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병과 창설기념일을 앞두고 병과의 요람으로 공병인 양성 배출의 주역이었던 김해 육군공병학교(1951.2.24~1995.8.1)가 1995년에 전남 장성지역의 상무대로 이전해 가고 김해 공병학교의 일부부지에 공병의 상징인 공병탑을 김해시의 예산사업으로 2008년에 건립하여 10년이 지나 현장에서 기념식을 거행했다.
병과장인 공병학교장과 학교 간부, 그리고 전국 여러곳에서 온 예비역 공병인 등 80여명이 공병탑 현장에 모여 옛 공병학교 시절을 회고하고 병과의 발전과 후배장병들의 건승을 기원하는 모임을 가졌다.
6.25 전쟁기간 중에도 지뢰, 폭파, 장애물 설치 및 제거, 파괴된 교량에 다리를 놓고 하천에 부교를 설치하며 적의 기동을 막고 아군의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하는 장병들을 양성하여 배출했다. 상부의 명을 받아 북괴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한강교를 조기에 폭파한 책임을 두고 당시 공병감이 사형에 처하는 비운을 겪기도 했으나 이후 사면복권된 바 있다.
6.25 이후 전 국토가 폐허화된 상황에서 공병은 중장비가 있고 기술인력이 있어 전후복구와 국토건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미국에 유학을 다녀올 여건은 군이 앞서서 행정체계와 기술수준 등이 무척 선진화되어 있었다.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를 공병이 감독했고 반도호텔도 지었다. 국도의 확장과 터널공사를 공병이 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시 공병감실이 계획과 견적, 설계, 시공 등에 공병 초급장교들이 건설부 간부들과 함께 감독관으로 파견되어 사명감을 가지고 공사감독을 했고 일부 난구간 공사에는 공병부대가 직접 투입되기도 했다.
44년여 동안 50여만명의 공병 장병들을 양성배출함으로써 군과 국가에 크게 기여한 김해 공병학교의 역사를 이만큼이라도 보존하고 있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작년도에는 공병탑이 보훈시설로 지정되어 제대로 관리체제가 구비되었고 바로 인근에 최근 완공된 6.25 및 월남전 참전 기념비와 함께 주변 일대가 근린공원에서 생태공원으로 지정되어 김해시에서 관리동을 짓고 공무원이 상시배치되어 근무하고 있다.
선배 공병전우들이 목숨바쳐 나라를 지키고 발전시켜온 전통을 잘 이어 후배들이 이제는 통일시대의 주역이 되고 국가번영과 한민족의 웅비에 큰 역할을 해나가기를 염원한다.
서울에서 예비역회원들이 아침일찍 전세버스로 출발
여기가 예전의 학교본부 자리였다는데 남아있는게 아무것도 없어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45년전인가 중대장시절에 중대원이었던 박경목사장이 공우회의 부산경남지회장을 맡고 있다. 김해에 살면서 공병탑지킴이 역할을 잘 해주고 있다. 단장시 교육대장인 이형숙후배도 부산에서 왔다.
헌화
유공자 감사장 수여
공우회에서 공병학교에 발전기금 전달
병과장 겸 공병학교장인 이동훈장군 축사
옛 공병학교 터 조감도
미육군공병학교 수료 후 여기 근무하던 1978년에 결혼하고 신혼살림을 했고 큰아들도 태어났던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곳이다
옛 지역 설명
인근 식당에서 점심식사 후 기념품 전달받고 출발
2008년 준공식행사 참고
김해 김수로왕릉을 참배 (금관가야)
동백꽃이 피었고
매화도 피었다
여기로부터 500m 정도에 포구가 있었다고 한다. 인도에서 허황후도 그 포구로 왔고 김수로왕과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 중에 한 왕자는 어머니 성을 받아 김해許씨의 시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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