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19(일) 0930, 4호선 상록수역에서 동기회 자전거동호회 4명이 만나 화성지역 남이장군묘, 남양성모성지, 홍난파생가 동네 고향의봄길 등을 돌아 수원역까지 8시간/ 54km 라이딩

계절의 여왕, 아름다운 달 5월이다.

한달만의 라이딩으로 화성지역의 역사문화답사 코스를 잡아 나섰다. 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배경이 된 4호선 상록수역에 동기회 4명의 전사들이 09시30분에 다 모였다. 문학작품이 전철역 이름으로 지어진 최초의 사례라고 한다.

오늘 라이딩의 포인트는 남이장군묘소와 천주교 남양성모성지, 그리고 홍난파생가 등이다.

일반적인 자전거라이딩은 저전거전용도로를 따라 속도감있게 먼 거리를 달리는 것인데 비해 우리의 라이딩은 전혀 다르다. 빠른 속도로 달리면 시간당 20km 전후라서 3,4시간 정도면 60km를 갈 수 있지만 우리가 가는 길은 주로 농로나 골목길, 고갯길 등이라 빨리 달리지 못하고 급한 오르막길에서는 끌고 가기도 하고 털털거리는 비포장 흙길로 다니기도 하여 시간이 많이 걸린다. 가다가 정자나무 쉼터가 있으면 쉬어가고 고갯마루에서는 헐떡이늗 숨을 내쉬면서 숨을 돌리기도 한다. 가는 곳곳의 역사문화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지난 역사를 회고하고 사찰이나 성당을 만나면 들어가서 참배하고 기도를 올리며 차도 나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삶이다. 그러다 보니 60km가 안되는 거리를 7,8시간 걸려 다니게 된다. 가는 지역의 특색있늗 맛집과 후한 인심 또한 색다른 체험이 되고 있다. 새로운 곳에서 난생처음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느끼고 즐길 수 있음은 큰 행복이 아닐 수 없다.

남이장군묘소

상록수역을 출발하여 12km되는 비봉면 지역에 남이장군 묘소가 있다. 산비탈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서 참배했다.
남이장군(1441-1468)은 조선 세조때 1457년 17세의 어린 나이로 무과에 급제했다. 이후 이시애난을 토벌한 공으로 적개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27세에 병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유자광의 무고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춘천의 남이섬에 있는 남이장군 묘는 가묘라고 한다.  

남양성모성지

다음은 남양성모성지 방문이다. 이전 바이콜 리이딩때 왔던 곳이다. 2개의 붉은 굴뚝기둥 모양의 건물이 다른 성당과는 달리 독특한 모양이다. 이 성지는 건축 노벨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보타가 설계한 대성당이다. 고딕성당의 종탑을 원통으로 대신한 것이다. 천정을 통해 들어온 빛이 제대위에 천사의 날개처럼 비칠때가 있다고 한다.

남양성지는 성모님에게 기도를 드리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1991년 10월 수원교구장 김남수 주교에 의해 남양성모성지로 선포되었다. 남양성모성지는 성모님 품 같이 아늑하고 성스러운 분위기를 지닌 곳으로 천주교 신도들의 순례지겸 휴식장소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화성 8경 중의 하나로 마치 아름다운 수목원을 방불케한다. 남양성모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때 많은 신자들이 죽어간 무명 순교지이기도 하다. 다른 순교지와는 달리 오랜 세월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오다가 1983년부터 성역화되기 시작했다.

1층의 조용한 작은 집례실에서 기도를 올리고 2층의 넓은 본당에도 갔다. 천주교신자인 3명의 대원들 모두 정성스럽게 기도를 올린다.
함께 개인별 기도에 동참했다.
"Oh God, the animating principle of all living beings, fill my whole being with your spirit and all blessings..."

점심시간이다. 어느 식당으로 갈까하다가 어디를 찾아가니 마침 쉬는 날이라 문이 잠겨 있다. 그 옆 코다리식당으로 갔다. 제대로 온거냐고 물으니 딱 맞게 잘 찾아오신 거라고 반긴다. 코다리 2인분과 이면수, 고등어구이를 주문했다. 배가 고프기도 하고 맛은 일품인데 서비스가 더욱 편안하게 해준다. 남양성모성지에서 기도를 하고 마음이 푸근해진 상태라서 그런지 보는 것마다 좋아보이고 편안하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면 큰 어려움이 없을 듯싶다.

홍난파생가

화성시청앞 교차로를 지나 고향의  봄길을 따라가면 숲속의정원이 나오고 구불구불 '고향의봄길' 언덕길을 이리저리 넘어서면 아늑한 산자락 홍난파선생의 생가에 다다른다.

홍난파(본명 홍영후, 1898-1941)는 우리나라 현대음악의 여명기를 개척한 인물이다. 1912년 YMCA 중등부(성동고의 뿌리)를 졸업하고 1918년 일본 도쿄 우에노 음악학교에서 2년간 수학 후 귀국하였으며 1920년 봉선화를 작곡하였다. 1926년 일본 도쿄 고등음악학교에 입학하였고, 1929년 중앙보육학교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31부터 1933년까지 미국 서우드음악학교에서 연구하였다. 1935년부터 백마강의 추억 등 14곡의 대중가요를 작곡하였고 1941년 8월엔 지병인 늑막염이 악화되어 생을 마감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봉선화, 성불사의 밤, 옛동산에 올라 등 가곡과 달마중, 낮에나온 반달, 고향의봄 등의 동요곡이 있다.
생가 마루앞에 서서 그가 작곡한 고향의봄을 2절까지 우렁차게 불렀다.

구름한점 없는 봄날 오후 햇살은 뜨겁다. 땀이 어디로 스며드는지 모르겠다. 목 뒤쪽이 따끔따끔할 정도로 뜨겁다. 그래도 여름햇살에는 비할바가 아니다. 앞서서 길을 이리저리 찾아 안내해주는 친구 덕분에 뒤에서는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 미안스럽기도 하지만 고마울 따름이다.

산림생명자원연구부, 호매실교를 지나 서부로와 매송고색로를 타면 수원역이 나온다. 오후 5시50분에 상황을 종료하였다. 8시간이 넘는 장시간 여행이다.

화성지역 농촌에서 모내기를 한 농로를 지나면서 어린시절 시골생활을 연상하고 여러 마을의 골목골목을 지나며 사람들의 사는 모습들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역사문화답사로 지역마다의 특색있는 곳을 찾아 역사의 교훈을 회고해보고 종교관련 성지에서 기도와 정성을 올리면서 마음과 몸이 편안해지고 건전해지는 종합셋트가 우리들의 동기회 자전거동호회 라이딩이다.

*코스: 상록수역~ 상록중학교~ 비봉로~ 남이장군 묘소~ 남양천길~ 남양성모성지~ 화성시청~ 고향의 봄길 ~ 홍난파생가~ 비봉교차로~ 비봉천주교103위성인추모공원~ 샘내ic~ 과천의왕고속도로(하)~ 산림생명자원연구부~ 호매실로~ 서부로~ 매송고색로~ 수원역(8시간/58km)

상록수역에서 만나 출발

농로길을 따라

모내기가 한창이다.

수문 느티나무 정자 아래에서 휴식

남이장군 묘역으로

남양성모성지로 가는 길에 금계국이 만개했다.

남양성모성지

가는 곳곳마다 기도가 간절하다.

본당에서 국태민안을 위한 기도

화성시청역 부근에 우연히 들른 최고의 맛집 진미코다리 식당에서 점심식사

시원스런 도로와 전망좋은 아파트단지

홍난파생가로 가는 고향의봄길

홍난파생가

고향의봄 동요를 2절까지 합창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꽃동네 새동네 나의 옛고향..."

동영상- 노래부르면서 고향의 봄길로

호젓한 고갯길도 넘고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으로 열기를 식히고

수원역앞 지하차도로 진입


17시50분에 수원역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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