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일) 10:30 충정사 예불연법회에서 주지 명원스님 법문

隨處作主 立處皆眞 -임재스님-
ㅡ>주인공/참나를 드러내라
ㅡ> = 가짜(탐진치)를 들어내라
ㅡ>바보처럼 살아라

보편적으로 많이 언급되고 있는 '수처작주 입처개진'의 의미가 여러가지로 해석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어느 자리에 있거나 주인공이 되어라''라고 말하고 이해하는데 그 말이 틀린말은 아니지만 꼭 그런 의미만은 아니다.

먼저 '立處皆眞'은 어디에 있거나 자신이 있는 그 자리가 곧 '극락'이다라는 의미이다.

어떻게 해야 그 자리가 극락이 되겠나? 주인공, 불성, 참나, 부처 등의 본성을 드러내면 그곳이 어디든 극락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인간관계나 처세술로서 '수처작주 입처개진'을 해석할 일이 아니다.
나의 행복과 자유를 방해하는 요소인 '탐진치'로 분별하는 마음을 들어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 자리가 바로 극락이 된다.

'隨處'는 내 삶의 터전, 가는 곳곳, 사람을 만나는 그 현장이다.

'수처작주'에 가장 적합한 말을 굳이 찾는다면
''바보처럼 살아라'' 일게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극락은 꿈일 뿐이다.

예전 어느교수가 바보예술 시리즈 작품으로 유명했다. 그림속 인물도 너무 똑똑하지 않은 바보같은 표정이었다.

수년 전 김수환추기경 돌아가신 후였던가 '바보 김수환' 평전 책이 나왔던 적이 있다.
바보같이 살기가 역시 언급되고 있다.

어느 노인이 매일 새벽마다 약수터에 물뜨러 다녔다. 건강관리도 되고 기분도 상쾌하여 그 시간이 무척 행복했다.
어느날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뭔가 좋은일 할게 없을까?''
쓰레기 집개와 봉지를 가져가서 가는 길가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좋은 일까지 하니 기분이 더 좋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계속 쓰레기를 줍다보니 새로운게 보이기 시작했다.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다.
''버리는 놈은 도대체 뭐야?''
그런 생각을 하고 부터는 물뜨러 가는 길이 행복한 길이 아니라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길이 되었다.
결국은 쓰레기줍기가 僞善이었다는 사실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쓰레기를 줍더라도 이런저런 분별심이 없는 상태에서  바보처럼 쓰레기를 줍는다면 곧 수처작주가 될 것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해 한다면 이 역시 어리석은 마음이다.

세상에는 큰 바보들이 있다.

예수그리스도:
'왼쪽뺨을 때리거든 오른쪽 뺨을 내놓아라'
십자가에 못박히면서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으셨다.

붓다:
부와 명예, 세속의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출가했다. 
고행을 했고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후 평생 먼거리를 다니면서 포교.

소크라테스:
잡히면 사형을 받는 줄 알면서도 친구가 도망갈 것을 권유했지만 거절.
독배를 마시는 날
희망에 차서 '이제 곧 신들의 나라로 가게 된다'
세속적 안목으로 보면 모두 바보 아닌가?

노자:
도덕경에 이런 말이 나온다.
''세상사람들은 다 똑똑한데
나는 이리 어둡고 어리석을까?''
학문을 추구하는 자는 하루하루 또 더하는 공부를 하고(益之又益)
道를 추구하는 자는 덜어내는 공부를 한다(損之又損)

'예수천국 불신지옥?'
예수님은 그런 말씀 하신적 없다. 오히려 왼쪽뺨을 내놓을 정도였다

충정사 부임해 온 이래 100여번 이상  법문했는데 누가 기억이나 하겠나?
바보짓 하고 있는게 아닌가?

수처작주는
가는 곳마다 이해득실이나 남의 반응 따지지 말고 '참나'를 드러내면서 바보처럼 살아라는 의미이다.
(약삭빠르게 잔 머리 굴리며 흉내내는 바보 말고)

이게 '불교'다.
가르침으로는 쉬운데
실천은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몸 받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렵다' 했나 보다.
원리로는 쉽게 이해되지만(解悟)
실천하기가 지극히 어려운 것이다.

큰 바보가 되라(泰愚)
소탐대실하는 작은 바보가 아니라 큰 바보가 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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