
돌탑과 오죽 숲을 지나고
건너다 보이는 풍경이 평화롭다.
옛부터 우리 선조들은 자연돌의 모양을 그대로 맞춰 석축을 쌓았다. 그랭이공법이라 한다. 경주 불국사의 석축이 이런 모양이다.
점심식사는 수궁 맛집에서
부근 찻집에서 차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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