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음력 11월29일

''福눈이 내리네.
제사에 동참못해서 서운하네.''

이번 모친제사에는 정부지침대로 5인이내, 직계가족만 제사에 참례할 수 있다는 지침에 따라 누군가가 위반신고를 하면 30여만원인가 벌금을 물어야 된다고 하도 강조하는 바람에 카톡방에 형제자매 모두 오지 마시라고 공지했다. 모두 궁금하여 미리 전화로 안부를 전해오셨다. 수십년동안 한번도 빠지지 않으신 자형누님께서 아마 제일 허전해 하실 듯싶다. 남동생은 목이 메어 눈물을 글썽거리는 것같고 매제도 설차례에는 모두 함께 만나자고 전화를 해왔다.

매번 열댓명이 모이는 가족모임을 겸하는 제사이고 명절 차례모임이었는데 이번에는 우리집에 사는 3명만 참례한 참 희한한 세상일을 경험하게 해 주는구나. 작은아들이 사는 서울 건물에 어제 확진자 발생으로 작은아들도 오지 말라고 했으니 그냥 우리 3명만 마스크를 쓰고 참례한 것이다.

어차피 제사모시는 일이 時空을 넘어 강신례를 하고 참신례를 하는 등의 절차를 예법에 따라 행하는 일이니 굳이 사람들이 제물을 차리고 한자리에 모여 절을 하는 것이나 각자가 있는 자리에서 정성을 들이거나 같은 時空속에 있을 터이기는 할 것이다. 그래도 편의상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이런 기회에 자녀 손주들간에 친분도 다지면서 기존의 문화적 전통이 자연스럽게 다음세대로 이어지게 하는 역할이 되고 있으니 형식에 못지 않게 내면적 의미가 크다고 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게 '하늘'이다. 하늘은 모든 것을 사랑으로 품고 있다. 그 하늘은 어디에 있나? 가장 가까이에 있다. 부모님이 바로 하늘이다. 조상님들이 곧 하늘이다. 공경하고 겸손해야 할 곳이다. 형상으로는 부모님의 모습이지만 거기가 하늘로 통하는 통로가 된다. 하늘은 모든 것을 다 품고 있어 세상 어느 구석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다 알고 다 보고 계시다.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에도, 나중에도 하늘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늘'이다. '하~늘'

飮福

예전 시골에 살때에는 제사모신 다음날 새벽 일찍 제사음식으로 작은 상을 차려 어머니가 머리에 이고 이웃 어른 집에 돌리셨다. 이웃사람들이 누구네 집 제사가 언제인지 다 알고 새벽에 제사음식이 올 것을 은근히 기다리고 있다. 그집 음식솜씨도 맛도 서로 다 안다. 보리밥만 먹던 그 시절에 하얀 쌀밥 한그릇이 오는게 그렇게 귀할 수 없었고 부침개 한조각이라도 먹어볼 기회가 되었으니 그야말로 먹는 것을 통해 복을 나누는 '飮福'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제사를 모시고 나면 음식을 조금씩 떼어 그릇에 담아 바깥으로 나가 미물들이 와서 먹을 수 있게 하고 있다. 들에서 일하다가 점심이나 새찬을 할 때에도 먹기전에 꼭 먼저 주변에 음식을 조금 떼어 던져주고 했다. 자연과 여러 생명들과 다 함께 공존하는 선조들의 좋은 전통이라 할 것이다.

이튿날 아침에 제사음식을 바리바리 챙겨 서울 누님네 댁으로 점심식사를 함께 하시자고 나섰다. 낮기온이 많이 올라가 전날 내린 눈이 많이 녹아내린다. 그새 자형이 걸어서 추어탕집에 가서 뜨끈한 국물을 포장해서 들고 오셨다. 예전 어머니의 생전 이야기를 나누면서 올해 88세 米壽를 맞으신 자형내외분과 점심 '飮福'을 함께 했다.

코로나 사회적거리두기 2.5단계 5인이상 집합금지명령 상황에서의 역사에 남을 제사모시기 풍속도이다.

오후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금방 펑펑 내린다. 다행히 지난주 처럼 기온이 덜 내려가 내린 눈이 얼어붙지 않는다.

제사모시기

 

바깥에는 소복이 눈이 쌓여 있다.
瑞雪이고 포근한 福눈이다.

 <한글축문>


歲次 庚子 十一月 壬辰朔 二十九日 庚申, 孝子 ㅇㅇ와 자녀 손주가 어머님의 기일에 함께 모였습니다.
 
양력으로 庚子年에는 음력 윤달이 있어 이번에는 제사를 양력 辛丑年 새해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庚子年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 역병으로 인해 한해 내내 사람들 간에 거리두기로 접촉이 어려워져 개인 사생활이나 자영업, 중소기업을 비롯하여 사회 전체의 활동이 줄어들고 국내외 여행이 제한되는 등 여러 분야에서 많은 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난 연말부터 연시 사이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적용됨으로서 직계가족 외 5인 이상의 집합금지 명령까지 하달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러 오늘의 제사에도 역사 이래 처음으로 직계가족만 참가하여 조촐하게 제사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지난 한해사이의 여러 집안 일들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지난해 사이에 형제간 가족들 사이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집안의 장남으로 평생 역할을 하시던 ㅇㅇ 형님이 지병으로 먼저 부모님 곁으로 떠나셔서 고향 선산 부모님묘소 아래로 모셨습니다. 형제자매의 한 자리가 훌쩍 비어버린 허전함이 매우 큽니다. 
다행히도 누님내외분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이 언제나 건강하고 밝게 예나 지금이나 부모님이 일찍 빈자리 역할을 하고 계심에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ㅇㅇ 동생은 직장 퇴직 이후에도 계속 일자리가 이어지며 용케도 오늘 새 일자리가 시작되기도 하여 자녀들과 함께 화목하게 잘 지내고 있고
ㅇㅇ 여동생은 어릴적부터 몸이 약하다고 늘 걱정했는데 신랑 잘 만나고 자녀 잘 키우면서 나이들수록 체력이 좋아져 작년에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원정에 이어 국내 100대 명산 완등을 하고 올해는 200대 명산에 도전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희 집 사정은 변함없이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손녀 ㅇㅇ는 방콕에서 ㅇ년차 공부 중이고 두 아들은 직장에 잘 다니고 있으며 7년 전에 시작한 작은 사업도 이 시대의 불황상황을 잘 이겨내면서 운영해 나가고 있습니다. 올해는 ㅇㅇ가 혼처를 만나 결혼을 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무엇보다도 모두가 어렵다고 하는 이 어려운 시기에 자녀 형제자매와 손주, 증손 등 가족들 어느 누구도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각자의 소임을 다할 수 있게 되는 만큼 고마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조상님과 하늘의 도우심으로 생각하며 감사드립니다.

하늘이 사람에게 행복하라 행복하지 말라 한 적이 없는데 사람들이 스스로 각자의 인연에 따라 자기의 길을 가고 있는게 세상입니다. 순풍을 만날 때도 있지만 맞바람을 만나는 때도 있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사람들은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고 원망하는 마음을 내기도 하지만 하늘은 누구에게나 차별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신축년, 흰 소의 해를 맞아 마음의 깨달음을 실천하는 해가 될 것을 다짐합니다.
 
오늘 기일을 맞아 이 자리에 참석했거나 사정상 함께하지 못한 자녀 손주들까지 일일이 기억하시어 그들의 손길 발길을 안전하게 보살피시고 또한 몸과 말과 뜻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을 해 나가도록 큰 용기와 힘을 보태 주시기를 앙망하옵니다.
 
조촐하지만 정갈한 음식을 정성으로 올리오니 흠향하시오소서.
 
경자년 십일월 이십구일에
자녀 손주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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