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27(월) 1030, 충무로역1출 대한극장 앞에서 고교친구와 가족 일육우보회 7명이 만나 버스로 남산정상으로 이동, 한양도성 설명, 서울시내 조망 후 케이블카로 하산하여 충무로역 부근 맛집에서 점심식사
고교 친구와 가족들이 함께하는 역사문화답사 월례회 모임이다. 며칠간 아침기온이 영하로 왔다갔다 하면서 초겨울 날씨가 이어지더니 이날은 다행히도 비는 부슬부슬 내리지만 춥지는 않다. 한양도성 전문 해설사에게 설명과 안내를 부탁했다.
70mm 대한극장의 변화
남산 정상으로 가는 버스타기가 장충단공원 정류장에서는 승객이 많아 이전역인 충무로역에서 타기로 하여 대한극장 앞에서 만났다. 70mm 대한극장은 극장의 대명사라 할만큼 명성이 높았던 극장이다. 70mm를 상영할 수 있었고 벤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의 명화가 상영되었다. 오전 관람시 조조관람 할인이 있었다. 단성사, 피카디리 등의 새로운 극장에 밀렸고 지금은 CGV, mega box 등에 밀려 오전상영이 없고 월요일은 휴관이다. 최근에는 주인이 바뀌었다. 어떤 미래 운명이 될지 모르겠다. 시간이 공간을 이렇게 변화시키고 있다. 어느 하나도 고정된 것 없이 다 변해간다.
서울 중구의 가로수는 소나무다
을지로의 가로수는 소나무다. 속초에서 옮겨왔다. 중구와 속초시가 자매결연을 맺고 교류하면서 속초지역 도로개설시 이설되는 소나무를 중구지역 가로수로 2천여그루 옮겨왔는데 거의가 다 살아 있다. 을지로의 거리를 '속초의거리'라고 명명해 주었다. 소나무 가로수 이후 주민들이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가로수가 간판을 가리지 않아 불편이 없고 활엽수 낙엽이나 은행나무 열매 치우느라 불편함도 줄어들었다.
버스로 남산 정상으로 이동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로 262m높이의 남산은 구름속에 올라있다. 정상 N타워는 어슴프레 보이고 시가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1396년에 축조된 한양도성
한양도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조선으로 개국하면서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1394년 한겨울철 농한기에 경복궁을 먼저 짓고 이듬해인 1395년 겨울에 곧바로 한양도성을 축조를 시작했다. 농사철 공한기인 겨울에 1차공사는 음력 1,2월 49일간, 11만 8천 여명이, 2차공사는 음력 8,9월 49일간 7만 9천 4백여명이 동원 되어 처음에는 구간에 따라 토성과 석성을 쌓았다가 이후 세종때에 석성으로 완성되었다. 총 길이 59,500尺(18.6km)를 600尺씩 97구간으로 구분하여 군현별 책임제로 할당했다. 아마 지금의 1개 郡에 100尺(30m)정도씩 책임을 맡았던 것같다. 구간마다 책임지역과 날자를 새긴 刻字城石이 있어 지금으로 보면 실명제로 책임지도록 했다.
북악산을 시작으로 內四山인 북악, 낙산, 목멱, 인왕산을 연결하여 도성을 쌓아 안쪽을 한성부로 했고 바깥 10리까지를 성저십리라 하여 통제권에 두었는데 그 外四山이 북한산 용마산 관악산 덕양산이다.
과거제도로 선발된 최고 엘리뜨 관료로 운영된 현대국가 조선
지금시대의 시각에서 되돌아볼때 조선시대의 여러 부정적인 요소들이 많이 거론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그런데도 500년 왕조가 유지된 것은 세계적으로 드문 현상이다.
1,000여년 이전에는 우리 한민족이 동북아의 강국이었고 중심이었던 시대였는데 고려, 조선시대에 지금의 한반도 이내로 국위가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조선 세종시대의 과학기술 수준은 세계 최고였다고 한다. 한가지 例로 1400년대에 李純之라는 과학자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고 계산해 놓았다. 코페르니쿠스는 그보다 100년 늦은 1543년에 지동설을 주장했지만 물리학적 증명이 없었다. 그만큼 조선의 일부 과학기술 수준은 높았다.
최근에 하바드대 역사학자 슐츠교수가 이런 강의를 했다고 한다.
"일본이 강압적인 군인들에 의해 통치되는 동안 한국은 현대국가와 마찬가지로 교육받은 엘리뜨 관료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
과거제도로 최고의 수재들이 발탁되어 요직에서 활동했다. 그러니 제국주의처럼 독재자가 있을 수 없었고 국왕도 민심을 살피고 백성의 마음을 얻는게 우선이었으니 국가가 부담스럽거나 백성의 생업에 지장을 주는 정책이나 사업은 당연히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할 대규모 건축물이 없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만약 그런 무리한 결심을 하려하면 신하들이 곧바로 "전하, 아니되옵니다. 통촉하시옵소서!' 했을 것이고 그래도 안되면 성균관 유생들이 떼로 몰려와 무릎을 꿇고 농성까지 했을 것이다. 왕의 말한마디, 행동 하나까지 기록하는 사관이 항시 따라 다녔고 그 기록을 왕이 절대로 볼 수 없게 철저히 관리했다. 조선 개국시에 정도전은 나라의 운영방식을 왕권은 상징적으로 두고 내각책임제로 하는 것으로 구상했으나 태종의 힘에 밀려 성사되지는 못하고 개국공신이면서도 척결되어 조선말 고종때에 가서야 겨우 복권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이나, 아시아 여러 제국의 독재자같은 지도자가 나올 수 없는 분위기가 아니었던가 싶다.
태종은 생전에 왕위를 22세 세종에게 물려주고 상왕이 되었다. 골치아픈 인사권과 군령권은 이양하지 않고 세종이 내치에 전념할 수 있게 했다. 한양도성을 쌓는 부역도 상왕의 이름으로 榜을 냈다. 욕먹을 일은 상왕이 하고 실적은 세종때에 한 것으로 남게 했다. 세종은 한글창제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을 만든게 아니라 그들은 반대만 일삼았다. 세종이 거의 비밀리에 작업을 하여 완성했다고 한다.
숙종때에 한양도성의 대규모 보수공사가 이루어졌다. 인조의 삼전도 항복조항에 성곽을 쌓거나 보수하지 않기로 한다고 되어 있었지만 이후 숙종은 대대적으로 보수공사를 시행한 것이다.
스토리가 있는 유익한 역사문화답사
남산을 수도없이 왕래했어도 별도로 설명이 없으면 경관만 보고 지나게 되고 스토리가 없다. 여러 코스로 갈때마다 중구청 한양도성 전문해설사의 도움을 받는다. 훨씬 유익하고 스토리텔링이 있어서 좋다.
정상에서 북쪽과 남쪽 서울시가지를 조망하고 정상에 위치한 서울의 중심점, 그리고 이승만대통령 팔순 축하로 지은 팔각정을 지나 케이블카를 타고 충무로방향으로 하산했다. 그리고 부근 맛집에서 점심식사. 매달마다 만나 호기심으로 새로운 사실들을 살펴보면서 적당히 걷고 무엇보다 활짝 웃는 기회가 되는 이게 바로 최고의 행복이 아닌가 싶다.
충무로역 1출 대한극장앞에서 해설시작
버스로 남산정상 이동
남산위에 오르니 구름속이다.
한양도성 역사 설명
620여년 전에 쌓은 성이다.
城의 안쪽은 중구, 바깥은 용산구
남산 N타워가 겨우 보인다.
N타워는 YTN이 소유하고 있다가 근래에 유진그룹에 3,000여억원에 인수되었다 한다.
한양도성의 97개 구간 중에 57번째 구간이라는 표지석이 있다. 아리비아숫자가 없어 천자문의 글자로 天地玄黃 순으로 1,2,3,4...를 매겨 책임지역 始面을 각자성석에 새겨 실명제로 남겨두었다.
성벽 상단부의 여장과 원총안, 근총안, 옥개석 등 설명
서울의 25개 區 전체의 중심점이 어디일까? 여기가 중심점이다.
팔각정
이승만대통령의 호를 따서 우남정이라고 했는데 4.19학생의거때 학생들이 몰려와 정각을 부쉈다.
이후에 복원
지붕에 어처구니(잡상)가 5개 있다. 통상 홀수. 궁궐에는 7개가 대부분.
봉수대
케이블카 타기 전에 호떡과 커피로 간식
케이블카에서
북측 순환도로에 있는 식당 목멱산방. 그리 비싸지 않다.
충무로역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 옆에는 집집마다 왕돈카스 원조 식당이다.
목멱산방 식당 분점
리라초등학교와 숭의여자대학교
예전의 사찰이 매각되어 교회가 되었다고 한다.
서울예대
드라마센타
필동 문화예술거리
호랑이가 튀어나올 듯하다.
8출구 부근 쌈사랑 맛집에서 점심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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