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1월25일, 추운 겨울.
고교 졸업식을 하루 앞두고 시내보다 훨씬 추운 서울의 동북, 태릉, 육사에 가입교했다. 국가 간성이 되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어서이거나 꼭 군인의 길을 걷겠다는 각오가 있었어도 아니었고 합격했으니 무턱대고 갔던 것같다.
특차로 일찍이 입학시험이 있었고 이왕 시험볼 바에야 합격해야겠다는 오기로 한달여간 집중적으로 필기시험 준비를 하여 합격하고 나니 체력검정 정도야 평소 기계체조로 다져진 바탕이 있었으니 쉽게 통과되어 우리 고교동기 5명이 합격했고 그 중 4명이 우리 6반이었다. 다음해에 재수해서 3명이 더 들어왔다.
나중에 2명이 장군으로 승진했다. 담임선생님 모시고 친구들에게 감사만찬을 하는 국방회관에서 정복입은 두 친구가 담임선생님께 큰절을 올렸고 선생님은 금 타이핀을 넥타이에 꽂아주셨다. 21년 지난 역사속의 일이지만 흐뭇하고 기운이 넘치던 멋진 장면으로 여러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매번 명절차례 모시고 고향가는 일이 당연한 일로 되고 있어 연간 너댓차례는 고향집에 가게 된다. 아랫채 사랑방에 있는 책장을 열어볼 일이 없었는데 손녀가 궁금하다고 열어보자 한 덕분에 51년전의 육사입교 '기초군사훈련' 공책을 보게 되었다. 시간의 흐름이 금방 그 시절 내무반으로 되돌려 진다. 직속상관 관등성명, 군인의 길, 사관생도신조, 도덕율, 도수체조 순서 등 참 꼼꼼히도 기록되어 있다.
시계와 달력에서 보는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간다. 음력으로 섣달이 가고 정월이 되니 정유년이 가고 무술년이 온다. 어제와 별로 다르지 않은 오늘인데 하루 사이에 나이를 한살 더 먹었다. 매일 매일, 순간 순간이 다 그와 같았는데 합해서 보니 70년이 훌쩍 지난다.
공자께서 60을 '耳順'이라 하고 70을 '종심소욕불유구 從心所欲不踰矩'라 부드럽게 표현했지만 그리 잘 되지 않으니 그렇게 되게 하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바로 우리 앞세대였던 안중근의사나 윤봉길의사 같은 분은 20대에 벌써 '종심불구'의 경지 이상에 이르러셨고 윤동주시인이나 소설가 이효석 등도 20대에 그리하셨다. 영웅호걸이라 불리는 알렉산더대왕이나 진시황, 광개토대왕도 20대에 이미 천하를 호령했다. 굳이 70까지 되어야 종심불구의 경지에 이를 일도 아니었나 보다.
시간 흐름이란 물이 흘러가듯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해가 뜨고 지고 달력의 숫자, 시계의 바늘이 움직이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간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있는 것은 눈앞에 전개된 현재의 상황 밖에 없다. 그 상황의 찰라찰라가 있을 뿐이다. 있다고 하지만 물질처럼 붙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 공간의 물질에 얹혀 있나 보다. 과거나 미래가 분명히 있기는 한 것 같은데 역시 잡을 수 없는 관념에 불과하다.
이에 대한 안목을 바로 잡고 있어야 없는 것을 있다고 착각하거나 가짜를 진짜라고 집착하여 그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와지게 된다.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던 행복이 그냥 여기에 펼쳐져 있음에 눈뜨게 되고 지금 있는 그대로가 매순간 새롭고 그래서 감사한 마음이 일어나니 지금여기가 천국이요 극락이다. 세상이 나를 괴롭히거나 행복하게 해주는게 아니라 단지 내 안목 바꾸기만 했을 뿐인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원래 이랬던 거야?
이게 그거였어?
공연히 바삐 설치고 살았네''
여기 사랑방 책장에
직속상관 관등성명
대통령부터 분대장생도까지 쓰여있다.
그리고 사관생도신조와 군인의 길
육군가 가사.
오늘 해야할 일
사관생도 도덕율
1.사관생도는 진실만을 말한다.
2.사관생도의 행동은 언제나 공명정대하다.
3.사관생도의 언행은 언제나 일치한다.
4.사관생도는 부당한 이득을 취하지 않는다.
5.사관생도는 자신의 언행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국군도수체조 순서
동아전과 등 60년이 넘은 책과 공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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