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회 역사문화 답사의 겨울철 코스로는 한양도성 성곽길의 경사도가 심하지 않은 남산, 낙산 정도가 적절하고 고궁이나 북촌, 서촌, 정동일대가 편안하면서도 역사공부까지 겸할 수 있어 좋다.

2월 답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4월9일까지 기획전시 중인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박물관 소장 '이집트 보물전'을 관람했다. 입장료가 13,000원인데 경노할인으로 6,000원이고 국가유공자는 무료입장이다.

주말에는 한두시간 기다려야 매표가 가능할 정도로 복잡한데 평일 시간을 이용하는게 좋고 수요일 문화의날에는 저녁 9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 관람시간
- 월 /화 /목 /금 : 오전 9:00 ~ 오후 6:00 (입장 마감 5시 30분)
- 수 /토 : 오전 9:00 ~ 오후 9:00 (입장 마감 8시 30분)
- 일 /공휴일 : 오전 9:00 ~ 오후 7:00 (입장 마감 6시 30분)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1시간정도 관람하면 이해가 훨씬 수월한데 인원이 많아 잘 들리지 않는다. '오디오가이드'를 3,000원에 대여받아 관람하는 편이 낫다.

'이집트'하면 떠오르는게 피라미드나 스핑크스, 그리고 그 내부의 특이한 벽화나 소장품들 모습이 연상된다. 멀리 이집트까지 가지 않고서도 5,000년 전의 고대문화를 눈으로 직접 보면서 느낄 수 있는 기회이다.

5,000년 이전시대의 화려하고 정교한 유물들이 생생하게 보존되어 우리 눈앞에 보여지고 있는 것은 꿈같은 일이 아닐까 싶다. 신화가 아니고 전설도 아닌 바로 어제의 일처럼, 아니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살아 숨쉬고 있는 문화의 모습이 긴 세월을 넘어 내앞에 와있으니 말이다. 사는 동안에 행복하게 지내고 죽음에 임해서는 영생을 꿈꾸면서 사후의 세계에 대한 기대는 지금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런 문화가 여러 유물로 남아 전해져 온다.

그 시대 사람들은 지금 사람들보다 '미개인'이었을까? 지혜롭지 못했을까? 글과 그림과 조각들을 보면 지금보다 그리 뒤떨어져 보이지 않는다. 의사전달이 되는 언어가 있었고 스토리를 표시하는 글이 여러 형상으로 새겨져 있다. 지금 사람이 이해못하거나 풀지 못할 뿐이다. 수천년간 보존되어 온 재료나 색채, 정교한 조각들, 처리기술들이 지금시대보다 더 발달되었던 것같기도 하다. 또 그림이나 글속에 우리가 모르는 어떤 지혜의 수수께끼들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계 4대문명 발상지의 하나라고 일컫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한 이집트문명의 존재를 보여주고 있는 이 유물들을 우리 역사의 연대와 비교해 보면 고조선시대 초기 전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강단 역사학계에서는 일본 식민사학을 이어받아 고조선의 건국을 신화로 취급해 왔다. 근세 십여년 전에야 재야사학계의 끈질긴 노력으로 글자 3字를 바꾸어 역사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일찌기 환국이 있었다고 한다"에서 "고 한다"를 빼고
"일찌기 환국이 있었다"로 3字 고치는데 60여년 세월이 걸린 것이다.

그런데 나일강 유역에서 이집트문명이 존재했던 시기에 어찌 동북아지역에는 어떤 문명이 없었겠는가? 4대문명의 하나인 황하문명보다 1,000년 이상이나 앞선 '홍산문명'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유적발굴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환국, 신시배달국, 고조선으로 이어진 이 동이족의 역사를 중국은 자기네 역사로 편입시켜 역사연대를 이전보다 1,000년 이상 끌어 올리려 하고 있다.

예전에 우리가 고대사의 흐름으로 배웠던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같은 유물사관적 구분으로는 발굴되는 고대사의 유물들에 대한 설명이 잘 안된다. 구석기, 신석기시대 조상들은 무척 미개인이었을 것이라는 인식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5천년 전, 1만년, 2만년 전에도 발전된 문명국가가 존재하고 있었고 오히려 지금 사람들보다 정신적 깨달음이 더 컸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집트인들의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과 영원한 삶을 위하여"

누구나 죽음을 피하지는 못하지만 사후에라도 영원으로 이어지고자 했던 염원이 여러 방식으로 문화에 나타나고 있다. 사후세계를 위한 여러 껴묻거리 등에 대한 준비가 많았고 그 방법으로 몸을 떠난 영혼이 돌아올 미이라를 만들어 관에 봉안하는 것이 유행이었나 보다. 인간 미이라를 비롯하여 여러 동물 미이라까지 다양하다. 동양과는 다른 그런 문화가 있었던가 싶다.

동양에서는 달랐다. 사후에 영혼은 하늘로 가고 혼백은 땅으로 가는데 제사를 모실때 강신례, 참신례를 통해 영혼과 혼백을 불러 그 들어가는 몸을 단단한 밤나무로 신주를 만들어 보존했다. 이집트에서 만든 미이라 대신 자연의 밤나무로 몸을 상징했던 것 같다. 육신으로 사는 한 인생의 길지 않은 삶에 대한 아쉬움과 집착이 예나 지금이나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영원을 살고자 온갖 노력을 해보지만 다 허망한 일이다. 그래도 그런 노력 덕분에 후손들이 그 오랜 선조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유물들로 전해져 오니 어쩌면 그분들의 노력이 이루어졌다고도 볼 것이다. 지금 우리 눈앞에 살아서 펼쳐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리 이어져 가게 될 것이니 당시 그분들이 기대했던 영원한 삶이 지금 계속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같은 시대의 우리 조상들은 이집트에서와 같은 외형적 문화가 아닌 정신문화적이지 않았나 싶다. 백성들을 동원하여 웅장하게 피라밋을 만들고 미이라를 만든 물질적 요소들보다 정신적 요소를 중시하여 天地人사상, 즉 하늘과 땅과 사람이 따로따로가 아닌 것으로 보고 인간뿐만 아니라 만물은 한몸이며 존중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모든 사람들이 다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며 육신의 몸을 버리고 정신으로 부활하여 인류 모두가 함께 다 어울려 잘 살아가자는 '홍익인간' 사상을 나라의 개국이념으로 했고 삶의 철학으로 삼았던 높은 문명국이 바로 우리 조상이었다는 것이다. 고조선과 그 이전의 신시배달국, 또 그 이전의 桓國 등이 다 전설이 아니라 고도의 정신적 문명국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할 것이다. 세계4대문명 발상지라고 하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허 외에 추가적으로 그보다 1,000년 이상 앞선 '홍산문명' 유물과 유적들이 발굴되어 기존의 학설들이 뒤집어지고 그 홍산문명이 동이족의 선조들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으며 그 정통성을 이어받은 민족이 바로 우리 한민족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5,000여년 이전 이집트 보물전의 실제 모습들을 관람하면서 우리 선조들의 실존과 그 전통이 이어진 오늘의 우리를 조망해 보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

남산 서울타워를 배경으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