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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체육관 앞에 모여 장충단과 체육관, 그리고 신라호텔에 관한 해설이 있었다. 장충단은 원래 신성한 곳이었는데 일제시대에 공원화했다. 청계천의 22개 교량 중에 수표교를 옮겨다 놓았는데 청계천 폭이 넓어져 원위치로 못가고 그대로 남아 있다.
일제시대 35년여 동안 한양의 여러 모습들이 바뀌었다. 일본은 식민통치의 정책으로 그리했을 것이고 장기적 관점에서 제도를 갖추고 정리해 나갔을 것이다. 옛 경희궁에 학교를 세우고 그 정문인 흥화문을 신라호텔 입구 영빈관문으로 옮겨왔다가 서울고등학교가 서초동으로 이전되고 경희궁이 복원되면서 제자리를 찾아갔다. 신라호텔자리에 일제시대때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를 추모하는 사찰인 博文寺가 1931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장충체육관을 필리핀 기술로 건축했다고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것은 아니고 우리 설계와 시공으로 했는데 지붕의 돔부분에 필리핀 기술자가 참여했다는 것이 확대전파된 것이라 한다. 장충동은 주거명당으로 박정희, 이건희, 김종필 등 여러 유명인사들이 거주했던 지역이다.
한양도성
18.627km로 옛 한양을 둘러싼 성이다. 세계에 도읍을 둘러싼 성으로는 유일하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고려의 도읍인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하여 정도전의 주도하에 궁궐과 함께 內四山(북악 낙산 남산 인왕산)을 따라 도성을 축조했다. 농번기가 끝난 겨울의 농한기에 전국 각지에서 수만명이 소집되어 지역별로 책임구간을 할당, 석성이나 토성을 겨울 1달반만에 축조했다. 1개 郡이 30m 정도의 구간 공사를 했고 그 싯점을 표시한 돌이 아직도 있다. 세종때 대대적으로 보수하여 전체가 석성으로 완성되었고 이후 숙종때 추가 보수공사가 이어졌다. 4대문(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과 4소문(동소문, 서소문, 혜화문, 창의문)이 있고 8개의 暗門이 있었다고 한다.
옛 타워호텔이 건립되면서 그 지역 성곽의 돌이 자유센타 도로변 축대로 이설되었고 도심구간도 대부분 성벽이 없어졌다. 한양도성의 유네스코유산 지정을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추가적인 복원을 하지 않고 현상태로 지정하려 한다. 복원하려면 값싼 중국돌을 수입해야 하는데 외국의 돌로 도성을 복원하는게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반얀트리호텔(구 타워호텔)에서 도로를 건너 국립극장뒤편에서 시작되는 북측순환로 아스팔트포장 도로를 따라 3.4km지점에 있는 저녁식사 식당까지 이동했다. 남산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계절에 가도 색다른 풍경이 있다. 서울의 명물이고 대한민국의 명물이며 세계의 명물이기도 하다.
●3.5(화)15:30~20:00
●답사코스: 장충체육관~ 성곽 바깥길로 자유센타 암문~ 반얀트리호텔~ 국립극장~ 북측순환도로 3.4km
※저녁식사: 남산도식후경
오늘 해설을 맡아주신 중구청해설사 신성덕선생 소개
펑해 平海 始面
총안구가 3개씩 있고 덮개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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