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4.15(화) 08:30, 사당역 공영주차장에서 전씨중앙종친회 23명이 만나 세종시 아침뜰근린공원에서 개최된 백제대제에 참가하고 점심식사 후 백제 부흥운동의 본거지였던 비암사를 참배 후 귀경
백제의 시조 온조왕으로부터 마지막 31대 의자왕까지의 국왕 대신과, 칠세부모, 유민 등을 위한 제례행사인 제43회 백제대제가 4월 15일(화) 오전 11시 백제고분군이 발견된 한솔동 아침뜰근린공원에서 세종문화원 주관으로 열렸고 서울 전씨중앙종친회와 지역종친회에서 많은 종인들이 참석혔다.
제43회 백제대제는 백제의 국왕ㆍ대신, 칠세부모를 위로하기 위한 제례행사로, 1960년대 비암사에서 발견된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국보 106호)에 백제가 멸망한 직후 673년 全氏 등이 불상을 만들고 제를 지냈다는 기록에 근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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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앞뜰근린공원에 마련된 행사장에 백제시조 온조왕부터 마지막 31대 의자왕까지 역대왕의 旗가 세워져 있다.

제단에는 위패가 올라가 있다.


헌관
초헌관 - 김하균 세종시 행정부시장
아헌관 - 김효숙 시의회 부의장
종헌관 - 최교진 교육감

전씨중앙종친회에서 종친회장과 종인들이 버스로 동참.
종친회이사인 동생이 집사를 맡았다.

제단에 올릴 백제왕 7대선조 위패와 비암사에서 출토된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백제대제의 기원:


집례의 진행으로 행사시작하여
임창철 세종문화원장이 유래봉독

제집사 국궁재배


초헌관이 진설을 점시

계유명석불비상을 제단에 시납, 봉안

백제국왕대신 칠세부모 신위를 봉안



초헌관의 강신례 참신례


초헌례 - 관수세수

축문봉독 - 세종향토사소장


아헌례 - 알자가 아헌관을 안내




종헌례

중앙종친회장 정선 천안 종친회장의 분향






추도사 봉독 -
세종시 김하균행정부시장

전씨중앙종친회 분향


각급기관단체장 분향


참례자 재배

음복례 후 문화공연으로 전통타악그룹 굿팀의 '살풀이'




동영상
헌관 제집사

헌관과 참례자 종친

아침뜰근린공원 정자에서

점심식사 식당에서 전종득 중앙종친회장 축배




비암사로



비암사 산신각에서 내려다본 전경

비암사 대웅전과 극락보전


귀경버스에서 대전종친회의 환송인사



서울 도착직전에 종득회장 감사인사

<백제대제의 기원>

계유년 673년 4월 15일 백제유민들에 의하여 석불비상 8개를 조성하여 비암사를 짓고 시납하여, 백제 국왕 대신과 칠세부모를 위한 제를 올린데 기원을 하고 있다.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하고, 백제의 유민들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일본에 가 있던 왕자 등을 왕으로 맞이하여 복신, 도침을 중심으로 세종시 일대 산성에서 피에 어린 구국항전을 했지만 3년여 만에 나당연합군(신라 28만, 당나라 40만)에 의하여 부흥운동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나라는 빼앗겼지만 백제의 역대국왕과 충신, 칠세부모를 위하여 673년 전씨를 중심으로 불상을 만들고, 절을 지어 매년 4월 15일(음력)에 제를 지냈다는 기록과 조선 초기 제작된 기와에 '대백제국왕대신'이란 명문으로 보아 조선시대까지 제를 지내온 것으로 추정하나, 그 후에는 제를 지내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전의고적보존회가 향토 개발 사업으로 이를 재현하기 위해 1983년 4월 15일 종파를 초월하여 전 군민의 이름으로 제를 올리기 시작했으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全氏 시조가 한번도에 流入된 사연을 보면 이런 野史가 전해져 온다.
고조선을 이은 북부여국에 해모수왕이 있었고 그의 아들 해부루가 별도로 동부여를 건국한다. 인근 구려국 족장 연타발의 딸 소서노가 해부루의 둘째아들 우태와 혼인하여 비류, 온조 두 아들을 두었는데 우태가 일찍이 사망함에 따라 소서노는 두 아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온다.
당시 친정 구려국에는 북부여로부터 탈출해온 젊은 장수 고주몽이 연타발 휘하에 있어 소서노는 29세의 나이에 고주몽과 혼인을 한다.
장인어른이 된 연타발로부터 나라를 이어받아 고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다.
고주몽이 북부여에 있을때 혼인한 본부인이 유복자 아들 유리를 데리고 나타나니 주몽이 진위를 확인 후 크게 기뻐하며 유리를 후계자로 삼는다.
남편을 고구려 왕이 되게한 소서노는 후계자가 유리로 정해짐에 따라 이에 실망하여 두 아들과 신하를 거느리고 산동반도를 건너 미추홀(인천)에 이른다. 거기서 비류를 왕으로 백제국을 건설했는데 둘째아들인 온조는 좀더 내륙으로 이동하여 하남에 이르러 십제국을 건설한다.
이후에 백제국의 비류가 동생에 합류함에 따라 두 나라를 합하여 백제국이 되고 온조가 왕이 된다. 온조의 십제국 제후 중의 한분이 '전섭'으로 全氏의 시조가 된다.
이후 신라 고려시대를 겪으면서 全氏는 18개派로 분파되어 50여만의 宗人으로 확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문동 경희대학교 뒤편 천장산자락 경희고등학교 정문 옆에 시조단소와 재실이 있다. 서울시내에서 祭를 올리는 문중이 왕족 말고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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