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코스: 시청역에서 ~ 정동전망대 ~ 정동교회 ~ 중명전~ 고종의길~ 구 러시아공사관 ~ 점심식사
이런날 만나기도 쉽지 않다. 瑞雪이 내리는 정월대보름 날이다. 길이 미끄러워 연세든 분들이 불편해할까 싶었는데 오히려 어린이처럼 좋아하신다.
정겨운 사람 만나서 반갑고 걷기를 통해 건강도모, 그리고 역사문화 공부로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역사가 그리 관심꺼리는 아닐지라도 TV연속극 드라마로 많이 거론되고 있어 마치 그게 진실인양 인식하는 경향이지만 역사드라마에서는 작가가 시청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80%정도는 실제가 아닌 내용을 묘사하는 것으로 보는게 보편적이다.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며 선조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일은 이 시대의 상황과 지금의 내 삶을 반추해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조선이 개국되면서 한양으로 천도했는데 2대 정종때에 여러 여건이 불편하여 잠시 개경으로 되돌아 갔다가 태종때에 완전히 천도했다. 定都 600년이 넘었다. 태조 이성계의 첫째부인은 일찍 별세하여 그 묘가 개성에 있다. 이성계를 도와 조선건국에 크게 공헌한 후처 강씨부인이 조선의 첫 왕후가 되었고 한양천도 이후에 별세하여 그 묘를 가까운 곳에 쓰고 貞陵이라 했다. 이방원이 집권하여 태종이 된 이후 정릉을 외곽으로 이전하게 하고 그 병풍석들을 청계천 광통교의 부재로 쓰게 했다고 한다. 정릉은 지금의 성북구 지역으로 이전되었고 옛 정릉이 있었던 지역을 貞洞이라 부르며 옛 정릉위치는 구 러시아공사관 부근이나 영국대사관 부근이 아니었을까 추정된다고 한다.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이 성군으로 추앙받고 있는 것은 다 부왕인 태종 덕분이었다고 한다. '악역'을 태종이 다 해주면서 울타리가 되어준 덕분이라는 것이다. 선대 왕이 서거한 후에 다음 왕이 즉위하는게 관례인데 태종은 일찍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그런데 두가지 권한은 자기가 행사했다. 하나는 국방외교이고 다른 하나는 인사권이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인사가 만사라고 했듯이 부왕이 인사권을 행사해 주었으니 세종은 외치와 국내정쟁에 휘말리지 않고 오로지 국정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말 역사와 주로 연계가 있는 정동지역을 돌아보면서 여러 역사적 교훈을 되새겨 본다.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문을 닫은 대원군의 정세판단은 무엇이었을까? 오늘도 외부세계로부터 폐쇄된 상태로 지내고 있는 북한의 실정이 비슷하지 않은가 싶다. 핵무기로 그 공백을 메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그리 길게 계속 그리할 수는 없음을 그들은 모르고 있을까?
시청역2출 지하에서 만나 출발
함께 장단을 맞추며 사설을 읊었다.
''서울로 지치달아
삼각산 일체로
아주 주르르 흩어져
금강산이 되었네
금강산 줄기받아
아주 주르르 흩어져
계룡산이 되었네
지리산 ...
한라산 ...
남산에 줄기받아
아주 주르르 흩어져
이리에 당산이 되었네
당산에 줄기받아
이집터가 되었구나''
그리고 성주풀이가 또 이어진다.
''...
천년성주 만년성주 자손만대 내려온성주
초가성주 와가성주 성주근본이 어디레요
경상도 안동땅에 제비원이 본이로다
제비원도 본아니요 강남원이 본이로데
강남에서 날아온 제비
솔씨 한쌍을 물어다가
팔도강산 높이떠서
삼천리강산에 흩쳤더니
밤이되면 이슬받고
낮이되면 태양을받아
그솔이 점점 자라나서
타박솔이 되었구나
타박솔도 자라나서
황장목이 되었구나
황장목도 자라나서
낙락장송이 되었구나...
광화문에서 점심식사 후 덕수궁 앞으로 오니 수문장교대식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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