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목) 오후 여의도포럼 답사

색깔이 있고 소리까지 있다. 고운 단풍의 色에 취해 소리는 관심밖이었는데 비오는 날은 두가지가 다 있다. 우산을 두들기는 빗소리, 나뭇잎과 숲에 떨어지는 빗소리, 추적추적 발자국 소리까지 여러 소리가 더해진다. 우주가 내는 자연의 소리다.

여름처럼 종일 내린 비에 단풍은 안간 힘을 쓰며 흔들리는 가느다란 가지를 붙들고 있다. 그러다가 한줄기 바람에 미련없이 우수수 손을 놓는다. 마지막이 바쁜 나무가 있고 빗속에서도 아직 한동안은 여유로운 나무도 있다. 아예 가을단풍에 상관없는 사철나무도 있다. 그래서 자연은 있는 그대로 조화롭다. 선두를 다투지 않고 남의 영역을 탐내지도 않는다.

그렇게 수십, 수백년 세월 생사를 거듭하며 제자리를 지킨다. '나'가 없으니 편안하다. 바람불면 흔들리고 눈비오면 그냥 맞는다. 추위가 오면 몸을 움추리고 그러다가 봄의 시절인연이 오면 싹을 튀우고 꽃을 피운다. 오래 살아 너무 나이가 들면 태풍이나 바람에 넘어진다. 그 자리를 또다른 나무에게 아무 조건없이 내준다. 나무에는 '나'가 없다. 그래서 '나無'라 하나 보다. '나'가 너무나 강한 우리가 배워야 할 지혜다.

연못에 떨어지는 방울방울 빗방울

老선사가 눈이 내리는 것을 보며 제자들에게 말했다.
''송이송이 눈송이 딴곳에 떨어지지 않네.''
눈이 나무에, 바위에, 냇물에, 땅에, 모자위에 다 다른 곳에 떨어지는데 어찌 딴곳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시느냐고 제자들이 물었다.
''딴 곳이 아니면 어디에 떨어집니까?''
제자들은 따로따로 분별된 안목으로 세상을 보았고 스승은 세상이 서로 나눠질 수 없이 그물망처럼 연결된 통으로 하나인 본체의 안목으로 본 것이다. 色과 空, 生滅과 眞如, 상대와 절대, 작용과 본체, 客과 主, 어느 안목으로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내 삶이 전혀 달라진다. 세상을 바꾸지 않고도 내가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도리이다.

''방울방울 빗방울이 딴곳에 떨어지지 않네''

단풍이 더 아름답고 푸르름은 덜 아름다운가? 너무 당연한 것에 고마운줄 모르고 살기 때문인가 싶다. 항상 있으면서 그럴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다 변해간다. 여름내 푸른 나무와 숲, 나의 젊은 시절, 지나고 보니 그때가 좋았던가 보다. 가을 단풍은 곧 떨어질 것이니 더 예뻐보인다.  다 떨구고 나면 본체가 드러난다. 주렁주렁 달고 살던 직책과 명성, 찬바람 불어와야 그 기상이 바르게 드러난다.

세상일로 보면 10년 선배, 15년 선배들의 활동하는 모습이 우리의 미래상이다. 그렇게 다가올 앞날을 가늠해 보기도 한다.

녹음에서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이 즈음 지하철역 안전문 유리창에 새겨져 있는 이런 시가 실감나게 느껴진다.

[가을 덕수궁]

벚나무와 느티나무가 나란히 서서
서로가 서로에게 물들이다가
땅에 내려와 몸을 포개고 있다

은행나무와 모과나무 잎도 그렇고
병꽃나무와 생강나무 잎도 그렇게
단풍으로 달아오른 몸을 포개고 있다

허리가 없고 배가 나온 초로의 남녀가
가을나무 아래 팔짱을 끼고 간다
물든 마음을 서로 포개고 있을 것이다

후원 입구에 들어서 문화해설사의 설명 시작

참 한가로운 골목길 같은 입구.
저 모퉁이를 돌면 어떤 풍경이 있을까?

부용정 연못에서

이런 경치가 어디에 또 있을까?

문화해설사가 말한다. 이 연못이 노란 은행잎 카펫으로 덮히는 날이 1년중 며칠 안되는데 오늘이 그 날이라고.

옥류천 폭포

750년된 이 향나무는 아마 고려시대 때부터 있었나 보다. 비바람과 태풍에 넘어지고 가지가 찟기기도 하며 살고 있다.

출구 근방의 이 회나무(정승나무)도 온갖 풍상을 겪었다

안국동 맛집에서 저녁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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