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2564년 부처님오신날

'코로나사태'로 인해 마침 음력으로 윤4월이 있는 윤4월8일인 5월30일에 '부처님오신날' 법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한국불교 모든 종단이 결정함에 따라 이날은 약식법회로 거행되었다.

코로나종식 매일 巳時기도

국방부 원광사에서는 우한폐렴인 '코로나사태'로 종교집회가 멈춰진 싯점부터 전군부대의 사찰과 함께 매일 巳時에 군법사가 '코로나종식과 국군장병 무운장구'를 위한 기도정진을 신도들이 없는 가운데 계속 시행해 왔다. 이날은 아직도 5월5일까지는 사회적거리두기가 국가적으로 계속 시행되고 있는 시기라 집회준수 지침에 따라 출입자 체온측정과 손세척, 명단기록 후 입장하고 좌석도 2m띄어 앉도록 했다. 혹시 너무 많은 인원이 올까 걱정했는데 70여명 정도라 법당에 여유있게 앉았고 점심식사는 그 중 반 정도의 인원이 동참하여 역시 널널했다.

●부처님오신날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뭘 깨달으셨나?
●이전과 이후에 뭐가 달라졌나?
-신의 뜻대로(신본주의)?
-이미 태생적으로(운명론)?

불교, 佛法이란 무엇인가?

불교의 출발점은 '고통'이다.
현재 온 인류가 겪고있는 우한폐렴인 '코로나'에서 어슬렁거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누구에게나 있다. '生老病死'를 비롯한 '4苦8苦'뿐만 아니라 배고픔과 가난, 차별, 서운함, 화, 절망, 우울 등의 몸과 마음의 고통들이 누구에게나 있다. 나와 나 아닌 것들로 나눠진 사이에서 비교, 분별하고 한가지라도 더 가지려고 한다. 잠시 행복하고 평온한 듯 해도 오래가지 못한다. 늘 이러한 구조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 구조 안에서는 아무리 발버둥치며 돈을 벌고 명예와 건강을 얻었다 한들 다 100년을 못넘기고 언젠가는 맨손으로 떠나고 말 것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싯달다태자께서는 이런 이치를 알고 세상에서의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고 그 근본적 길을 찾아나서셨다. 6년간 온갖 구도수행을 하셨지만 그 길도 역시 최상승은 아님을 알고 마음을 고요히 하시고 入定에 드시어 드디어 '위없는 깨달음'을 체득하신 것이다.

그 깨달으신게 무엇이었을까?

세상에 없는 것을 발명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져 있었는데도 '안목(카테고리)'이 달라서 모르고 있었던 것을 일깨워주신 것이다. 쉽게 비유하면 손바닥이 있고 손등이 있는데 일반인의 안목으로는 손바닥쪽만 있는 줄 알고 그 속에서 복닥거리고 살다가 떠난다는 것이다.

봄에 풀과 나무에 새잎이 돋아나고 무성했다가 가을에 낙엽으로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生滅世界'가 있고 그 나무가 수명이 다해 죽어도 끊임없이 또 풀과 나무가 생명으로 이어지게 하는 변함없는 '眞如世界'가 함께 존재하고 있다. '피조물(작용)'은 계속 변화하지만 '창조주(본체)'는 언제나 그대로이다. 그 두 세계는 따로따로가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 같이 앞뒤로 함께 있다(一心二門). 앞뒤라 하지만 사실은 눈앞에 함께 펼쳐져 있다. 똑같은 현상을 누구는 지옥으로, 누구는 천국으로 보지 않는가?

내 몸과 마음은 어떠한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온갖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지고 한다.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내몸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잠시도 쉬지 않고 '작동'하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누가 하는가? 보이지 않고 잡을 수는 없지만 분명히 있어서 온갖 작용이 거기로부터 일어나고 있다. 온갖 작용이 일어나는 그 자리, 내가 살아 생각을 일으키고 움직이게 하는 그 주인공,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있었고 내 떠난 이후에도 계속 있을 그 영원의 자리. 이름붙일 수도 없어 '그 자리', 當處라 했고 本體라고도 했다. 如來라고도 하지만 그냥 이름일 뿐이다. 그런 '眼目'을 깨달음으로 물려 주신 것이다.

뉴저지에 사는 고교친구가 '코로나방콕'의 여유시간 덕분에 '聖經' 구약46/신약27권을 각 1페이지로 요약하여 전자책으로 만들었다 하여 이멜로 받았다. 집필시기, 연대, 배경, 기억할 구절 등을 넣어 참 쉽게 정리를 잘했다. '佛經'이 무척 많지만 수십년 신행활동을 했어도 글과 말로 '이것이 佛法이다'라고 성경처럼 요약할게 별로 없다. '佛法'은 글이나 말로 전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언어도단'이라고 했다. '말이 끊어진 자리'이기도 하다.

생각이 끊어진 자리에서 만나게 되는 '平常心' - 생활 속에서 언뜬언뜻 구름사이로 파란 하늘을 본듯 가끔 보기는 했어도 금방 덮히고 마는 그 '평상심' = 平常心是道 = 煩惱卽菩提

 

입구의 일주문 자리에 '금강문, 사천왕문' 공사가 마무리 중이다.

 법당 앞 곳곳의 풀 나무, 어느 것 하나 佛性의 나툼 아닌게 어디 있을까? '水流花開' 야생화들판이다.

영산홍 붉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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