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도 비난도 이에 휘둘리지 말라.

칭찬에 들뜨거나 비난에 괴로워하거나 할 필요가 없다

말은 소리의 파동일 뿐 그 말에 따라가지 말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나 일어난 어떤 일도 그 자체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인데 사람들이 이건 이것이고 저건 저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해 놓았다. 거기에 걸림이 생겨 내 스스로 걱정하고 괴로워하고 있다. 현상 그 자체에는 善도 惡도 없으며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相'에 불과한데 그게 맞다고 내가 믿어버리는데서 문제가 생긴다.

부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무엇을 해도 비난을 피할 수는 없다. 잘하면 잘한다고 비난하고 잘못하면 잘못한다고 비난한다...''
휘둘리는 여부는 나의 선택에 달렸다
시험에 합격하거나 진급에 선발되거나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결과를 내 방식대로 해석함으로써 스스로 괴로워한다.

집착하면 의식이 닫힌다.

무한하게 열릴 수 있는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결과가 된다.

헤어날 길이 없을 것같은 절망적 상황에 이른 경우에 오히려 의식이 열리고 새로운 안목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시업을 하는 경우에도 이 사업이 안되면 어떡하나 걱정하고 있다가 사업이 폭삭 망하고 나서 집착하지 않게 되니 오히려 새로운 길이 열리고 이후에는 집착하지 않고 사업을 하는 지혜가 생기더라는 사례도 있다.

휴거,
후천개벽,
미륵부처님 등장 등

종교에 이런 분위기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기존의 시대로부터 시대적 변환기가 도래한다는 의미로 보인다.

지금까지 인류가 가졌던 기존의 '지식의 시대, 분별망상의 시대'로부터 새로운 시대로의 변환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즉, '분별지'가 아닌 '무분별지' 시대로 바뀌고 있음을 말해준다.
서양에서도 기존의 의식이 많이 바뀌고 있다. 이것저것 따로 분리하는 사고로부터 '융합적, 통섭적'으로 모든 것이 상호 연계되어 있음을 아는 시대가 되고 있다. 과학과 인문학이, 서양의학과 동양의학, 군사학과 경제학 등등 상호 영역을 넘나드는 융합적 안목이 확산, 보편화되고 있다.

다시말해서 연기법적인 시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내편 네편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분별하지 않음으로써 더 높은 지혜와 창의력이 생기는 것이다. '연기법적' 안목에서 보면 세상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있다고 보이기 때문에 너와 나가 따로따로가 아니게 되어 자비심이 저절로 일어난다.

옳다, 그르다라는 사로잡힌 의식으로는 지혜가 막히게 된다.

어려운 지경에 처한 막힌 상황이 곧 새로운 전환의 기회가 된다. 어느 군간부가 진급 낙방 후 처음에는 어쩔줄 몰라했는데 한두달 지나 마음이 정리되고 진급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보니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새로운 희망이 생기더라는 경우를 보았다.

'깨달음'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아상이나 개체적 자아에 구속된 의식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집착을 내려놓으면 오히려 일이 잘되고 하는 일이 힘들지도 않게 된다. 그렇게 할때 그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어느 군법사가 이런 생각으로 근무했다고 한다. 언제든 군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고 업무를 하니까 어떤 말도 눈치보지 않고 할 수 있고 자신감과 여유가 생기더라고 했다.

세상은 털끝만큼도 나를 휘두를 수 없다. 내가 참 자아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다. 이렇게 살면 삶이 질적으로 향상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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