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6 (화) 10시
3번째 화요일은 전씨웰빙산행 날이다. 월1회로 이제 40차가 된다. 명품답사로 소문이 나기 시작하여 참여인원이 늘어난다.

아직 단풍이 덜들기는 해도 다음달 모임때가 되면 도 떨어지게 될 것같아 이번 답사를 단풍이 좋은 창덕궁후원으로 했다. 나이들어서 모르는 것 없이 다 아는 듯하지만 모르는게 더 많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600년 도읍지 서울과 수도권지역에는 가볼만한 곳이 수도 없이 많다. 눈으로 스쳐 지나가면서 보기는 했어도 그 의미를 살펴볼 기회는 별로 없는게 현실이다.

창덕궁
 
조선이 개국되면서 고려조 수도였던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했고 경복궁이 건립되었다. 3대 태종이 등극하면서 법궁이었던 경복궁에 이어 아궁으로 창덕궁이 건립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왕들이 창덕궁을 주로 사용하여 법궁의 역할을 했다. 임진왜란 때에 경복궁과 창덕궁이 모두 소실되었고 이후 광해군 때에 창덕궁을 먼저 복원하여 270여년간 법궁으로 사용했고 경복궁은 고종 때에 이르러 비로소 재건되었다.       
 
서울에는 조선의 궁궐 5개(창덕궁,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경희궁)가 남아 있다. 그 가운데 특별 유료 관람으로 창덕궁의 후원(비원)을 문화해설사의 인솔 아래 1시간 30분 동안 조선 궁궐 정원의 정수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일본의 정원은 나무 한그루도 그대로 두지 않고 모양을 내고 자연을 축소하여 온갖 기교를 담은 인공미의 극치를 이룬다. 이에 비해 한국의 정원은 스케일이 크다. '차경'을 도입했다. 대청마루에 앉아 그리 높지 않은 담장너머로 건너편 경치를 본다. 크고 자연스런 정원이다. 정자에 앉아 기둥과 지붕아래로 보이는 공간의 시야가 액자처럼 보인다. 다 '借景'이다.

後苑은 예전에 '秘苑'으로 불리웠고 창덕궁 깊숙한 뒤편에 있는 뒷동산이다.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은 지역이었던가 보다. 조선시대나 그 이전에도 일반 백성들이야 살림살이는 어려웠어도 여기저기 왕래하면서 자유롭게 살았지만 궁중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바깥세상의 자유로움이 얼마나 부러웠을까? 서로 상대방쪽을 부러워하며 사는게 예나 지금이나 사람사는 모습인가 보다. 궁궐밖으로 나가기 어려웠을테니 그 안에 여러가지 갖추어 놓을 수밖에 없었을 게다. 작은 개울에 폭포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자그마한 논을 만들어 벼를 심고 연못을 조성하기도 하고 산책로도 만들었을 것이다.

지금시대에 우리가 그리 고마운 줄 모르고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이 자유가 어느시대 어떤이들에게는 얼마나 가지고 싶은 큰 소망이었을까 상상해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안국역3출구 나서기 전에

원서공원을 지나 창덕궁으로 이동

창덕궁입구 돈화문

한복이 잘 어울린다. 외국인도

후원입구

후원에서 처음만나는 절경 - 부용정

불로문을 지나 예쁜 정자로

형님과 3형제 함께

기둥이 6개로 부채꼴 정자인 관람정

2층 정자

한국정원에 대하여 설명

고갯마루에 쉬어가는 정자

옥류천

마악 추수를 끝냈다

양반집 장안문 안을 들어서니 비품공사중

역사해설

작은 고개를 넘어

750년 수령의 향나무 - 고려시대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가 보다

안국동 맛집에서 점심식사

새로 나온 종친회원들이 인사도 하고

<창덕궁후원 관람예약>
http://www.cdg.go.kr/cms_for_cdg/show.jsp?show_no=54✓_no=18&c_relation=35&c_relation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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