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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1월 30일에 이사를 한다. 서울 대방동에서 용인수지로 이사와서 가장 오래 10년이나 살았다.아랫동네에는 비가 오는데 산쪽에 가까운 우리 아파트에는 눈이 내린다. 까치, 새소리가 잠을 깨우고 비오는 날은 맹꽁이소리가 들린다. 성복천 개울 징검다리 건너 지하철로 가는 길에 송사리떼가 노닐고 왜가리가 신사처럼 서있다. 부근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매일아침 맨발걷기도 했다. 전세로 살던 집이 팔려 비워주어야 해서 아쉽지만 부근의 다른 단지로 이사를 하게 된다.

이사하기 29번째인가

이사를 참 많이도 다녔다. 현역시절에는 1,2년마다 보직이 바뀌다 보니 전후방 여러부대 셋집과 부대관사를 옮겨다녔다. 큰아들은 초등학교 6군데를 옮겨 졸업했다. 일산- 수색- 창원- 대구만촌- 원주중앙- 서울서래, 거의 1년마다 전국을 돌아다닌 셈이다. 장군진급 이후에도 전역할 때까지 5번 옮겨다녔나 보다. 역마살이 있어서인지 전혀 불편하지는 않았다. 새로운 곳에서 몰랐던 사람들을 만나는 기대와 설렘이 있었다. 그렇게 1,2년정도 함께 했던 전우들이 엄청 친해진다. 그런게 군의 독특한 문화였다. 개인의 이익을 위한 일이 아니라 부하들과 부대, 군과 국가의 일을 하니 매사가 공명정대하다. 바르고 성실하게 일하고 노력한 만큼 인정받으니 관계가 깔끔하다.

독특한 군대문화의 추억들

한겨울 혹한기 야외훈련시에는 병사들 천막안에 중간사이에 끼어 야외 흙바닥위에서 밤을 지내기도 했다. 천막안의 기온이 영하12도였다. 군화가 장작개비처럼 뻣뻣하게 얼어있어 불을 피우고 녹이면서 신었다. 장거리행군시에는 가족들이 따끈한 차를 끓여 장병들을 위문하기도 한다. 월동준비 시기에는 온 가족들이 부대로 모여 김장을 해서 김치탱크에 저장한다. 끝나면 가족들이 짜장면 잔치를 한다. 봄가을 체육대회 시에는 연병장에 장병들이 모여 부대별로 시합을 하고 떠들썩하게 응원을 한다. 겨울이면 부대주변의 개울이나 저수지, 큰논에 스케이트장을 만들어 겨울내내 체력단련을 한다.
소대장시절, 중대장시절 등의 까마득한 때에 함께했던 부대 전우들까지도 지금 수시로 모임을 이어오고 있으니 참 독특한 관계라 아니할 수 없다.

이사박스 풀어헤치기

사무실 책꽂이에 있던 책자와 수첩, 개인자료, 서랍속 물품들을 봉지에 넣어 박스로 포장해서 싣고 와 베란다에 쌓아두었다. 다음 근무지에서 푼것도 있고 긴요하지 않은 것들은 그대로 계속 쌓인다. 이사 한번 할때마다 점차 늘어난다. 1999년말까지의 자료들은 고향집 창고에 넣어둔 채로 25년 넘게 그대로 있다. 군생활중의 사진이나 앨범들이 거기 어딘가에 있을 터인데 없어도 지금 사는데 아무 문제없는 것들이라 그냥 있다. 미국유학시절에 사용했던 당시의 고급 전축과 클래식 레코드판들도 있을게다.

그 이후의 박스들은 지금 아파트에 있어서 싣고 가도 저장할 공간이 없다. 그냥 버릴 수는 없어 하나하나 풀어헤쳐 서류, 메모 한장한장 넘겨가면서 확인한다. 업무사항들은 수첩에 매일매일의 기록으로 남아있고 기타 자료들은 파일별로 있다. 분류되지 않은 자료들은 이봉투 저봉투에 섞여 있다. 하나같이 당시에는 머리를 짜내고 정성을 다해서 추진했던 일들이다. 그런 역사들이 아쉽게도 이제는 쓰레기통으로 다 던져지고 만다. 가끔 봉투속에서 돈도 나온다. 옛날지폐 1000원권, 5000원권, 결혼식주례 답례로 받은 조흥은행 10만원 수표도 버리는 서랍봉투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정리하면서 글을 읽고 사진으로 찍기도 하다보면 시간가는줄 모르고 새벽 2시를 넘기기가 일쑤다. 꿈에서도 정리하는 꿈을 꿀 정도이다.

글쓰기 메모들

글을 참 많이도 썼다. 떠오르는 생각을 어디서든 종이가 있으면 봉투뒷면에도 항공권 여백에도 써서 남겼다. 기사가 운전해가는 사이에 주변에 보이는 현상들에 대하여 생각나는대로 적었다. 활자화되지 않으면 다 없어질 메모들이다. 아쉬운대로 일부는 폰으로 사진을 찍어두었다. 군사령관생신 축시도 있고 생일을 맞는 후배장교들에게 보낸 축시도 있다. 연합사 미군 장군에게 영어로 쓴 편지들도 많다. 전우자녀 돌맞이 축시, 회갑, 칠순, 8순 축시들도 있고... 육사졸업생도 축하강연 메모, 평화유지군 파병 자부심 심어준 교육자료, 부대방문 강연자료, 매일 한가지 문장을 군 인트라넷 자유게시판에 꾸준히 수년동안 올렸던 자료들도 나온다. 마라톤 참가소감과 국방일보에 게재된 기사, 인터뷰, 방송출연 자료들도 많다. 비디오테이프와 예전의 저장장치, CD 등으로 제작된 것들이 많지만 일일이 확인할 수가 없어 대다수 버리게 된다. 내가 안버리면 나중에 아들이 보지도 않고 어차피 다 버릴 것들이다.

꼭 메모하고 기록으로 남겨야 하나?

미국 유학시에 함께 공부한 일본 대위는 보고듣고 경험한 것들을 다 메모해서 본국으로 보낸다 했다. 우리는 요구하지도 않았고 보고서를 제출해도 존안이 잘 안되어 후배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집안모임시에 매제는 내가 메모하는 습관에 썩 동의하지 않는다. 듣고 알면 되지 굳이 메모할 필요가 있느냐고 어릴적부터 그렇게 살아왔으니 그럴만도 하다.

옷가지 정리

옷이 넘쳐나게 많다. 못먹고 못입던 어린시절을 비교하면 상상이 되지 않는다. 어릴적 고생들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훈장같은 값진 추억이다. 지금은 모든게 너무나 풍족하다. 그런데 나이들고 보니 좋은 것이 필요없고 편한 것이면 제일이다. 파카, 몽블랑 만년필, 볼펜을 갖고싶어 했는데 이제는 잘 쓰여지는 볼펜, 수성펜이면 충분하다. 입는 옷도 몇가지면 되고 신발은 미끄럽지 않고 가벼운 운동화가 최고다. 옷들을 다 버려야 하는데 엄청 많다. 일주일내내 풀어헤치고 정리한다고 했어도 아직 멀었다.

이사가 정리의 기회

그래도 이번의 이사기회가 정리의 절호의 챤스가 된다. 며칠전에 불암산 아래 불암사로 일면대종사께 신년인사차 예불연 임원들이 갔더니 스님이 열반시에 어떤 말을 남길까 해봐도 평생 이거라고 잡힐게 하나도 없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남겨야겠다고 하신다.
"인연따라 와서
엄범덤벙 살다가
인연따라 갑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도 49년 설법을 하시고도 열반시에 한마디도 설한 바가 없다 하셨는데 우리가 무엇을 했다고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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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에 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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