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한세대를 회고해 본다.

우리 나이로 99세 되신 김형석교수는 지난 시절을 회고해 볼때 65세부터 75세까지의 기간이 가장 아름답고 좋은 시절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지금 그 시기를 맞고 보니 그 말씀에 공감이 가면서도 또다른 의문이 일어나는 건 왜일까?

대한민국에서 학문적으로 인문학, 철학분야 최고의 지성으로 안병욱교수와 함께했던 그분들이라면 어느 한 싯점이 아닌 전체 인생의 매순간을 충만하게 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런데 인문학 열강을 하시는 다른 여러 석학들의 실제 펼쳐지는 삶의 모습이 그분들의 강의와 꼭 일치되지는 않는 것같다. 말과 실천이 일치되지 않는다는 그런 의미로서가 아니다. 세상을 보고 인식하는 안목이나 내면적으로 걸림없는 자유로움, 그리고 그분들의 개인적 삶과 가정, 대인관계나 사회적 활동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하는 세간적, 출세간적 관점에서 그리 보인다. 

지식으로는 아무리 논리적으로 나열하고 설명해도 오히려 분별심만 커지는 결과가 됨으로써 개인과 세상의 문제가 해결되기 보다 새로운 문제가 자꾸 늘어나는 결과가 되고 있다. 즉, 인문학을 통해 아무리 지식과 식견을 쌓아간다 해도 이는 채우는 공부이지 비우는 공부가 되지 못한다. 문제들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하는 일인데 반대로 문제에 더 깊이 빠져들어 시시비비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결과적으로 그 심연의 늪에 깊이 빠지게 되지 않나 싶은 것이다. 고전과 인문학아카데미를 20여년동안 직접 주선하고 관리해 오신 김박사께서 지켜본 소감이다. 

일찍이 인류의 여러 성인들께서는 나이에 관계없이 완전한 해탈을 얻으셨는데 인문학을 통해서는 그런 경지가 되기 어려운가 보다. 지금 시대에도 인문학강좌가 많이 진행되고 있고 거기에 인생의 해답이 있을거라고 믿고 찾는 사람이 많아 보인다. 그런데 해답은 거기에 있는게 아니라고 하고 싶다. 

왜 그런가? 
삶에서 무수히 일어나는 문제들, 그 해답이 있기는 할까? 하나하나 일어나는 일마다 따라오는 걱정, 불만, 화, 서운함, 외로움, 답답함, 그 외에도 발생하는 수많은 과제들에 일일이 완전한 해답이 있을까? 

모든 문제는 그 문제가 풀려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성숙되어 그 문제가 문제로 보이지 않는 경지에 이르러 비로소 풀린다 할 것이다. 
''아하, 원래부터 있는 그대로의 세상인데 사람들이 문제라고 인식하면서 그것이 문제로 되어버리는구나. 그러니 문제가 아니었구나'' 하는 자각이 일어날때에야 비로소 문제로부터 자유로와 진다 하겠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어떻게든 70여년을 이렇게 살아왔으니 되돌아 볼수록 참 대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구나 다 마찬가지로 그리 순탄한 길만 살아온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어떤 재벌이나 명문가 집안의 태생이라도 남모를 어려움 없는 이가 있을까? 내용이 다를 뿐 다 있다. 아프기도 하고 사고를 당하기도 하며 자기가 추구하는 것을 다 이루지 못해 실망하고 좌절하기도 하며 인간관계에서 화나고 서운한 감정들이 고통으로 일어나는 구조속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그 모든 것을 놓고 이 세상을 떠나는 날이 온다는 두려움도 있다. 나와 나아닌 것을 나누는 상대적 안목으로 보는 세상은 괴로움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 구조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한 누구나 그렇다 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좋은 인연으로 그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게 되는 3번의 정신적 상승기회가 연결된 건 인생의 큰 행운이었다. 1992년에 팔공산 도인과의 만남, 1998년 심신수련 스승과의 만남, 그리고 2009년 초에 가진 집중수행 체험 등,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이미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런지 모르고 지내던 눈꺼풀을 한겹 벗는, 이번 生을 지나 또 어느 生을 기다려 풀 수 있을지 기약없을 그 과제의 문을 여는 인연이 주어진 것은 어쩌면 억겁의 막바지 관문일지도 모를 행운이고 감사의 기회였다고 보인다.

70년을 넘겨서도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에 이르지 못한다면 또 어느 때를 기다린단 말인가? 굳이 70까지 기다릴 것 없이 이르면 이를수록 그 삶의 생명력은 밝게 빛나게 될 것이니 이 어찌 大事가 아니겠는가? 

세상과 조상님과 이제까지 직접, 간접으로 이어졌던 모든 인연과 도움에 크게 감사드리는 큰절로 시작했다. 가까운 형제자매 자녀세대, 손주세대 등이 증인이 되어 함께 간소한 자리를 가졌다. 나로 인해 세상이 축하받을 일이 되게 하는게 이 몸에 주어진 생명력을 발현하게 하는 길이 되지 않을까 싶다. 

두두물물 세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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