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17(일) 10:30, 국방부원광사에서

3월 중순인데도 아직 봄이 오는듯 마는듯 하다. 일교차가 15도나 되게 아침에는 춥고 낮에는 조금 푸근한데 봄바람은 분다. 원래 봄날씨는 변덕이 심하다고 했다. 바람에 흔들려야 나무나 풀이 물을 끌어올리는 힘을 얻게 되나 보다. 그래도 시절인연에 봄은 오고야 만다. 너무 노싱초사 하지 아니하면 훨씬 여유가 있을게다.

음력 2월8일은 출가재일이다. 부처님 4대 명절 중 하나이다.

부처님이 탄생하신 4월8일,
출가하신 2월8일,
성도하신 12월8일,
열반하신 2월15일,
그리고 우란분절인 7월15일 백중까지 합해서 5대명절이라고도 한다.

<원경 박종현법사법문 요지>

석가모니부처님은 카필라국 정반왕과 마야부인의 왕자로 태어나
동서남북 사대문을 돌아보며 생노병사의 모습을 보고

어떤 행복도 젊음도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그 길을 찾기 위해 출가를 결심하셨다.

여러 수행을 통해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셨는데 여러 방법으로 그것이 완전한 깨달음인지 스스로 시험하고 증명하셨다. 그리고 그 법을 펴셨다.

윈경법사님의 출가과정, 동기:
스님에게 '묻지마' 3가지가 있다.
왜 출가했는가?
고향은?
나이는?

고교이후 불교만남이 시작되었다.
중학교때까지는 교회에 열심히 다녔다. 초중고 개근을 했고 교회도 개근하듯 열심히 다녔다.
뜀틀운동 중에 발을 다쳐 목발을 짚고 교회로 갔는데 목사님이 무척 칭찬을 해주셨다.
"보라!  저 어린양을!"
그렇게 열심히 다녔다.

어느날 목사님이 정치이야기를 하셨다. 정치인들의 말년이 대체로 좋지 않은 이유가 뭔지 아느냐는 것이다. 하느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섰다.

과학적 사고였던 당시의 관점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랑 맞지 않는구나...'하고 방향이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때마침 부친의 권유로 고등학교 진학은 가까운 동대부고로 배정이되었고 학교에서 불교학생회 활동을 시작했다.

대학생활때는 춤추는 공연활동을 많이 하면서 무척 즐거운 시간을 많이 가졌다. 그러나 공연이 끝난 후의 공허함, 허전함들은 계속 어쩔 수 없었다.

조법사의 주선으로 군법사 시험에 합격했다. 선배법사로부터의 조언은
"하다가 안되면 그만둬"

출가하여 비구계 256계를 받는데도 과연 즐겁게 웃고 다닐 수 있을까?
범어사 행자시절에 업이 바뀌는 과정에서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업장소멸의 고통이 무척 컸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100명이 출가하면 80명 정도가 스님이 된다.

나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없었을까?
단지 만나지 않았을 뿐이지 옛부터 찾아보면 무수히 많을 것이다.
그런데 단체생활을 하게되면 좋거나 싫거나 함께 있을 수밖에 없더라. 단체생활을 통해서 모가 난 부분이 다듬어지고 수양이 되는 기회가 된다.

위기가 수차례 있었지만 그때마다 좋은 스승이 있었다.

어머니가 지금도 물으신다.
"이 길을 가는게 행복하냐?"고...

출가에도 3가지 출가가 있다.
-身출가
-心출가
-心身출가
몸과 마음이 확실하게 출가하여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 출가의 의미를 되새기며 부처님법을 잘 이어가는 제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원경 박종현법사법문

정근 및 축원

공지사항 전달

백상홀에서 점심공양- 국수

봄맞는 산뜻한 원광사

목련이 꽃망울을 터뜨릴 채비를 하고 있다.

하얀 매화는 벌써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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