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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수) 14:00 ~ 17:30

올해로 4년째의 육사총동창회 연탄배달 봉사활동이다. 동기회 총무를 맡고 있던 첫해에 참여하고 보니 1년에 한번인 이런 기회에 어찌 참여하지 않을 수 있겠나 싶어 해마다 가게 된다.

해가 거듭될수록 참여인원이 조금씩은 많아지고 여자동창들과 가족들도 참여하고 있다. 평일이라 여건이 안되지만 자녀나 손주들까지 참여시키고 싶은 심정이다. 또 놀라운 것은 연세 80이 넘은 10여년 선배님들의 대거 참여이다. 제몸 가누기만 해도 성공적이라는 연세에 20여년 후배들과 똑같이 지게를 지거나 무거운 연탄을 들고 비탈길을 오르신다. 후배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소년처럼 즐거워 하신다.

'봉사'라고 이름붙은 활동이지만 현장에 참여해보면 오히려 내가 봉사받는 기분이다. 그분들로 인해 나의 처지가 미안스러울 정도로 고맙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이런 활동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환희심이 절로 일어난다. 1년에 한번 찾아가 20가구에 연탄 각 200장과 쌀 한포대 정도 지원해드리며 생색내는 것같아 미안스런 마음이 앞서지만 그 작은 것에 고맙다는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하며 뭔가 대접해드리지 못해 미안해 하시는 그 표정에서 내 마음이 평온해지는 축복을 받는 느낌이다. 삶의 모습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그 순수한 마음은 잘나고 못나고가 없는 지극한 '평등'이구나 새삼 깨닫게 된다. 작용은 다 각각이지만 본바탕은 다 하나인데 어디 높고 낮음이 있겠는가?

말이 바뀌면 의식이 바뀌고 행동, 습관, 성품이 바뀌어 '팔자'와 인생이 바뀐다고 했다. 어느 것이 먼저이고 나중이고 하는 순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 삶을 개척하는 주체는 환경여건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사실임을 누구나 안다. 행복도 행복하지 않음도 나의 선택이지 누가 주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각자 제 스스로 짓고 지은 만큼 찾아가는 것이다. 복이 없으면 지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세상의 원리는 '유유상종'과 끌어당김의 법칙이 있어서 무한한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이런 기회 또한 완전한 '평등'이다.

어느해 여름날, 장마비가 몹시 쏟아지는 날에 비를 흠뻑 맞으며 들판을 달려보고픈 마음이 일어나 비오는 날을 잡아 강원도 어느 산골로 갔다. 흙길이 시작되는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고 비를 흠뻑 맞으며 그렇게 흙길을 달렸다. 길에 고인 물웅덩이를 피하지도 않고 첨벙이며 달렸다. 비와 하나가 되고 흙길과 주변 자연과 분리되지 않은 나를 느껴보고 싶었던 것이다. 모자에 떨어져 얼굴로 흘러내리는 빗물이 몸이 되고 젖은 신발도 불편하지 않아 마음껏 소리질러도 보았다. 우주가 응답해 왔다. 안밖이 없는 하나가 달리고 있었다.

한두방울 비는 피하려 하지만 흠뻑 젖고나면 비가 두렵지 않아진다. 유격훈련 시작때 흙에 뒹굴어 옷이 젖게 해야 몸을 사리지 않게 되는 것과도 비슷하다. 일에 푹 젖으면 일이 두렵지 않고 삶에 푹 젖으면 삶이 두렵지 않다고 했다. 나는 매순간 나를 던져 '전력투구'하면서 살고 있나 자문해 볼 일이다.

50여명의 봉사단이 4,000장의 연탄을 이골목 저골목 비탈을 오르내리며 녹슨 철대문을 지나거나 집사이의 좁은 처마밑 공간에 차곡차곡 200장씩 20집에 지게로 또는 두장씩 가슴에 안고, 어떤 곳으로는 릴레이식으로 전달하다 보니 북한산 너머로 해가 지고 누런색 가로등이 빛을 내기 시작한다. 아직 일은 마무리가 덜 되었는데 갑자기 흰눈이 내린다. 함박눈이다. 우리가 땀흘린 결실로 '瑞雪'이 내리는 것같아 모두의 얼굴이 더욱 환해진다.

이런 좋은 삶의 실습장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은 지금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을까 상상해 본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내맘속에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살펴보게 된다. 봉사활동에 동참해보자고 수년동안 공지해 봐도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선후배, 동기생들로 인해 서운한 마음, 원망스런 마음이 일어나지 않고 평상심이 유지되고 있나 하는 것이다.
'만약 상처받는 마음이 일어난다면 그건 본심이 아닌거야. 꿈을 실체로 착각하는 것과 같은거야.'

인도에서는 거지가 돈을 구걸하는게 아니라 '당신의 돈을 받아주는 나한테 당신이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고 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경제적으로는 낙후된 그들의 정신세계가 우리보다 더 심오하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오늘 우리가 백사마을 봉사에서 받은 각자의 선물은 개인의 것이기도 하고 사회의 것이기도 하다. 감사와 화합을 이루는 작은 기여라도 되었을테니까...

1960년대 풍경 그대로이다

마을의 벽화

날은 저문데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가족들과 함께 참여한 어느 후배기수

화랑회관에서 대화의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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