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0(목) 오후, 저녁.
국립박물관 및 관악회관

삼국시대 이후 왕건에 의해 고려가 건국된지 1,100년 되는 해이다. 고려는 天子의 나라였고 왕은 황제였다. 고려국은 문명수준이 높았고 남녀평등 사상이나 국가경영이 상당히 민주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서양 문물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세계에 Corea라는 나라로 알려졌고 지금은 국호 Korea라는 이름이 된 계기가 되었다.

세계 5개국(한국, 미국, 영국, 이탈리아, 일본)으로부터 온 고려유물 450여점이 한자리에 모여 전시되고 있다. 유물은 예술품이 아니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작은 하나가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세계최초의 금속활자가 활용되었다고 하는데 인쇄된 책은 있는데 조그만 활자유물 하나가 어딘가에서 출토되기를 고대했었다. 여기 전시유물 중에 개성의 어느 무덤에서 출토되었다는 '산덮을 복'字 하나가 전시된 것을 보고 내심 깜짝 놀랐다. 그 만큼 작은 하나의 유물에 역사가 담겨있는 것이다.

가장 확실한 대다수의 유물들이 불교유물들이다. 삼국시대 이래 고려는 불교국가로 500년을 이어오면서 왕의 국사가 스님이 되고 불상과 탑의 부장품 가운데 당시 사람들의 관심사항과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는 유물들이 무척 많다. 아마 당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안목이 불교적 인식과 존재론적으로 보편화되었지 않았을까 싶다. '91년 미국 소더비경매에서는 고려불화의 대표격으로 꼽히는 [水月觀音圖]가 한국 고미술품 사상 최고 가격인 1백65만달러(13억여원)에 거래되어 고려불화의 관심을 집중시킨바 있다. 

오래전 우리의 뿌리가 되는 대고려 기획전시를 돌아보면서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문물을 느껴보고 자부심을 갖게 해 준다. 오늘의 우리는 후손들에게 어떤 독특한 한국적 문명을 전해주고 있는지 살펴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이촌역 2출구 박물관입구에 모여

박물관으로 이동

멋진 배경을 뒤로하고

기획전시는 입장료가 비싸다.
근래들어 65세 이상은 무료입장이란다.

외국상인과의 물물거래 대화내용이 기록되어 전해져 온다.

당시 서양인이 그린 지도

해동의 천자국, 고려

김부식의 삼국사기

일연스님의 삼국유사

이승휴의 재왕운기

최고의 국가행사로 '팔관회'가 열렸다.
황제가 주관하여 문무백관, 지방관, 외국사신들이 모인 가운데 하늘과 물과 땅, 그리고 모든 토속신앙까지 포함하여 제사를 올리는 의식이다.

중국 대만의 박물관에서 많이 보이는 유물로 다 철제인데 고려는 청자로 만들었다

재물을 관리하는 생활의 지혜가 명시된 '중아함경'

좋은 벗이란:

간절한 '서원'

이동식 불상

茶 영상체험

많이 재현되는 청자구름 학무늬 매병

바로 이 작은 금속활자 한개의 발견 '산덮을 복'字

조선초기의 한글 금속활자

관람 후 간식타임

이촌역에서 남태령역으로 이동, 관악회관에서.
가족들이 함께하면 편안하고 따뜻해지는 분위기가 된다. 이게 행복아닌가?

특별초청 최재근역대회장의 축하인사

일육우보회의 자취와 활동사항을 요약하고 뒷면에 섣달에 관한 글을 실어 유인물로 발표했다.

[2018 일육우보회 활동 결과보고]
●출범: 2009.7.7 영장산 산행을 시작으로 일육우보회 출범한 이래
매월 답사 진행
●답사 실적
1801 대한극장 ‘신과함께’ 
1802 현충원 노량진 
1803 올림픽공원
1804 안산자락길 
1805 고양 꽃박람회
1806 다산유적지
1807 일영계곡
1809 선유도
1810 서울대공원
1011 남산 충무로
1812 국립박물관
 
●장거리 나들이: 철원평야 지리산 계족산 안명도 문경새재 등
●해외여행: '15.3.10~13 오끼나와
 
※ 매월 두번째 금요일 오후 (2금)
                                            
<조선 정조때의 과거시험>
■ 21만1000명 중 단 10~12명만 뽑혔다.
과거 합격자의 평균 연령 35살 내외. 보통 5살 때 과거공부를 시작한다면 무려 30년 이상 머리를 싸매고 공부해서 시험을 치러야 겨우 합격. 국가시험만 5차례 거쳐야 했다. 과거시험은 원칙적으로 3년마다 실시. 수험생들은 한번 떨어지면 최소 3년을 기다려야 했으니 합격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다.
 
광해군의 논술문제, '섣달그믐밤, 
그 쓸쓸함에 대해 논하라'

“가면 반드시 돌아오니 해이고, 밝으면 반드시 어두우니 밤이로다. 그런데 섣달 그믐밤에 꼭 밤을 지새우는 까닭은 무엇인가. 세월이 흘러감을 탄식하는데 대한 그대들의 생각을 듣고 싶다.”

이명한은 광해군이 ‘섣달 그믐밤의 서글픔을 논하라’고 하자
“세월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 또한 부질없는 것”이라는 답안을 제출했다.
답안지의 말미엔 “그저 일평생 학문에 힘써 밤늦도록 등불앞에 꼿꼿이 앉아 마음을 한 곳에 모으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사색하고 공부하게 되면 늙는 것도 모른채 때가 되면 순순히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그럴 경우 무슨 유감이 남겠느냐”고 했다.
 
“인생이란 부싯돌의 불처럼 짧고 우리네 인생도 끝이 있어 늙으면 젊음이 돌아오지 않는다”
“유독 섣달 그믐날 밤을 지새우는 이유는 지나가는 세월이 안타까워서…”
“밤이 새도록 자지 않는 것은 잠이 오지 않아서가 아니고, 둘러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것은 흥에 겨워서가 아닙니다. 묵은해의 남은 빛이 아쉬워서 아침까지 앉아있는 것이요, 날이 밝아오면 더 늙는 것이 슬퍼서 술에 취해 근심을 잊는 것입니다.”
“그런즉 사람이 세월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이지 세월이 사람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지 않습니다.
(然則人能傷歲 歲不傷人)” (<백주집> ‘잡저’)
 
<꿈에 다니는 길이> - 이명한(李明漢)
꿈에 다니는 길이 자취곳 날작시면
임의 집 창(窓) 밖이 석로(石路)라도 달으련마는
꿈길이 자취 없으니 그를 슬어 하노라
 
【현대어 풀이】
꿈속에서 다니던 길에 오고간 흔적이 만일 난다고 한다면
그대의 집 창밖의 길이 비록 돌깐 길이라 하더라도 아마도 다 닳으련만.
꿈속에 다니는 길에 아무런 흔적도 없으니 그것을 슬퍼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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