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25.8.15(금) 12시경
8월15일, 80주년 광복절과 육영수여사 서거 51주기에

중학생인 손녀 지원이와 함께 국립현충원을 방문하여
현충탑,
최수봉의사(처 작은 할아버지),
박정희대통령 묘소,
이승만대통령 묘소,
창빈안씨 묘소(선조 조모) 등을
참배하면서 역사설명

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처 작은 할아버지 최수봉의사가 모셔져 있는데 마침 손녀가 방학기간 여유가 나서 함께 가보자고 하여 광복절 오전에 나섰다.

먼저 현충문으로 갔다

매년 신년도와 현충일 전후에 단체로 참배를 하고 있는 곳이 현충문이다. 국가원수와 주요인사들이 참배를 하면서 새로운 다짐을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외국원수가 방한시에도 거의 참배를 하는 국가의 상징적 의미가 있는 장소이다. 여기에서 참배를 하는 의미가 무엇일까 입구에 설명문이 있는데 거의 읽지 않고 지나간다.

현충문으로 들어가서 참배하는 탑은 쉽게 말해서 '무명용사 탑'이다. 비석이나 봉분으로 안장된 묘지는 유골이 있고 신원이 확실한 분들이다. 6.25 전사자 중에서 유해를 찾지 못한 10만 4천여명의 위패와, 유골은 있어도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5,800여명의 유골이 탑 뒤쪽 지하에 봉안되어 있다.
탑 아래에는 노산 이은상선생의 글이 박정희대통령 글씨로 새겨져 있다.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애국지사 묘역의 최수봉의사

경남 밀양에서 1895년에 태어난 처 작은 할아버지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의열단으로 활동하면서 만주를 왕래하셨다 한다. 1920년에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후에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921년, 27세의 나이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고 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결혼이전이라 유족이 없어 우리가 수시로 참배하고 있다.

우리 할아버지는 고향에서 독립관련 활동을 하시다가 일본순사에 체포되어 진주감옥소에서 수감되셨다. 수감 중에 등창이 나서 집으로 모셔가라는 연락이 와서 부친이 지게로 진주에서 합천까지 집으로 모시고 와서 얼마 후에 별세하셨다. 재판 및 수감관련 자료가 소실되어 근거자료를 제시하지 못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분들이 주변에 무척 많다.

그러고 보니 아들네는 증조, 외증조 모두 독립유공자인 셈이다. 그래서 올해에 손녀의 광복80주년 대형태극기 글씨써넣기 이벤트도 남달리 의미가 크고 이날의 국립현충원 참배도 자부심과 사명감을 돋구는 기회가 되었다.

박정희대통령 묘소 참배

국립극장에서 1974년 8월15일, 29주년 광복절 경축식행사가 진행되고 있던 중에 북한의 지령을 받은 재일교포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 총격을 가했고, 이 총탄에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셨다. 올해로 51주기에 되어 오전에 열렸던 기념행사장이 철거 중에 있다. 박정희대통령 육영수여사 묘소에 참배했다.

초대대통령 이승만박사 묘역

프란체스카여사와 합분으로 조성된 묘역이다. 이승만대통령의 이력이 돌에 새겨져 있다.
1905년에 조지워싱턴대학교에 입학하여 1907년에 졸업했고 하버드에서 1908년 사학석사를, 프린스턴대에서 1910년 정치학박사를 취득함으로써 5년사이에 학부와 석박사를 거쳤다.
건국대통령으로 새겨져 세워졌던 초기의 비석이 부근 어딘가에 묻혀 있을텐데 언제 빛을 보는 날이 올까?

창빈안씨 묘역

동작동국립묘지의 원래 주인이었던 창빈안씨 묘역을 알거나 관심을 가지고 방문하는 이가 별로 없을 듯싶다.
강남 선릉역 옆의 선정릉에는 성종과 그 아들 중종의 왕릉이 있는데 중종의 왕비가 장경왕후, 문정왕후이고 후궁이 창빈안씨이다. 묘소가 처음에는 앙주 장흥지역에 있었으나 자리가 좋지 않다 하여 지금의 자리로 이장했고 그로부터 3년 후에 나중에 선조왕이 된 하성군이 태어났다고 한다.

장경왕후의 아들이 인종으로 8개월밖에 재위하지 못했고, 그 다음으로 문정왕후의 아들이 12세로 명종에 즉위했으나 후사가 없었다. 직계에서는 왕세자가 없어 부득이 서손(庶孫) 중에서 세자를 물색했는데 창빈안씨의 2남1여 중 둘째아들 덕흥대원군의 셋째아들 하성군이 왕위를 물려받아 14대 선조가 되었다. 이후 조선말까지 14대 왕이 창빈안씨의 자손으로 이어져 왔다.

서울현충원을 자주 방문해도 대부분 가는 코스만 단체로 이동하여 일부만 본다. 다 알수는 없지만 아는 만큼 보이는게 세상이다.
,

혅충원 입구에 세워진 조형물

먼저 현충문에서 현충탑 참배

방명록에 서명

최수봉의사 묘소

박정희대통령 내외분 묘소

이승만대통령 내외분 묘소

창빈안씨 묘소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