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의 마지막 주말인 12월30일 토요일 오후에 광화문 북광장에서 수천의 태극기와 애국국민들이 모인 태극기문화제가 열렸다.

좌파단체들의 전용공간이라 할만큼 지난 한해 촛불집회로 몸살을 앓았던 광화문광장이다. 한양의 심장부이며 한민족의 정신과 기운을 말살하기 위해 日帝가 갖은 수단으로 秘方을 시도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지난해 이전까지만 해도 무척 평화로운 공간이었다. 자유를 잃기 전에는 그 고마움을 절감하지 못한다는 말처럼 그 공간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 공간을 보다 아름답게 가꾸고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방식이 적용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 여유롭고 한가한 분위기였는데 어느땐가 부터 욕설과 비방의 함성이 난무하는 투쟁의 장소로 돌변했다. 정상인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이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그래서 한양의 얼굴 이미지가 달라져버린 안타까움이 있었다.

1945년 해방을 맞은 사진과 1948년 자유대한민국 건국행사 사진 배경에 대형 태극기가 걸려 있었고 1950년 9월28일에는 공산치하에 빼앗겼던 서울에 태극기가 다시 게양되면서 자유민주주의가 회복되는 감격을 누린 그 공간이다.

오늘 오후, 그 자리에 수천의 태극기가 휘날리는 또 하나의 감격을 맛보았다. 아직은 일제시대보다는 덜한것 같고 또 6.25 공산치하의 3개월보다야 태극기를 흔들 여건이 외형상으로는 덜 다급한 것같아 보이지만 어쩌면 내면적으로는 한민족의 정통성과 맥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 또 세계속의 한민족 웅비가 날개를 펼치려는 싯점에서 추락하고 마는게 아닌가 더 걱정스러운 상황이라 하겠다. 누가 우리를 도운다고 우리의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도 않고 결국은 우리 국민 스스로의 자각과 선택이 역사의 흐름을 좌우하게 될 것이니 어느 때보다 심각한 시기로 보인다.

군 예비역 모든 단체들과 각 고교와 대학연합, 그리고 일반시민들이 주축을 이루었고 무대에 오른 연사가 주로 명문 대학생이거나 젊은 탈북대학생 등 젊은 층이었다. 중간중간 등장한 가수도 더 젊어 졌다. 참 특이한 현상은 이들 연사나 가수들의 명단이 사전에 공개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무대에 오른 젊은 연사도 굳이 실명 언급을 꺼려해 보인다. 바른 말을 숨어서 해야할 지경이고 선동하는 거짓은 공개적으로 큰소리치는 어찌 이런 사회가 되었나 싶어 안타깝다.

연사들이 언급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다 심각한 사회적 국가적 문제인데도 현장에서의 함성으로 끝날 뿐 이를 국민에게 올바르게 보도하여 알리거나 시정할 수단이 없다. 다른 여러 민원성으로 제기되는 사안들보다 오히려 아무런 후속조치가 없는 허공의 메아리에 불과한 느낌이라 허탈한 마음이 든다.

어제 용산 미군부대에 들어갈 일이 있었는데 연말이면 매일 축제같은 분위기로 보냈던 예전 근무때와는 전혀 다른 한산함과 적막감까지 느껴졌었다. 오늘의 광화문광장 집회와는 전혀 별개일 것같지만 그건 무슨 분위기일까 그 느낌을 이리저리 되새겨도 보았다. 그땐 정월대보름에 부럼을 한바구니씩 대보름에 대한 풍습을 영어로 적어 미군 장군참모 이상의 사무실로 보내서 우리의 오랜 역사문화를 자랑하기도 했고 이임하는 주요 직위자에게 국전작가의 글로 한글이름을 지어 붓글씨로 적고 수묵화를 넣은 자그마한 액자를 선물하기도 했다. 한미동맹과 신뢰관계는 그런 작은 활동으로도 굳건해지며 튼튼한 안보유지에 기여되었다고 회고된다.

광화문 북광장 집회 후 안국동 보신각 미도파 소공로를 거치며 1시간반 정도 행진을 하며 이런저런 구호를 외쳤다. 일반 국민들은 걱정이 없어서일까? 특히 젊은이들은 자유를 잃은 경험이 없어 그 있을때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해서 무관심해 보이는 걸까? 불난 집 안에서 불이 난줄도 모르고 놀이에 푹빠져 있는 아이들을 바깥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 더 관심이 가는 장난감을 보여주며 火宅에서 나오게 하는 부처님의 지혜가 떠오른다.

하늘이시여, 이 민족을 궁휼히 여기사 火宅에서 속히 벗어나오게 하소서!

모처럼만에 많이 나온 동지들

40여년만에 만나는 반가운 전우도 있다

고교 애국동지들도 많이 참석했다

조계사 앞을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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