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제사의 유래와 시대에 맞는 조정과 한글 축문

조상의 별세하신 날을 기준으로 모시는 제사가 忌祭祀이다. 우리 집안의 경우 3가지 유형의 제사를 모시고 있다.

설, 추석 명절에 지내는 茶禮,
고조부 이하 四代奉祀하는 기제사,
그리고 산소에 가서 올리는 묘사

요즈음은 집안마다 여건에 맞게 여러 방식을 적용하고 있어 옛 풍습이 그대로 시행되고 있는 집안이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농업인구가 전 국민의 7~80%였던 '60년대까지만 해도 선조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풍습이 그대로 이어졌지만 이제는 형제, 친지들이 멀리 떨어져 살아 한번 모이기가 쉽지 않고 종교적으로 전틍식의 제사를 모시지 않는 경우도 많아졌다. 예전 고려때는 국가에서 가례의 기준을 정하여 시행했다 하고 조선조에서도 경국대전에 명시되어 그에 합당하게 시행했는데 문화의 다양성이 늘어난 현 시대에는 가정의례준칙이 있기는 하나 유명무실화되어 지금은 그냥 형편 닿는대로 집안마다 의견을 모아 시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려 공양왕 2년, 포은 정몽주의 발의에 의해 만들어진 제례규정에서 기제사의 방식은 당시의 여건에 맞게 상당히 합리적으로 보인다. 즉 형편이 나은 사대부는 3대, 6품 이상은 2대, 7품이하 일반 서민은 부모님 제사만 지내도록 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姓을 가진 집안은 10~20% 정도로 족보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조선의 경국대전에는 士大夫 벼슬은 고조부까지 四代奉祀를 하고 6품이상은 3대, 7품이하는 2대, 일반 서민은 부모님 제사만 지내게 했다. 1894년(고종31년) '갑오경장'으로 계급사회가 무너지고 성씨를  갖기 시작하면서 너도나도 사대부 양반이 되고싶어 四代奉祀를 하게 되었다.

최근 2008년 정부에서 제정한 대통령령 2108호 가정의례준칙에는 2대까지만 제사를 지내도록 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의 제사유형을 보면,
멀리 사는 형제간에 기제사마다 모일 수가 없으니 명절차례 모시기로 모으는 경우가 있고,
명절 연휴에 멀리 다니기 불편하고 여행떠나는 경우가 많으니 가을 벌초 이후에나 묘사때 다 모여 제사를 올리는 것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앞으로는 아들이 혼자거나 외국에 나가 살거나 딸뿐인 경우도 많아 이런 풍습이 이어지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어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적절하게 시행되지 않을까 싶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집안은 5남매가 다 서울, 수도권지역에 살아 아직은 3가지 유형의 제사를 다 모시고 있다. 그 중에서 명절 茶禮보다 기제사가 더 중요시되는 것은 이때가 아니면 사촌, 고종사촌, 외사촌, 이종사촌 등 서로 만나는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느새 우리 형제간 손주들끼리는 6촌간이 되어 버려 촌수 호칭도 무척 복잡해졌다.

기제사에서 2가지를 조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하나는 제사날과 시간으로서 전통적으로는 별세하신 전날 밤 子時로 하지만 다음날의 출근 여건을 감안하여 별세하신 날 저녁 8시에 모시는 것으로 지난해부터 하고 있다.
또 하나는 '讀祝'으로 원문과 한글방식을 교대로 하여 전통이 사라지지 않게 배려해오다가 올해부터 아예 한글 축원문, 기도문 방식으로 바꾸었다. 지난해의 제사이후 변화된 가족들의 상황을 정리하여 조상님께 고하는 형식으로 매년 이 내용을 모아나가면 가족의 역사서가 될 수도 있을것 같다.

이번의 모친제사에는 제군이 열여덟명이나 모였으니 넓은 마루에 가득하다. 이런 모이는 기회 자체만 해도 자녀 손주들의 색다른 문화체험 기회가 되고 상호간 친해지는 계기가 된다. 앞에 부모님이 계시다면 "참 좋구나!"하는 말씀을 하실 것만 같다.

 

손주세대가 얼마나 컸나 동생이 매번 시험해 본다.






<한글 축문>

歲次 丙申 11月 乙卯朔 29日 癸未 孝子 00와 자녀들, 그리고 손주들이 어머니의 기일에 함께 모였습니다.

어느새 어머님께서 별세하신지 한 세대가 지나 33년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저희들의 어른으로 살아계실 수 있는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저희들의 소홀함으로 인해 일찍 별세하심에 대하여 아쉽고 송구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육안으로 직접 뵈올 수는 없지만 언제나 저희들 마음속에 변함없이 함께하시어 저희들의 삶에 깊은 사랑이 되고 바르고 열심히 살아가라는 따스한 마음으로 가까이 계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작년도 제사를 모신 이후 한해 사이에도 가족들의 여러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부모님께 아룁니다.

누님 내외분은 당시의 어머님보다 훨씬 연로하심에도 매번 명절과 기제사에 빠지지 않고 참여해 오시다가 근래에 몸이 불편하시어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누님의 건강상태가 호전되어 가족간에 옛적처럼 어울릴 수 있게 되기를 축원올립니다. 외손자, 외손녀들은 다복하게 살고 있으나 그 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손주에게는 더 힘이 필요합니다.

형님네 가족들은 각자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으나 화목과 평화로움이 늘 깃들 수 있게 축원 올립니다.

둘째 아들인 저희와 두 아들도 잘 성장하여 자리를 잡고 있으나 둘째는 배필을 만나 가정을 이루어야 할 때가 되었음을 고해 올립니다.

셋째 아들의 자녀들에게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장남이 지난달 예쁜 신부 미키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고 딸은 식구가 늘어나게 될 경사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어릴적부터 유난히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신 막내딸은 아시는 바와 같이 든든한 신랑을 만나 네 자녀와 다섯 손주를 두는 다복한 가정을 이루었고 막내 아들의 사회 진출과 혼사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자녀와 손주들이 언제나 변함없는 부모님의 보이지 않는 사랑 속에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아오나 그 중에는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는 일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노력과 열정이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순조로움의 인연으로 이어져 나가기를 축원해 올리오니 보살펴 주옵소서.

추운 이 겨울에도 부모님께서 잘 키워주신 자녀들과 손주들이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게 힘이 되어 주시옵소서.

오늘 기일을 맞아 이 자리에 참석했거나 사정상 함께하지 못한 자녀 손주들을 일일이 기억하시어 크신 사랑을 베풀어주시옵소서.

부모님께서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베풀어 주신 정성과 사랑은 앞으로도 내리사랑으로 집안의 좋은 전통이 되게 해나갈 것입니다.

조촐하지만 정갈한 음식을 정성으로 올리오니 흠향하시오소서.

丙申년 음력 1129일에 자녀 손주 일동이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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