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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19(목) 10시, 8호선 동구릉역에서 만나 동구릉답사
고교 3학년 6반이었던 친구들이 격월로 모임을 갖는다. 차반장이 좋은 곳을 선정하여 주선해주는 덕분에 다양하게 명소들을 돌아보고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이번에는 11명이 참가했는데 강원도 속초, 횡성, 원주에 사는 친구들도 왔다. 예전처럼 서로 이름을 부르는 관계라서 격식차리지 않고 편안하다.
10:30부터 12시까지는 동구릉 해설사의 설명과 안내에 따라
1)재실에서 개괄적 설명을 하고
2)효명세자릉(문조 추존)인 수릉 3)5대 문종의 현릉
4)그리고 태조 이성계의 릉인 건원릉을 돌아보고,
이후에는 자유관람으로 차반장의 안내로 목릉, 휘릉과 원릉, 혜릉, 숭릉, 숭릉연지 등을 13시경까지 돌아본 후,
입구지역 맛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동구릉에는 조선 왕조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가 안치되어 있다. 조선의 왕릉 42기 중에 2기는 북한에 있는데, 북한에 있는 2기를 제외한 40기가 2009년 6월27일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바 있다.
뙤약볕이 쨍쨍한 무더운 날인데 동구릉 숲속은 계속 그늘이라 길도 널찍하고 시원해서 관람하기에 불편함이 없다. 권역이 너무 넓어서 9개소를 다 돌아보기가 쉽지 않지만 몇군데는 특징적으로 가봐야할 곳들이다.
1)재실
2)첫번째 효명세자(문조) 수릉
3)5대 문종의 현릉
4)태조이성계의 건원릉
5)바로 오른쪽에 神의 정원이라고 하는 선조의 목릉
6)보물로 지정된 18대 현종과 명성왕후비각 숭릉
7)숭릉연지 등
차반장의 사전답사로 숲속길을 이리저리 설명을 들으면서 주요 지역은 거의 다 돌아보고 맛있는 식당에서 점심식사와 찻집 후식까지 나누었다
,

지하철역에서 만나
동구릉 해설사가 1030부터 안내시작

널찍한 흙길로

첫번째로 재실에 들어가 앉아서 설명


두번째로 효명세자(문조 추존) 수릉


울창한 숲길따라 건원릉으로 이동


태조이성계의 건원릉 앞에서 설명

건원릉에서

제단을 오를때는 오른발부터

제물 진설도 - 육류가 없고 전이 없다.
릉마다 원찰을 두어 제물을 준비하도록 했는데
이곳 원찰은 사라지고 없다.

건원릉은 고려시대 문화로 릉이 조성되어 높은 언덕위에 릉이 있다.
이성계 본인은 정동의 신덕왕후 옆에 묻히고자 했으나 태종 이방원이 그리하지 않고 이곳에 별도로 모셨다.
(정동의 신덕왕후 묘도 성밖 정릉으로 옮겼다)

신도비 - 선조가 세웠다.
업적을 새기고 정도전도 언급되어 있다.


태조이성계 묘소에 묵념

건원릉에는 잔디대신 함흥의 흙을 덮고 억새를 심었다. 아랫쪽 귀퉁이에 억새모종을 유지하여 봉분으로 옮겨 심는다.

해설사 안내가 12시경에 끝나고 이후 1시간 정도 자유관람이다.
바로 오른쪽편에 선조의 목릉이 있는데 神의 정원이라고 할만큼 아름답다.



쉬는 장소가 곳곳에 있다.
간식 음식물은 안되고 커피, 생수는 가능


비가 오려나 보다.
개미들이 줄서서 바삐 왕래하고 있다.

18대 현종과 명성왕후 숭릉

숭릉연지에는 왜가리들이 많다.




입구지역 맛집에서 번호표접수 후 한참 기다려 코다리 점심식사
(자리는 분산)



식사 후 차담


차반장이 해설을 들으면서 정리한 답사후기를 참고로 게재한다.
~~~~~^^~~~~~~
동구릉 매표소 부근에서 역사문화해설사와 가볍게 인사나누고 1시간 30분 동안 수릉, 현릉, 건원릉을 차례로 탐방하기로 하였다. 동구릉의 역사에 대하여 간단하게 설명하고 먼저 재실(齋室)로 향한다.
외홍살문을 통과하면 재실이 나온다. 왕릉마다 홍살문이 있지만 외홍살문은 동구릉이 유일하다. 홍살문은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붉은 기둥의 문으로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
재실은 사대부 저택처럼 꽤 큰 규모로 종9품 참봉을 비롯한 관리자들이 머물면서 왕릉을 관리하고 제향을 준비하는 곳이다.
가장 먼저 만나는 능은 수릉(綏陵)이다. 수릉은 한 봉분 안에 왕과 왕비를 같이 모신 합장릉으로 순조의 아들이었던 효명세자와 신정왕후가 묻혀있다. 효명세자는 순조를 대신해서 정사를 돌보며 성군의 자질을 보였으나 안타깝게 22세에 요절했다. 사후에 익종으로, 다시 문조로 추존됐다. 일반적으로 왕릉은 우상좌하의 형태로 왕이 오른쪽 왕비가 왼쪽에 모셔지는 것이 원칙이나 수릉은 왕이 왼쪽 왕비가 오른쪽에 모셔져 있다. 이는 세상을 떠날때의 신분 차이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서 조선 5대왕 문종과 현덕왕후의 능 현릉(顯陵)이다. 현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丁字閣)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령의 형태이다.
조선 왕릉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다. 이 문을 지나면 박석으로 깔은 참도(參道)가 나온다. 참도는 향로(香路)와 어로(御路)로 되어 있으며, 향로는 제관이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길이며, 어로는 왕이 다니는 길이다. 왕릉에서 한 중간에 우뚝 서있는 가장 큰 건물이 정자각이다.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다. 정자각 뒤편으로 크고 높다랗게 언덕이 조성돼 있고 그 언덕 위에 봉분이 있다. 문종은 세종대왕의 장남으로 성품이 어질고 명철하였으며, 특히 학문을 좋아하여 문장력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신기전을 개발하는데 직접 참여했으며 화차까지 직접 고안했다고 한다. 이른바 문종화차다. 그리고 준비된 왕으로 효성이 지극하기로도 유명했다. 아버지 사후 3년상을 너무 극진하게 치러서 건강을 헤쳤다고 한다. 왕위에 오른지 2년만에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다음은 동구릉의 대표격인 태조 이성계의 능 건원릉(健元陵) 으로 하늘이 내린 최고의 명당이라고 한다. 고려말 무인으로 활약하다 1392년 조선을 개국했다. 그러나 개국한지 6년만에 다섯째 아들 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으로 임금 자리를 내놓았다. 왕자의 난으로 둘째 부인에서 얻은 방석과 방번 그리고 필생의 동지인 정도전은 방원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 태조는 이후 10년간 원망과 회한 속에서 살다가 돌아가셨다.
특이하게도 그의 봉분은 잔디가 아니라 억새(청완)로 뒤덮여 있다. 태종은 태조의 유언에 따라 아버지의 고향인 함흥지역의 흙과 억새를 가져와 덮었다고 한다. 건원릉 한 쪽에 억새밭이 있다. 매년 한식날에 이 억새를 옮겨 심는다고 한다. 태조의 첫째 부인이자 방원 형제의 어머니 신의왕후 능은 북한에 있고 둘째 부인 신덕왕후 능은 서울 정릉에 있다. 건원릉 비각에는 신도비와 황제비가 있다. 신도비는 태종이 쓴 글로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업적과 간신 정도전이라는 기록도 적혀있다.
역사문화해설사와 작별하고 교우들끼리 오붓하게 나머지 능을 흠람하기로 하였다.
건원릉 오른편에 있는 목릉으로 향한다. 목릉(穆陵)은 '신의 정원'으로 조선 14대 왕 선조와 의인왕후, 인목왕후가 묻혀있다. 선조 하면 임진왜란이 먼저 떠오른다. 왜군이 부산에 상륙해 파죽지세로 북상하자 보름만에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피란을 떠났다. 개경으로, 평양으로, 의주까지 피신했다. 조선 왕 중 세번째로 긴 41년간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 이황, 이이, 허준 등 걸출한 인재들을 다수 배출했지만 국가적 위기에 무능했던 왕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선조는 적통이 아닌 방계 혈통으로 처음 왕이 된 컴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탓인지 후궁 소생인 광해군을 이미 세자로 책봉해 놓고도 자신이 50살에 18살 밖에 안된 인목왕후를 새로 들여 영창대군을 낳음으로서 훗날 비극의 씨앗을 뿌리기도 했다.
다음은 휘릉이다. 휘릉(徽陵)은 조선 16대 왕 인조의 두번째 왕비 장렬왕후의 능이다. 장렬왕후는 초년엔 귀인 조씨에게 밀려 숨죽여 살고 중년엔 본의 아니게 예송논쟁의 요인이 되고 말년엔 손자 며느리 명성왕후 김씨에게 치이는 등 고생 많은 삶을 산 여인이다. 현종의 왕비 명성왕후가 죽은 뒤에는 왕실의 큰 어른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장렬왕후는 평생을 고독한 신세로 살다가 소생없이 사망한 후에도 남편 인조와 정비 인렬왕후가 묻혀있는 파주의 장릉과는 너무 멀리 동구릉에 홀로 있는 비운의 왕비로 기억되고 있다.
이어서 21대 조선 왕 영조와 두번째 왕비 정순왕후가 묻혀있는 원릉(元陵)이다. 영조는 천한 무수리 출신 소생이라는 한계를 딛고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조선왕 평균 수명이 47세인데 영조는 83년을 살았고 재위기간도 52년으로 가장 길다. 그는 탕평책으로 인재를 두루 등용하고 정치, 경제, 국방 전 분야에 걸쳐 많은 업적을 이루었으며, 조선 후기에 중흥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영조는 정비에게서 자식을 얻지 못하고 모두 후궁에서 2남 1녀를 얻었다. 그중 영빈 이씨의 소생이 사도세자이다. 누구보다도 훌륭한 왕으로 키우고자 자식을 채찍질했던 영조, 아버지 간섭에 숨이 막혀했던 사도세자, 두 사람 사이의 비극은 영화 사도세자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영조는 66세때 15살에 불과한 정순왕후를 새 왕비로 들였다. 정순왕후는 자식을 낳지 못했고 영조의 다음 왕위는 정조가 잇게된다.
경릉(24대 헌종,효현왕후, 효정왕후)은 시간관계상 바이패스하고 혜릉(惠陵)으로 향한다.
혜릉의 주인은 단의왕후다. 단의왕후는 조선 20대 왕 경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세자빈 신분일 때 세상을 떠났다. 경종이 왕이 된 이후에 왕후로 추존되었다.
동구릉에서 마지막 9번째 능은 숭릉이다. 숭릉(崇陵)은 18대 조선 왕 현종과 명성왕후가 모셔져 있는 능으로 가장 아름다운 능이다. 다른 왕릉과 달리 팔작지붕 형태의 정자각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왕릉 중 유일하게 정자각이 보물로 지정돼 있다. 현종의 아버지는 효종이다. 효종(봉림대군)이 왕자일 때 병자호란때 형(소현세자)과 함께 청나라 심양으로 끌려가서 지내던 중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이가 바로 현종이다. 현종은 외국에서 태어난 유일한 왕이다. 재위 15년 동안 조선은 각종 자연재해로 백성들이 몸살을 앓았다. 그렇지만 재위기간 동안 군사력 강화에 힘쓰고 호남지역에서 대동법을 실시하여 농업을 발전시키는 등 두 차례의 청나라 침략 피해로부터 국가체제를 회복하기 위해 힘썼다.
숭릉을 탐방하고 출구쪽으로 나오다 보면 조그만 연못이 있다. 바로 숭릉연지다. 동구릉 내 3개의 물길을 관리하기 위해 숙종때 만들었다고 한다. 조선왕릉은 59만평으로 광활한 대지와 숲만으로도 장관이다. 자연과 어우러진 동구릉은 과학과 예술의 합작품으로 조성한 거대한 자연박물관이요 신의 정원이다. 조선왕릉을 수세기 동안 원형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건축기술에 있다. 봉분 아래 석실에 관을 넣은 후 자갈과 석회를 섞은 반죽으로 튼튼하게 메웠으며 봉분 안에 있는 2개의 격실 사이에 창문을 뚫어놓았다. 사후에도 왕과 왕비의 혼령이 서로 통하라는 의미다. 혼유석(혼이 쉬고가는 공간) 바로 아래에 있는 석실과 연결된 비밀통로가 있다. 10톤 가까이 되는 혼유석을 들어내지 않고는 석실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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