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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토) 오후, 광화문 동화광장에서

'나라사랑'이 일상이 된 사람들

개인적으로 일상생활 중에 이처럼 매주말마다 반복되는 '애국', '구국'을 외치며 자유민주대한민국을 지켜내야 한다고 3년 가까운 기간동안 빠지지 않고 꾸준히 활동하는 그런 일상생활이 있을까?

취미활동과 건강관리로 매일 운동을 하거나 등산, 골프, 테니스, 당구, 바둑, 자전거, 걷기, 달리기 등의 동호회활동을 즐기는 경우는 많지만 국가에 대한 이슈로 일반인들이 자기비용 들여가며 개인적 신상의 불이익을 각오하면서까지 매주말마다 모여 나라를 지키자고 외치는 이런 일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여기에 오면 감동이 있다. 가식이 아닌 진실이 있다. 형식이 아닌 실질이 있다. 평생 처음 만나고 어쩌면 한번도 스칠 인연조차 없을 사람들이 눈빛만으로도 서로가 든든하고 가고 감사해 한다. 힘이 넘치게 젊은 사람도 아닌 장년, 노년, 남여 어르신들이 앞장선다. 지팡이를 짚고도 80대 후반의 선배님은 빠지지 않고 나오신다.

현시국에 관해 내가 어떤 평가를 해서 설득력있게 글을 쓴다해도 무대에 오른 연사만은 못하고 TV대담, 해설가보다 못하며 전문 유튜버들보다 못하다. 왠만한 국민들 역시 자기 나름대로 다 전문가 못지 않은 식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전문 식견을 가지고 생각이나 말로 하는 사람들보다 나는 현장으로 뛰어나와 실천의 길을 가고 있다. 여러 동료들이 합류하여 함께 하고 있다. 그런 우리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계신 선후배들이 계시다. 존경스럽고 감동적이다.

위국헌신 군인본분

안중근의사, 안중근장군의 글 '위국헌신 군인본분'을 써서 붙이고 부하들에게 정신교육도 많이 했다. 이 시대, 모든 이들이 다 안중근의사처럼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군출신, 육사출신 예비역은 이 정신 구현에 앞장서야 하지 않을까? 지나간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우리는 ''그때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남의 일처럼 쉽게 말한다. 조선말에도 그랬고 일제시대에도 그랬으며 6.25 및 전후 재건사업, 지나간 각 정권들에 대하여 그렇게 말한다. 6.25 북한의 남침으로 3일만에 서울이 함락되었는데 그때 모든 서울시민이 다 피난갈 수는 없었다. 전쟁이 났다고 전 국민이 다 피난갈 수는 없는 일이다. 남아있던 서울시민들은 공산치하에서 90여일간 공산주의 체제로 지냈다. 저항하기에는 이미 늦었고 저항은 곧바로 죽음이었다.

선조들이 지나간 역사의 주인공이었듯이 지금 역사의 주인은 바로 우리들이다. 후손들이 지금의 우리에게 똑같은 말을 할 것이다.
''그때 이렇게 해야 했어...!''
지금은 아직까지 말하고 외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다. 지금이 언제나 기회이다. 지나고 나면 평가밖에 할 수 없지만 지금은 말과 행동이 가능하다. 뭐든 실천하면 된다.

결정적 시기

이전에도 여러 동기생들이 이야기 했다.
''결정적인 시기에 왕창 모여야지 매주 집회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어. 괜히 쓸데없는 고생만 하는거야!''
수없는 결정적 시기가 알게 모르게 지나갔고 그때마다 소리쳐봤지만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 또 새로운 이슈가 일어나고 그것도 또 그렇게 지나갔고... 그러다 보니 2~3년 사이에 우리는 전혀 딴세상에서 포로가 된 것처럼 살고 있는 기분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는 모르지 않는다. '촛불혁명' 정부가 들어섰고 '주사파'가 칼자루를 다 쥐고있기 때문이다. 혁명을 하면 방송국, 정부기관을 먼저 점령하는데 그들은 이미 다 쥐었다. 그리고는 그들 '주사파'가 달달 외웠던 목표, 신조, 강령, 자유주의 배격 11훈 등을 그대로 착착 실천해 나가고 있어 보인다. 어느 누구 막을 세력이 없으니 그들 계획대로 마음놓고 조기 정착을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경제나 외교 등에서 실수를 연발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건  우리의 관점일 뿐,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목표달성을 위한 행위는 법에 관계없이 정의이다. 그러니 자신감이 있고 떠떳하다. 잘못하거나 거짓말하거나 해도 전혀 부끄럽거나 미안해하지 않는다.

이제는 나서야 할때가 아닌가?

조선시대의 봉건제도, 일제치하를 거쳐 해방과 함께 우리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승만이라는 걸출한 선각자 덕분에 공산화 되지 않고 어렵게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했다. 나와 우리 가족이 이만큼 살고 있는 것이 다 그 덕분이다. 이제와서 그 명맥이 끊어지려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어떻게든 되겠지?''
아직 어느 결정적시기를 기다려야 할까? 이 기회에 그 흐름을 바로잡지 못하고 나중에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다. 뭐든지 각자의 손발이 닿는 일을 하면 된다. 혼자 하기보다는 함께하면 힘이 덜 든다. 일어나자. 나서보자. 구국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될때에...

국민의례

25기 선배님들, 많이 오셨다.

24기 선배님들, 더 많이 오셨다.

18, 20, 21기 선배님들이 많이 오셨다.
18기 대장출신 두분은 매주 빠지지 않는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중학교 친구와 18기 조용섭, 20기 성윤경선배님, 다들 매주 나오신다.

단촐한 대열동기

시가행진

태극기집회에 비난을 퍼붓는 집회

동화광장 바로 옆 파출소 앞에서는 17시부터 국민의 소리 강연회가 열린다.

매미가 왔다. 편안한가 보다. 떠나지를 않는다. 굼벵이로 7년을 지내다가 이제 매미로 살고 있다. 한참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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