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금) 14:30, 동대입구역 5출구 장충체육관입구에서 동기생 여의도포럼 5명이 만나 한양도성 전문해설사의 설명과 안내로 남산구간 답사 후 장충동족발 맛집에서 저녁식사

남산구간 한양도성은 이전에 수차례 답사한 적이 있지만 이날의 답사코스와 내용은 다르고 또 새롭다. 이전에 안내 설명을 해준 한양도성, 서울 옛길 전문 해설사에게 부탁하여 새로운 코스를 요청했는데 우리 수준에 딱 맞는 코스가 되었다.

한양도성 남산구간은 장충체육관에서 남산 정상을 거쳐 남대문에 이르는 구간으로 전체 18.6km 중 5.4km로서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있고 축조당시와 이후 보완, 복원의 역사과정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답사구간이다.

동대입구역 장충체육관 입구에서 만나 장충체육관 건설에 관련된 필리핀연계 루머가 사실이 아님을 바로잡고 신라호텔에 대하여 설명을 들었다. 일제시대때 이또 히로부미(이등박문)을 기리기 위한 박문사가 건립되었고 그 정문으로 경희궁의 흥화문을 이축했다. 해방후 1957년에 박문사를 헐고 그 자리에 영빈관을 신축했으며 1979년 삼성이 인수, 신라호텔을 신축했다. 흥화문은 1988년에 경희궁의 제자리로 이축되었다.
이전 답사시에는 성벽 바깥을 따라 올라가면서 설명을 했는데 경노코스로 내려오면서 설명하는 쉬운 코스로 조정되었다. 장충체육관입구에서 남산정상으로 가는 셔틀 전기버스를 타고 정상 정류장에서 하차하여 북쪽으로 보이는 서울시내 전망을 설명한 후에 동남쪽 숲길로 들어서서 출발지점까지 내려오면서 한양도성과 남동방향 주변경관을 설명한다. 누구든지 쉽게 갈 수 있는 편안하고 유익한 코스이다.

조선건국시 1395년에 경복궁을 한겨울철 사이에 먼저 짓고 이듬해인 1396년에 곧바로 한양도성을 축조했다. 농사철 공한기인 겨울 음력 1, 2월 추위속에 49일간, 그리고 한여름 8,9월 추수기 이전에 49일간 전국에서 19만여명이 동원되어 축조했다. 총 길이 59,500尺(18.6km)를 600尺씩 97구간으로 구분하여 군현별 책임제로 쌓았다. 아마 지금의 1개 郡에 100尺(30m)정도씩 책임을 맡았던 것같다. 구간마다 책임지역과 날자를 새긴 刻字城石이 있어 지금으로 보면 실명제로 책임지도록 했다.

세계 여러곳을 돌아보면서 우리나라는 반만년 역사가 이어져 오는데도 불구하고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할 대규모의 화려한 시설물들이 왜 없었을까 의문을 갖게 던다. 짐작해보건데 우리의 왕이나 지도자는 다른 나라와는 전혀 달랐다고 보인다. 왜 그런가 하면 반만년 전 고조선 건국시의 딘군은 백성을 대표하여 천재를 올리는 제사장으로 깨어있는 분이 국가의 지도자였고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이념으로 하여 백성이 행복하고 잘 살게 하는 것이 과제였다. 그런 전통은 삼국시대, 고려, 조선으로 계속 이어져 왔다.

최근에 하바드대 역사학자 슐츠교수가 이런 강의를 했다고 한다. "일본이 강압적인 군인들에 의해 통치되는 동안 한국은 현대국가와 마찬가지로 교육받은 엘리뜨 관료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
과거제도로 최고의 수재들이 발탁되어 요직에서 활동했다. 그러니 제국주의처럼 독재자가 있을 수 없었고 국왕도 민심을 살피고 백성의 마음을 얻는게 우선이었으니 국가가 부담스럽거나 백성의 생업에 지장을 주는 정책이나 사업은 당연히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만약 그런 무리한 결심을 하려하면 신하들이 곧바로 "전하, 아니되옵니다. 통촉하시옵소서!' 했을 것이고 그래도 안되면 성균관 유생들이 떼로 몰려와 무릎을 꿇고 농성까지 했을 것이다. 왕의 말한마디, 행동 하나까지 기록하는 사관이 항시 따라 다녔고 그 기록을 왕이 절대로 볼 수 없게 철저히 관리했다. 조선 개국시에 정도전은 나라의 운영방식을 왕권은 상징적으로 두고 내각책임제로 하는 것으로 구상했으나 태종의 힘에 밀려 성사되지 못하고 개국공신이면서도 척결되어 조선말에 가서야 겨우 복권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이나, 아시아 여러 제국의 독재자같은 지도자가 나올 수 없는 분위기가 아니었던가 싶다.

타워호텔(현재 반얀트리호텔)이 들어서면서 헐어낸 성벽돌은 그대로 자유총연맹 축대로 이설되어 있다.
임진왜란 전사자 추모를 위해 건립된 장충단이 일제시대때에 공원화되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고 청계천에 있던 수표교가 이곳으로 이전되어 있는데 언젠가는 제자리를 찾아가야 하는 것도 과제이다.

한양도성을 돌아보면서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여러 각도에서 조망해 보고 아울러 미래 인류의 번영과 행복을 이끌어 나갈 주역으로 대한민국의 역할이 이어져 가는 모습을 상정해 본다.

신라호텔 영빈관 정문

남산 정상으로 가는 전기버스로

정상 버스정류장에서 북쪽 전망

동남쪽 바깥으로 내려와
축조, 보수 시대에 따라 돌이 다르다.

각자성석

97구간 중에 56번 구간 표시

"남산위에 저 소나무..."

젊은이는 자전거로 올라가고

용산구/ 중구 경계

자유총연맹 건물의 뛰어난 설계

타워호텔 구간 성벽돌 이설

건국대통령 이승만박사 동상 참배

여기 성돌도

청계천에 있던 수표교

장충체육관 앞을 지나

장충동족발 맛집에서 저녁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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