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에 23세의 고3 학생이 18세의 누님과 결혼하여 우리 5남매의 맏이로 그때나 지금이나 동생 처남들의 인생멘토로 60여년을 함께 해오고 계시는 자형 누님. 1963년 봄에 서울로 진출하여 자리잡은 덕분에 내가 서울로 고등학교를 오게 되었고 형제들이 차례차례 상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싱가폴 가서 살고있는 둘째아들이 자기가 살던 수지 상현동의 아파트를 부모님이 살도록 하여 서울 장안평일대에서의 40여년 시대를 마감하고 지난달에 널찍하고 조용한 아파트로 이사하셔서 이제는 부근에 사는 큰아들네와 성복동 우리집까지 가까운 이웃이 되셨다. 덕분에 이제는 이웃집 마실가듯이 우리 내외가 저녁늦게 찾아가 차담을 나누다가 밤이 이슥할 즈음에 집으로 오곤 한다.
마실의 추억
어릴적 예전 시골집에서 엄마 친구분들이 거의 매일 우리집 안방으로 마실오셔서 놀았다. 정보교류가 되는 소통의 공간이고 마을 일들이 쉽게 논의되었다. 긴 담뱃대에 풍년초 담배를 눌러넣고 호롱불에서 불을 붙혀 담배를 태우면 그 연기가 어찌나 매운지 눈이 따가워 자주 방문을 열어가며 환기를 했고 우리는 희미한 방구석에 엎드려 숙제를 하고 공부를 했다. 겨울이면 동치미 무우를 길게 반쪽으로 잘라 한쪽편이 닳아 삐뚤한 놋숫가락으로 긁어 잡숫는게 야식이었다. 지금 생각하보면 다 자연식이고 영양식이며 건강식이다. 작은 호롱불 하나에 담배연기까지 가득하여 흐미한 불빛이었지만 불이 꺼지면 칠흑이고 작은 호롱불이라도 켜지면 대낮같이 밝았다. 거기서 공부한 형제간들이 학교에서는 다 우등을 했다.
남정네들은 누구네 사랑이나 주막에 모였고 찌그러지고 누런 주전자에 막걸리를 한잔 하면서 시끌뻑적하게 목소리가 점차 높아졌다. 등불을 들고 아버지 마중을 가기도 했고 뒤늦게 자기집을 찾아가는 웃동네 어른은 조용한 골목이 울리도록 노래를 불러가며 중얼중얼 소리내고 지나가기도 했다.
이런 공통적인 추억이 있는 우리 5남매는 어떤 옛날 이야기에도 다 실감이 난다. 예전처럼 마실나서듯이 그냥 쉽게 불쑥 찾아가도 아무런 부담이 없는 형제간이 가까운 이웃에 계신 것은 무척 고마운 일이다. 멀리사는 친척보다 가까이 지내는 이웃을 '이웃사촌'이라 했는데 동생도 아닌 누님네가 이웃이 되신 것도 큰 복이지 싶다. 누님이 한말씀 하신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을 봐도 부부해로하고 형제간, 자녀들이 무고하게 지내는 이들이 드물다 하신다. 한치도 틀림없는 因果법으로 돌아가는 生滅세계에서는 福을 많이 지어가며 살아가야 할 일이다.
종로에 사는 남동생이 생일에 초대하는데 누님이 멀리 나서기 불편하니 자형누님 이사하신지 한달이 되어 집들이를 겸하여 모이자고 제안했다. 동생이 싱싱한 회를 떠오고 형님은 떡케이크를, 그리고 누님은 떡국을 준비하기로 하여 그렇게 집에서 모였다. 가까이 사는 큰아들네 질부가 와서 수고를 해 주었다. 모처럼만에 여동생네가 손주들 챙길 일이 생겨 못오고 다음 주의 모친제사때 보기로 했다.
이렇게 지내면 그게 행복이지 싶다. 누가 주는게 아니라 자기가 찾아다 쓰면 된다. 그 창고는 없는 것 없이 무한하여 아무리 써도 바닥나는 일이 없으니까.
아파트 앞이 수자원공사 정수장이라 전망이 좋다.
형님이 방배동에서 특별히 챙겨온 떡케이크가 예쁘다.
선물 전달
누님 용돈
참 오붓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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